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그 이상의 회(灰)
('호명인생'을 만나다)
4655679 기계자동차공학과 손혜민
깜깜한 화면, 휴대전화기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휴대전화의 빛, 남자가 불을 켠다. 그렇게 영화는 흑백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줄곧 흑백영상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인혁, 그리고 또 한 사람 조선족 외국인 근로자 갑보, 이 둘은 건설현장의 일용직근로자이다. 이 둘이 만남은 한 용역회사에서이다. 용역회사 사장이 그 둘의 이름을 부르고 건설현장으로 보낸다. 어찌나 천천히 걸어가는지 가기 싫어하는 느낌이 고스란히 영상에 드러난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적인 공사현장의 Full Shot, 주인공 둘이 걸어가고 나서도 계속 그 화면을 Long take로 가져간다. 감독의 의도를 GV때 물어보니 정말 일하러 가기 싫어하고 따분한 일상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감독 자신의 경험이 묻어나기도 한 장면이란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책임자의 통화내용을 들어보면 더 참담하다. 직영과 용역, 직영을 보내줘야지 용역을 보냈다며 최대리에게 화를 낸다. 흑 아니면 백, 용역 아니면 직영, 역시나 여기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그렇게 그 둘은 포크레인이 흙을 부어주면 땅을 다지는 일을 한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고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식사 후 쪼그려 앉아서 커피와 담배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사선구도에 서로의 얼굴도 잘 쳐다보지 않으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 상황이 이영화의 스타일, 감독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것 같다.
점심식사 후 사건이 일어난다. 주인공들의 부상, 그리고 조용히 처리하려는 회사 측 직원, 용역회사 사장은 보험금은 고사하고 심한 욕을 한다. 그 후 소주 한잔, 그렇게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걱정한다. 다음날 출근한 두 사람, 쉬운 일을 받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힘든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최대리와 문제가 생겨 일 못하겠다고 와버리고 인혁에게는 10일치 봉급과 함께 집에서 쉬라는 이야기를한다. 그러나 외국인 근로자인 갑보의 상황은 다르다. 사장과 따로 이야기를 나눈다. 인혁이 밖에서 기다렸다가 재촉하듯 물어본다. 그의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쉬지 않고 계속 일하게 된다는 것. 같은 근로자이지만 내국인과 외국인, 그 차이 또 흑백논리가 존재한다. 흑 아니면 백, 회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갑보에게 10만원을 내미는 인혁, 그것을 5만원은 담배 값 하고 나머지는 인혁에게 사골이라도 사먹으라는 갑보, 이들을 치유하는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이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정부에서 비정규직법이니 외국인 근로자법이니 자기네들 끼리 만들고 싸우고,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이고 사회 정책이란 말인가?, 우리 스스로 반문하게 하고 가슴 한 켠이 먹먹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여학생의 눈빛, 잊을 수 없다. '나 또한 저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나또한 그 학생의 눈빛으로 그 들을 보고 있다. 말로는 외국인 근로자의 문제, 이 사회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문제를 깊이 받아들이고 인식을 고쳐야 한다고 하지만 행동 또한 그렇게 하고 있을까? 이렇듯 이 영화는 우리 주위에 소외된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이다. 독립영화의 특성상 사회의 그늘진 곳을 다루는 영화들이 많고 감독들 또한 그 문제에 대해 깊게 성찰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점점 매료되는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인혁은 냄비와 사골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처지가 슬프다. 냄비는 작은데 사골은 크다. 지금껏 사골을 끓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집에 사골을 끓일 정도의 냄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기심, 물질주의를 극명하게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최대리, 용역회사사장, 책임자, 학생 이 사람들이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인혁과 갑보, 이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을 흑과 백으로 나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인혁과 갑보에게 동정심과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이 또한 개인 이기주의가 아닌가, 계급이 살아진 현대지만 여실히 존재하는 계급, 경제발전이니 뭐니 해서 나 혼자 잘 살자는 생각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닌가.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날, 흑과 백이 아니라 그 이상의 회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호명인생.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