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이나 더...
항상 쫓기듯 살아온 삶의 궤적 탓일까?
나의 삶은 항상 초초하고 불안의 연속이였다.
지나고 보면 사서, 스스로 자초한 일들이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충분히 잘, 정상적으로 살아갈 기회를 박차고
음악인의 길을 걸을 때부터 이 불안은 시작 되었다.
하기야 지나고 보면 거장 피바로티도, 마리오 란자도
항상 초초하고 불안 했다고 한다.
단, 그들은 공연전에 만 그랬고
연약한 나는 늘 불안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가장이라면
누구나 지게되는 삶의멍에의 무게에 ,그 십자가에
초초해 하고 불안해 하지만
어린 나는 자초해서 그것도 무려 23세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후에야
나를 따르는 가족들을 책임지기 위해서 많은 희생과
고초를 자초했고 그 결과로 늘 불안했다.'
더구나 교회와 관련된 부모는 나를 늘 부끄럽게
여기고 심지어 나를 싫어했다..
나도 뭐 자존심이 있지 집에 손하나 안 벌리고
그때부터 내 힘으로 살았다.
물론 쬐까...풍족하지는 않았지만..ㅎ
그 음악 이라는게 내가 업장을 차려서 하는것도 아니고
(하기사 돈도 없었지만.)
남에게 고용되어서 하는 것인데
어릴 때부터 나는 나자신을 촉망받는
천재라 생각한 내 얄팍한
되지도 않은 교만과 자만심에 남에게
고용된다는 것도 싫었지만
잘리는건 더욱 더 싫었다.
더구나 어릴때 겁없이 용감하게 가장 선두에서
각종전투?를 지휘하고 이겨온 나에게 이제는
전투를 벌리다 잡히면 ? 이라는
강력한 브레이크가 걸렸다..
만약 내가 빵에 가면?
애는 고아원에 갈 것이고..
그다음은?
하~ 생각하기도 싫었다..
이런 생각에 나는 점차로 전투에 소극적이되고
이런 낌새를 눈치 긁은 전번의 전투에서
나에게 패배한 무리들이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 왔다..
전투를 하자니 집이 걱정이고
않자니 비겁자라는 놀림이 따를 것 같고..
그러다가 점차로 현역에서 물러나
그저 안 짤리는 직장에 한번 다녀 보는게
소원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수십억원씩 투자해서
만든 업장울 오롯히 내가 맡은 시간에는
내가 이끌고 나가야 되는데..
그런 중차대한 책임을 가진 넘이..
손님에게 잘 하기는 커녕
손님에게 패악하고 사장에게 대들고..
(그때는 나름 이유가 있엇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건 나의 핑게일뿐..)
나라도 짜르겟다. 그런 놈이라면..
그래서 짤리면 사장을 원망하고..
그러다 그러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떠 밀려서.
지금의 이 업을 시작했는데..
돈이야 벌리든 말든 안 짤리는 직장이라는..
그 말이, 그 사실이 나를 그동안의 짤림에서
오는 불안감에서 해방은 시켜 주었으나.
방종과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이 업을 시작하고
처음 한달간은 처적처적 내리는 봄비에
수강생 한명도 없이
처량하게 단둘이 앉아서 서글퍼 진적도
있었다....(눈물은 안 흘렸음..)
그때....비로소 나를 짜르거나 나랑 싸운 업주들에게
진정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ㅎ
그 뒤, 다행이 운이 좋아 전국에서 배우겠노라
막 밀려오고..솔직히 나는 나팔을 가르키며 그게 수입이 될지는
진짜 몰랐는데...ㅎㅎ
그때는 진짜 서울에서, 마산에서 등등 전국에서
몰려왔다..
전번의 업소에서 15년의 시간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고..나는 매일 매일을 소중하고 보람차게
보내 왔다.
물론 나도 세상도 같이 나이들어 갔는데
다만 나만 그걸 몰랐을 뿐이다..
나는 그때 늘 학원문을 열면서
앞으로 내가 이문을 얼마나 더 열게 될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만큼 그 상황이 내게는 적어도 만족 스러웟던
것이다..누가 감히 나를 짤라? 하는 안도감?
젊은 시절 내내 고용당해 살아온 자의
해방에 대한 목마름?
하기사 교수나 공무원이나 심지어
대통령도 고용 당하는건데... 병신인 나는 그걸 몰랐던거다..
이제 이자리 이곳에서 마지막 문을 열 때가
언젠가는 오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불안하지도
짤릴 일도 없고 만족한다..
왜냐?더 이상 남에게 고용당하지도, 짤리지도 않으면서
버티어온 20년세월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마지막 문을 열고 들어 오고 가겠지만
그때 까지 나를찿아준 모든 고마운 분들에게
잘 하리라..다짐해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내 생일이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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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처럼 말 더럽게 안 듣는 자유스러운 영혼 조영남의 노래 3곡
1. 모란 동백
2.사랑없이 난 못살아요.
3. 내고향 충청도(남산동)
첫댓글 나는 애기 때 이쁘다꼬 동네 언냐들이 하도
내 고추를 만져대서
손때가 타서 새카맣게 되었는데 ..
그 때의 그 손때가 빠지지않아서
지금도 올 불랙 칼라 입니다.ㅎㅎㅎ'
그리고 키수바리도 심심치 않게 들어 왔는데
어린 내가 영특하게도 인물의 상 중 하,
그리고 여인들의 마우스 청결도를
재빨리 간파한 다음에야 키수바리에 응했음..
그 때의 키수바리 유아 교육이 훗날 지대한 효과를 발휘함..'
심지어 색소폰 연주에 도,, Tonguing 의 중요성..
설왕설래 舌往舌徠...는 장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