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속
예년보다 장마가 일찍 끝난 칠월 중순 주말을 맞았다. 연일 폭염 특보에 열대야까지 한동안 더위가 맹위를 떨칠 기세다. 장맛비가 좀 더 내려 대지를 적시고 냇물이 가득 흘러갔으면 싶기도 하다. 일전 지인으로부터 주제가 있는 산행을 나서자는 제안을 받았다. 지인은 틈을 내어 여름 숲속에 자라는 영지버섯을 채집하러 가보자고 했다. 둘은 예전에도 가끔 함께 산행을 나선 적 있다.
이웃 아파트단지에 사는 지인은 우리 집 근처로 차를 몰아왔다. 지인은 행선지를 예전 다녀온 장유계곡이나 용제봉 기슭으로 생각했다. 그곳에도 영지를 만날 수는 있겠으나 근래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져 누군가 손길이 먼저 닿았을 수도 있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발길이 뜸한 데를 한 곳 물색해 두었다. 웅남주민운동장에서 가까운 양곡 일대 산기슭으로 갔으면 싶다고 했다.
도시락은 준비하지 않고 얼음생수와 국순당을 두 병 챙겼다. 운전대를 잡은 지인은 당초 예상했던 행선지와 방향이 다른 충혼탑을 거쳐 신촌 삼거리로 향했다. 주말 아침인데도 공단 배후 도로는 차량 흐름이 더뎠다. 나는 지인에게 신촌 안길로 안내해 양곡삼거리로 가자고 했다. 양곡삼거리는 진해 장복터널로 가는 길목으로 그곳서 녹색신호에 맞추어 바로 웅남주민운동장으로 올랐다.
낯선 동네였지만 도로 사정과 교통 흐름을 잘 알게 된 까닭은 인터넷으로 미리 지도 검색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양곡 주택지와 제법 떨어진 산기슭에는 주민 건강을 위한 널따란 운동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생활권 가까이 요양병원이 하나 더 있는 것보다 주민 복지를 위한 발 빠른 행정으로 여겨졌다. 넓은 축구장은 비어도 테니스장과 풋살장은 땀 흘려 운동하는 동호인들이 있었다.
차를 세운 지인에게 나는 주변 산세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가리키려 산행 동선을 일러주었다. 축구장을 돌아간 풋살구장 곁에는 산책로 쪽문이 있었다. 산책로 들머리에서 배낭에 넣어간 국순당을 한 병 꺼냈다. 지인은 운전도 해야 하지만 본디 약주를 즐기지 않았다. 의례적인 잔만 건네고 녹색 플라스틱 용기의 국순당 한 병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안주는 집에서 잘라간 생양파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잠시 주변 지형지세를 살펴 산기슭으로 오를 방향을 찾아냈다. 이미 개설된 산책로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었다. 오래 전 계단식으로 밭을 일군 흔적이 보였지만 세월이 흘러 활엽수가 무성했다. 언제나 그렇듯 동행하는 지인에게 영지버섯 발견 여부를 떠나 서둘지 말고 조심조심 숲을 헤쳐가자고 당부했다. 낮이라 멧돼지로 놀랄 일 없어도 뱀은 있을 수 있지 싶었다.
산책로를 벗어나 한동안 숲속을 헤매어 봐도 마음에 둔 영지버섯은 보이질 않았다. 어디쯤에서 아까 운동장에서 이어진 숲속 산책로 만났다. 그 길을 따라 편하게 산등선에 오르니 장복산 북사면으로 뻗친 등산로였다. 여름 숲길이라 등산객이 많이 다니질 않아 묵혀져 있다시피 했다. 그래도 우리는 등산로를 벗어나 비탈진 숲속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찾아낼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월림과 완암으로 가는 산등선을 넘지 않고 양곡 일대 산등선을 누볐다. 내가 먼저 숟가락처럼 작은 영지버섯을 발견하고 뒤이어 지인이 대접만한 영지버섯을 찾아냈다. 삭은 참나무 그루 밑둥치였다. 한여름 밭이랑에서 일하는 농부라면 온열병에 걸릴 정도 무더운 날씨였다. 우리는 숲속을 거닐면서 비록 땀은 흘렸지만 자연에서 절로 자라난 영비버섯을 찾아냄에 산신령님께 감사했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우거진 비탈을 조심스레 내려섰다. 지인은 갓이 넓은 영지버섯을 더 찾아냈다. 나도 인적 없는 숲을 빠져나가면서 아기 손바닥만 한 영지버섯을 더 만났다. 우리가 숲속에 머문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다. 그래도 발품 팔고 땀 흘린 만큼 영지버섯을 딴 셈이었다. 차를 세워둔 운동장 근처에서 아까 남긴 국순당을 마져 비우고 반송시장 칼국수집 간이의자에 앉았다. 18.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