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해관은 1883년 인천, 원산, 부산에 설립되었습니다. 한국해관을 통한 청국해관우정은 국가간 협정에
의한것이 아니라 서울과 인천에 거주하는 중국 상인들이 비용을 출자해서 설립한 사설 우편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청국해관 일부인은 서울총관 그리고 인천해관사용 일부인이 남아 있는데 아래는 인천해관 일부인들 입니다.
아래는 진기홍선생님의 '구한국시대의 우표와우정' 책자에 나오는 해관우편에 관한내용입니다. 오래전 글이라 한문이 많고 옛날표현이 많아 쉬운 말로 바꿨습니다.
"해관우편
일본의 재한 우편국과 아울러 또 하나의 객우(客郵) 소위 해관우편이 존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관이라 함은 오늘날의 세관을 말함이고 독일인 [멀렌도르프]를 고빙하여 중국에 본 따 해관을 설치한 것인데 매사 중국해관의 연장이라고 볼 수있었다. 이 해관에서 자체통신과 구미거류민(歐美居留民)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인천 서울등지에서 간략한 우편 업무를 보아 외국(주로 중국)과도 우편물 교환을 했는데 여기서 중국의 우표가 쓰였던 것이다. 당시 중국도 국립우편이 생기기 전이어서 해관우편이 설치 되었었는데 그의 일부로 행한 것이다. 다만 일본의 우편국과 틀린 점은 해관고용자가 외국인이긴하나, 우리나라의 관직을 갖고 해관도 엄연한 한국의 국가기관이었으니 해관우표의 성격을 정의 지우기는 매우 곤란한 문제이다. 인천의 경우를 보면 외국공관과 외국 상인들이 출연하여 운영하였다고 하니 중국의 로칼우편과 같은 방법으로 생성한 것 같다. 해관우편에 대하여 외국에서는 많은 관심이 모여져있고 미국, 일본등의 우취가간에는 수차 논의된 바도 있다. 특히 존속기간에 관하여는 1883년 또는 1885년부터 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필자의 연구한바로는 1889년 1월부터 1900년께 까지로 보고있다. 부산 원산등지에도 개설되었다고 알려져 있고 그랬을 가능성이 있으나 아직 뒷받침할 실체봉피나 소인우표 또는 정확한 문헌은 미발견이다. 서울 인천 두곳의 개국만은 확실하고 약간의 자료도 남아있다. 해관우편의 일부인영의 대표적인것을 도판으로 소개한다. 이런 소인만 있으면 실체봉피는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사용필우표도 고가로 매매되며 부산 원산등의 일부인이 나타나면 해관우편의 개설지에 관한 귀중한 사료가 된다. 해관우표는 용 도안으로 대청우정국또는 대청국우정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일부인 날짜 인천(JENCHUAN) 1894년 1월 21일과 제가 가진 일부인 날짜가 같습니다.^^
첫댓글 오!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