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의 파리.
거기에는 오로지 귀족과 부르주아가 석양의 호화로움을 연상시키는
최후의 환락에 빠져 있었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임과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이기도 했다.
'꽃의 도시' 파리에서도
가장 번화로운 장소는 극장이었다.
거기에는 파리의 모든 귀족과 부호들이
한껏 멋을 부리고 모여들었고,
세계의 유행은 여기서부터 생겨나고 있었다.
그 바리에테 극장에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여배우가 있었다.
그녀는 연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뛰어난 미모와 육체로써 뭇 남성들을 매혹시켰던 것이다.
어느 무대에서 비너스 역을 맡게 된 그녀는
그 풍염한 나체를 무대에 노출시켜
삽시간에 파리의 모든 화제를 독차지해 버리고 말았다.
나나는 하룻밤 사이에 여배우로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배우로서의 직업은 그녀에게 있어서 상품 견본과 같은 것이었다.
나나의 풍만한 육체에 침을 흘리면서 달려드는 사나이들을
차례차례로 정복하고,
그들로부터 돈과 칭찬을 얻어 내는 것이
그녀의 살아가는 보람이었다.
수많은 남성들이 단 한 번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하기 위하여
거액의 돈을 투자하고 파산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바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둑질을 했고,
또한 일확천금을 꿈꾸고 도박에 손대었다가 파멸에 빠져들기도 했다.
나나의 특별 배려로
하룻밤을 함께 지내는 영광을 입었던 사나이들은
그런 기회가 두 번 다시 오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절망한 나머지 자살하기도 했다.
고집스럽고 음란하며 뻔뻔스럽고 헤픈 여자,
그것이 나나였다.
그녀는 그러한 자기의 성격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수많은 남성이 그녀에게 몰려들었고,
그녀는 무관의 여왕처럼 파리의 밤에 군림했다.
그러한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고 말았다.
그녀의 행방을 두고
온 파리가 떠들썩했으나
결국 아무도 그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희대의 매춘부 나나의 이름도 차차 잊혀지고 있었다.
그런데 수개월 뒤에
나나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침대 위에 팽겨쳐진 그녀의 몸뚱이는
뼈와 피와 고름과 썩은 육체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천연두의 흠집이
얼굴 전체에 돋아 있었고,
좁쌀 같은 흠집투성이였다.
- 김희보,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Nana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강의 신 산가리오스의 딸(님페)로
제우스의 후손인 아그디스티스와 결합하여 아티스를 낳았다.
아티스는 대모지신 키벨레(혹은 남근이 거세된 뒤 여성으로 변한 아그디스티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으나 프리기아의 왕녀와 결혼하려다 여신의 분노를 샀다.
그녀는 여신의 저주로 미쳐버린 상태에서
스스로 거세하고 죽어 전나무로 소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