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842) - 2021 조선통신사 옛길 대장정 기행록(8)
- 문경 새재 넘어 옛길박물관을 들러서(수안보 온천 – 문경 관산지관 22km)
4월 12일(월), 아침에 흐리더니 오전 11시 경부터 가랑비. 일기예보를 살피니 낮부터 비가 내린다는 소식, 일찍 출발하여 비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 여겨 아침을 간이식으로 해결하고 오전 7시에 숙소를 나서 7일째 걷기를 시작하였다. 출발하자 시작되는 문경방향 오르막길의 벚꽃풍광이 화려, 수북하게 쌓인 낙화를 밟으며 가는 꽃길이 20여분 이어진다.
고개 마루에 이르니 전망대처럼 설치한 정자 앞에 ‘대안보 살기 좋은 역참마을’ 이라 새긴 큰 돌 판에 옛 안부역참의 유래가 적혀 있다. 그 내용, ‘역은 신라 소지왕 때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대규모로 정비되었다. 역마와 숙식을 제공하고 공문전달, 관물수송이 주 기능, 안부역은 대마 3필, 기마 6필, 복마 6필, 역노 106명, 역비 28명을 두었고 역리가 25명이었다. 조선시대 영남대로 상에 위치한 영남선비의 과거길, 일본에 조선 문물을 전했던 조선통신사의 길 등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안부역참 위치에서 큰 길을 벗어나 마을길로 들어선다. 한 시간여 여러 마을 거쳐 이른 곳은 발화마을 곧 꽃피는 마을, 이름 그대로 마을 주변 산야가 형형색색 꽃동산이다. 꽃만 보고 살 수 있으랴. 동네 소개 현판에는 산삼, 불루베리, 복숭아, 브로콜리, 옥수수 등 경제작물을 재배하는 산촌생태마을이라 적혀 있다.
발화마을 지나 오르막길 중간쯤 지나니 자전거길 휴게소, 잠시 쉬는 사이 자전거하이킹을 즐기는 청년 두 명이 들어선다. 두 사람은 어제 서울을 출발하여 수안보에서 1박하고 부산까지 달릴 계획으로 장도에 오른 것, 수안보에서 출발하여 벌써 여기까지 오셨냐며 놀란다. 장도를 무사히 마치라며 서로 격려.
언덕길을 더 오르니 괴산군 연풍면에 들어선다(출발한 지 한 시간 반, 7km쯤 걸어서). 길가의 팻말에 적힌 글, ‘연풍새재옛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새재옛길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동래까지 최단거리로 이어준 영남대로의 중요한 분수령이었습니다.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 새로 난 고갯길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이 길에서 민족의 역사와 삶의 발자취, 괴산군의 수려하고 청정한 자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상까지 포장길과 마사토길, 이전의 울퉁불퉁한 길보다 쾌적하고 길목마다 새재를 노래한 옛 시, 교훈이 될 만한 경구들이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봄에는 꽃길, 여름에는 물길, 가을에는 단풍길, 겨울에는 눈길이라 적힌 아름다운 길이 오늘 따라 통행하는 이 별로 없어 호젓하구나.
수안보 출발 세 시간(10여km)여 만에 새재 정상의 영남제3관(일명 조령관)에 이른다. 조령관 통과하여 잠시 휴식하는 동안 돌에 새긴 시, ‘새재를 지나는 길에’를 나영애 씨가 낭랑한 음성으로 읽는다.
‘나라님 부름 받아 새재를 넘자니
봉우리 꼭대기에 겨울 빛이 차갑구나.
벼슬길로 돌아가는 부끄러운 이 마음
개울 바닥 뒹구는 마른 잎 같아라.
대궐 안에 아부꾼들 멀어지면
조정엔 오가는 말 화락하리라.
근심과 걱정으로 십년을 보냈건만
날뛰는 금수무리 잡아내지 못하였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어지러운가, 아름다운 길 따라 모두가 화락하였으면.
영남제3관 지나서 한참 내려오다 표고를 살피니 600m, 그 옛날 이 높은 고개를 넘나들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영남제2관 거쳐 제1관으로 이어지는 6.5km 내리막길을 가볍게 걷는 동안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진다. 다행이 제1관에 이르기까지 소강상태, 제1관 지나 잠시 걸으니 옛길박물관에 이른다. 월요일이라 휴관을 우려하였더니 연중무휴로 개관한다는 직원의 설명, 길 따라 걷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소중한 탐방이었다.
옛길 박물관의 팸플릿 ‘길 위의 역사 고개의 문화 옛길 박물관’에 적힌 내용, ‘문경은 우리나라 문화지리의 보고이자 길박물관이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소통로로서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던 문경새재(명승 제32호)가 있고, 우리나라 최고(最古, 서기 156년 개척)의 고갯길인 하늘재(명승 제49호), 옛길의 백미이자 한국의 차마고도로 일컬을 수 있는 토끼비리(명승 제31호), 또 영남대로 상의 허브역할을 담당했던 유곡역이 있다. ---
예사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지니고 다녔으며, 괴나리봇짐 속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과거시험지에는 무엇을 썼고 합격의 영광과 금의환향, 그리고 낙방 길의 시름은 어떠했을까? 여행길에서 쓴 여행기와 풍속화에 펼쳐진 옛길의 모습은 얼마나 정겨울까?‘
박물관에 들어서자 한눈에 들어오는 옛 지도 조령진산도(鳥嶺鎭山圖, 음양오행설과 풍수지리설을 감안하여 그림형태로 그린 지도)가 흥미롭고 우리나라의 옛 지도가 1402년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필두로 유명한 대동여지도(1861년) 등 20여개나 제작된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여기서 새긴 땅, 산, 물, 길에 대한 정의를 알아두면 좋을 듯.
땅, 천하의 형세는 산천에서 볼 수 있다.
산,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로부터 수없이 갈라져 나가는 것이다.
물, 물은 본디 다른 근원으로부터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길, 길이 산을 만나면 고개요, 물을 만나면 나루이다.
12시 경에 길박물관을 나서니 빗방울이 굵어진다.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5km 남짓, 마지막 피치를 올려 문경초등학교 지나 문경서중학교 교정에 있는 관산지관까지 열심히 걸었다. 문경초등학교 옆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사시절에 기거했던 옛집 청운각이 있는데 코로나 여파인지 문이 굳게 잠겼다. 이전에는 들러 가던 곳, 그대로 지나쳐 서중학교 교정의 관산지관(조선시대 문경현의 객사로 쓰인 관산지관은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으로 가는 길에 왕에게 인사를 하던 장소의 하나이다.)에 이르니 오후 1시, 22km를 빗길 피하여 열심히 걸었다. 숙소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여장을 푸니 오후 3시가 가깝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는데 편안히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