두 해 동안 여울의 벽에 세워두고 방치했던
가여운 거문고를 며칠 전 집으로 데려왔다.
누군가의 연습이나 소유가 되기를 바라며
여울에 두었지만 거들떠보는 이 없어
벙어리로 지낸 안쓰러움을 가져와
가죽옷을 벗기자 드러나는 묵은 오동의 정갈한 모습.
모든 괘가 쓰러지지 않고 단단히 서있고
줄들이 아직 갈비뼈처럼 팽팽하다.
35년 전 즈음에 동대문 근처에서
일반인 월급의 두 달 치로 호기롭게 구입했으나
밥벌이 한다는 핑계로 사랑을 받지 못한 비운의 악기다.
예부터 군자의 악기이며 악기의 으뜸이라고 칭송하지만
요즘은 전공자도 적고 배우는 이도 드물더니
아예 북한에서는 사라진 악기로
빠르고 밝고 자극적인 소리를 좋아하는 현대인의 귀를
느린 탁성의 거문고로 매료시키기는 힘들지만
무게와 깊이를 탐닉하는 마니아층에게는
감로(甘露)처럼 스며드는 악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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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낡아 폐는 줄어들고 심장도 얇아져
대금은 숨이 차고 해금악보엔 숨표가 없으니
내년 즈음엔 중력의 힘으로 술대를 내리치며
거문고 줄에 운율을 맡겨 흘러봄직도 하다.
늙은 나무는 성근 잎으로 바람을 부르며
구부정한 허리로 서서 어쩌다 꽃을 내는,
화려함을 버리고 기품으로 살아가는 것.
피리가 줄기를 세우고
대금이 꽃을 피워
해금이 향기로운 때에,
나는 오동잎 흔들어 응원하겠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