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좋아지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노르웨이산 연어가 올려진 초밥을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가격에 손쉽게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12일 공개된 넷플릭스 노르웨이 코미디 시리즈 '억만장자의 섬' 시즌 1(6부작)은 노르웨이에서 맨처음 연어 양식에 성공을 거둬 세계인이 노르웨이산 연어를 얹은 초밥을 먹을 수 있게 한 메위에르 피요르브루크의 최고경영자(CEO) 예르트 메위에르(스베인 로게르 칼센)와 그의 문하에 있다가 이제는 동업자, 소액 주주가 뜻하지 않게 해외에서 죽은 사실을 악용해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과거에 당한 일을 갚아 주려는 말락스의 CEO 율리에 랑에(트리네 비겐) 두 가족의 암투와 가족 간 갈등과 배신을 그린다.
1편 시작부터 노르웨이어만 들려오다 중간쯤 영어가 조금 흘러나오더니 비행기에 탑승한 누군가의 음성이 흘러나오는데 우리말로 "매니저님" 한다. 비행기에 문제가 발생해 율리에가 급히 보내 준 헬리콥터를 타고 짠! 하고 파티장에 나타나는데 난 잘 몰랐던 이진혁이란 케이팝 스타다. 그룹 '업텐션' 출신으로 드라마 '비밀은 없어'에도 나왔고, SNL 코리아 시즌6에 크루로 합류한단다.
노르웨이 양식 연어 사업이 워낙 글로벌 규모와 엄청난 재산을 자랑하는 모양이다. 케이팝 동호인회 회장인 막내딸의 성인 기념 파티에 케이팝 스타를 초대하는 선물을 안긴 것이었다. 이진혁은 두 래퍼(한 명 이름은 '남준'이다)와 함께 그의 대표곡 '활(쿠데타)' 퍼포먼스, 활 시위를 당겨 쏘는 모습을 시전한다.
'릴리 햄머'의 앤 뵈른스타드 감독이 크리에이티브와 연출을 책임지고 트리네 비겐, 스베인 로게르 칼센, 랑네 그란데, 코레 콘라디, 한네 실레 레이탄 등 노르웨이의 쟁쟁한 스타들이 총동원된다. '스칸디나비아 느와르'의 어둡고 냉혹한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 나라 사람들의 웃음 코드가 새롭기도 하고, 코미디 장르를 이렇게나 말끔하게 뽑아낸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노르웨이의 수려한 풍광, 숲과 호수의 빼어난 비경, 유려한 패션과 스칸디나비아 스타일로 얘기되는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패션 감각이 마치 향연처럼 펼쳐진다. 또 하나, 선명한 해상도와 화려함을 더하는 색감은 놀랍기만 하다.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나와 시각적 충격을 안긴다. 매편 45분정도의 러닝타임이라 상대적으로 간결한 점도 매력적이다. 다른 것 제쳐두고 노르웨이의 풍광을 '눈팅'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앞의 성인식 기념 예배 도중 성가를 함께 부르는 대목이 나오는데 배꼽을 쥐게 한다. 가사는 이런 식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바다에 가라앉으매 바다와 고래가 주님을 찬양하리라 또한 흐르는 강을 따라 참다랑어와 메기와 명태와 돌고래와 산란하는 대구도 주님을 찬양하리'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연어 사업체이다 보니 탐욕이 앞서 라이벌들을 몰락시키기 위해 함정을 파 상대를 빠뜨리는 등 탐욕의 부질 없음을 꼬집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포복절도할 정도는 아니고 쌉싸래한 웃음을 자아낸다. 살짝 놀랍거나 뒤틀린 반전도 있는데 할리우드식 잔인무도한 족벌 드라마와는 다른 인간미가 감도는 갈등과 복수가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모두 행복하게 시즌 1이 마무리됐는데 시즌 2의 판도를 미리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점도 색다르다.
예르트의 부인으로 휠체어에 앉아 대사가 거의 없이 얼굴 표정 만으로 시즌 1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엘리자베트 매터슨의 연기가 놀랍기만 하다. 마지막 6편의 율리에 아들의 연기 지도 선생이 거의 칠순 가까운 나이에 그를 대신해 할리우드에 스카우트돼 간다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의 소설 책 '7부작 새로운 이름 셉톨로지'(2023)가 스쳐 지나가며 그 연기 지도 선생도 율리에 아들이 받아본 연기 대본을 읽어 본 뒤 "나를 위해 쓴 것 같다. 욘 포세의 전성기 대본 이래 가장 돋보이는 극본"이라고 극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