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 산골 2
장마가 진행 중인 칠월 첫 주말이다. 비가 그침 틈을 타 근교 산행을 어디로 다녀올까 행선지를 떠올려본 금요일 오후였다. 그 무렵 울산 친구가 경주 산방에서 만났으면 싶은 연락이 왔다. 한 달 전 시간을 한번 내어달라는 연락을 받고도 내가 길을 나설 사정이 못 되었다. 친구는 그새 지난 주말은 산방에서 근무지 동료 십여 명을 초대해 하룻밤 보내는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이른 아침 창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친구는 울산 북구에서 출발해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건천 건재상에서 작업 쓸 시멘트를 일곱 포대 싣고 당고개 너머 산방으로 들어갔다. 엊그제 경주 산골에는 많은 비가 내려 냇물이 넘쳐 흘러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산방에서 여장을 풀고 밭둑을 살폈다. 여러 약초와 작물이 주인장 손길을 받아 잘 자랐다.
친구가 나를 부른 뜻은 밀린 안부를 나누고 함께 할 일거리가 있었다. 산방 살림터 축대 시멘트가 금이 가 보수를 해야 했다. 가끔 친구 일손을 도와주는 한 아우가 들어올 것이라 했다. 나이 오십 줄에 이르도록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아우다. 문화교실 클래식 기타 교습에서 만난 사이라고 했다. 셋이 힘을 합쳐 시멘트를 비벼 축대를 보수하는 일을 하려고 산방으로 모여들었다.
친구는 경주 성동시장에서 봐 온 두치를 안주로 꺼냈다. 상어 내장을 삶아 냉장시킨 것이 두치로 회만큼 안주거리가 좋았다. 친구는 건천 양조장에서 받은 막걸리를 숙성시켜 가라앉힌 전분은 남기었다. 곡차 찌꺼기는 밭작물 웃거름으로 주었다. 일단 작업을 개시하기 전 야외 테이블에서 곡차를 몇 순배 들었다. 그 사이 작업을 함께 도와줄 울산 아우가 뒤따라 산방에 합류했다.
솥단지에서는 여러 약재를 넘은 약물을 달여 닭백숙을 익혔다. 숯불을 피워 지난 주말 행사에서 남은 장어를 굽고 문어숙회까지 내어왔다. 친구는 비에 넘어진 밭이랑 고추와 가지를 세우고 열매를 따 모았다. 나는 허물어진 축대에 쌓아둔 삭은 장작더미를 치웠다. 뱀이나 지네가 나올까봐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놀라는 일은 없었다. 이제 삽으로 시멘트를 비벼 얹는 작업이 남았다.
시멘트를 비벼 시공하는 작업은 친구와 울산 아우가 잘 했다. 나는 곁에서 지켜보는 정도였다. 시멘트 일곱 포대가 비벼 작업을 끝내니 허물어진 축대가 아주 미끈했다. 작업을 마쳐갈 무렵 윗마을 사는 원주민 노총각이 들렸다. 싱그러운 산방 잔디밭에서 펼친 주석은 셋에서 넷으로 불어났다. 나는 엄습한 피로와 취기를 이기지 못해 거실로 들어 씻지도 않고 잠에 곯아떨어졌다.
초저녁잠에서 깨니 거실은 훤히 불만 밝혀둔 채 사람이 없었다. 나중 알고 보니 친구와 울산 아우는 원주민 노총각 집으로 자리를 옮겨가 술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여전히 쏟아지는 잠에 묻혀 새벽을 맞았다. 산새소리와 개울물 흘러가는 소리에 잠은 깨어도 쉬 일어나질 못했다. 생수를 몇 차례 들이키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친구는 내보다 더 골골거렸다. 맥주를 섞어 고생을 더했다.
평소 친구 산방을 찾아가면 나는 새벽녘 일어나 길목 진입로 풀을 거르거나 밭이랑 김을 매었다. 이번엔 진입로 풀은 친구가 잘라 놓아 내가 할 일이 없었다. 밭이랑 잡초는 뽑아야 할 거리가 많았지만 간밤 치열한 전투로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샤워부터 하고 설거지를 마쳤다. 닭백숙 국물을 데워 속을 풀었다. 울산 아우는 일적불음이라 생생해도 친구는 속이 많이 불편한 듯했다.
거실과 주방을 정리하고 약초밭으로 가 잡초를 뽑았다. 제초를 다 하려면 일거리가 많았지만 친구가 힘들어해 훗날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내가 가져가가고 청정지역에서 가꾼 셀러리를 몇 줌 잘라 주었다. 어제 따둔 가지와 풋고추도 챙겼다. 나는 그늘진 밭둑에서 곰취 잎을 몇 장 땄다. 아우는 교회 예배 시간에 맞춰 먼저 나가고 뒤이어 친구와 함께 농장을 빠져나왔다. 17.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