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편지 하나를 받았다. 외출 후 돌아 오며 열어 본 우편함엔 낯선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수신인 ‘금련화’ 보낸 곳 ‘창원 우체국 사서함’
이상하게 봉투를 여는 순간부터 뭔가 망설여지고 있었다. 정성스레 쓴, 인쇄라도
한 듯 반듯한 필체의 손 편지였다.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가 보내 온 편지였다. 계간 수필 잡지 봄 호에 실린 내 글을
읽었고, 그 글에 감동을 받아 글을 쓴다는 것, 본인은 죄를 지어 감옥에 있는 몸이기는 하지만
글을 쓰고 싶은 열망에 매일 일기와 시, 수필을 쓰고 있다는 것, 자신의
글을 지도해 주실 수는 없느냐는 것, 책을 보내 주실 수는 없겠느냐는 것 등을
정중하게 써 보낸 편지였다.
내가 쓴 글에 감동을 받았다는 독자의 글은 내게 힘이 되고 있고, 때로 ‘내가 지금
뭘 하는 짓인가‘라는 글쓰기의 회의에서 새로운 의욕을 갖게 하는 비타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날 밤, 늦은 밤까지 정신은 말갛게 개어 오며,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왜 이러지?’
‘주소는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해야 하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몇 십 년 전 읽은 월북 작가 이태준의 단편 소설 하나가 떠올랐다.
따듯한 미소와 사랑 가득한 말씨로 신도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선교사 부인, 어느 해
마지막 날, 걸인과 부랑아들을 초대해 성대한 잔치와 선물까지 한 아름 안겨 주고 돌려보낸 후
불쌍한 불우이웃에게 베푼 그 사랑을 주님께 감사와 찬미로 올린다는 기도를 드리며
만족한 밤을 보낸다.
새해 아침, 그녀의 차 안에서 쓰려져 자고 있는 걸인을 발견, 자신의 집 하인에게 내 몰게 하는
것으로 끝났던 소설. 그 가증스러움과 위선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지 아니면 작가의 인간 내면의
미묘한 심리적인 충돌에 대한 예리한 관찰 때문이었던지 읽은 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때때로
기억나는 작품인데, 편지를 읽으며 그 소설이 생각났고, 그 선교사 부인의 간교함이 바로 내
모습인 듯 전율이 일었다.
그 날부터 나의 이중성과 가증스러움, 위선적인 모습들을 마주하며 나와의 씨름이 시작됐다.
힘든 사람, 슬퍼하는 사람, 외로운 사람,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
따듯한 손길과도 같은 글을 쓰고 싶다던 내 소망은 입에서만 머물고 마는 헛된 외침이었던가.
내가 나눌 수 있는 유일 한 것, 그것은 글과 마음 뿐 이라고 했던 평소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거창하게도 세상의 편견에 대해 이해하려 하고 있었다.
글쓰기 지도를 해 달라는 것, 읽고 난 책을 보내 달라는 것, 그것이 뭐 그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이렇게 엄살을 떨고 있을까.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어렵사리 편지를 썼고, 그
편지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심을 했을까. 세상의 편견이 이해가 되는가 했더니 이젠
그 재소자의 심정이 헤아려 질만큼 마음이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불안과 두려움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며칠 망설임 끝에, 간단하게 답글을 준비했다.
제 글을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과,
아직은 글이 미흡해 누구의 글을 지도 할 역량이 되지 못해 청을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과,
책은 원하시면 언제라도 챙겨서 보내 드리겠다는 것.
오늘 오후 7권의 책과 함께 써 놓은 답글을 보냈다.
가방에 몇권, 양 손에 두권씩의 책은 내 마음 만큼이나 무거웠지만, 우표를 붙이고
소포가 포장되어 우체국 직원의 직인이 찍히는 순간, 어깨를 누르던 무게가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을 하고 우체국 문을 밀고 나오며
며칠 동안 나를 누르던 불안, 두려움, 망설임등 그 색깔 다양한 내 감정의
소용돌이가 사라진다.
“고맙습니다.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게 해 줘서.
그리고 감사합니다. 도망가지 않고 날 지켜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오랜만에 가슴이 활찍 열리는 것 같다.
오늘은 하늘이라도 날 것 같다.
첫댓글 재소자라 하더라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지요. 어찌 보면 우리 모두 정신적으로는 감옥에 갖혀서 살고 있으니까요. 금련화의 영혼이 그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시기에 큰 감동을 주었나봅니다.당신의 진실은 그 재소자 뿐 아니라 수많은 감옥 속의 영혼에게 위안이 된답니다. 모쪼록 용기를 발휘하시기를......
감사합니다. 어디에 매이지 않는 영혼이라 하시니, 송구할 뿐, 담을 그릇이 하도 작아 담아내질 못하고 있답니다.
책을 보낸 뒤 답장이 왔어요. 본인의 죄목에 대해. 내 살아 온 환경에 대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것인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미자씨가 작가로서 맛볼수있는 최고의 행복한 순간을 맛볼수있었고,
대학시절 영문과로 입학하여 국문과로 전과한 사실이 잘한 결정이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별 말씀을요. 국문과로 간 이유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김열규교수, 김롼진 교수의 강의에 반해서. 4년간 듣는 공부는 열심히 했지요.
졸업하고 나니, 갈 데가 없었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