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사진 기록, Life지의 창간]
여러 달에 걸친 시행착오와 개선의 결과 헨리 루스의 ‘Life’가 미국 전역의 신문 및 잡지 판매점에 첫선을 보인 것인 1936년 11월이었다. 10센트만 내면 독자는 96쪽짜리 잡지에서 다양한 기사와 사진을 접할 수 있었다.
창간호에는 갓 태어난 아기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때려서 아이의 첫 울음을 터뜨리는 산부인과 의사의 사진이 ‘생명의 시작’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실려 있었다.
창간호는 진열된 지 서너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매진되었다.
열렬한 구독자들은 다음호를 구입하기 위해 예약을 하느라 아우성이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진 잡지가 ‘Life’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최초의 사진 잡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최초의 라이프 잡지도 아니었다.
1883년에 존 미첼이라는 도안가가 처음 발견했던 사진 잡지의 이름을 루스가 빌렸기 때문이었다.
미첼은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과학도였으나 졸업 후에 파리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인물이었다. 1882년에 뉴욕에 정착한 그는 사진 주간지를 새로운 방법으로 발간하기 시작했다.
선화를 나무판에 새긴 다음 이를 종이에 찍는 종래의 방법이 아니라 직접 선화를 재생하는 아연 에칭 방법을 이용했던 것이다.
미첼의 ‘Life’는 자신이 그린 우스꽝스러운 도안이 곁들여진 유머와 풍자 잡지였다. 1877년의 ‘Life’지는 20살이 지난 찰스 다나 깁슨의 아름답고 자립적인 ‘깁슨 여자’를 미국인들에게 선보였다.
미국이 대공황에 휩쓸리기 전까지만 해도 미첼의 잡지는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10센트 주간지의 하나였다.
여기에 비로소 헨리 루스가 등장한다. 1936년 당시 루스는 곧 발간될 사진 잡지의 명칭을 물색하고 있었다.
시험적인 명칭은 ‘표정(Look)’이었다. 그러다가 루스는 미첼에게 9만 2천 달러를 주고 그의 유머 잡지인 ‘Life’의 명칭을 사들였다.
사진으로 뉴스를 생생히 보도하는 루스의 잡지는 영화에 매료된 수백 만의 미국인들에게 호소하는 바가 매우 컸다.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이 각광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Life’의 사진은 마치 글처럼 이야기를 쉽게 전달해주었다.
사진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발전하게 된 것은 이 잡지의 ‘사진 에세이’ 덕분이었다.
1936년의 창간호가 선보인 지 서너 주가 지나면서 ‘Life’는 곧 100만 부 이상 팔리는 대중 잡지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Life지 창간호
유명한 독일 출신 미국 작가 알프레트 아이젠슈테트(Alfred Eisenstaedt,1898~1995)의 몬테나 주 포르 펙(Fort Peck) 댐 흑백사진을 표지에 싣고 댐 건설 노동자들의 일상을 5페이지 특집으로 실었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