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리(Vivien Leigh)
작성자:김연(엄광용 사람의 향기 홈에 게재)
(1913~1967)
비비안 리는 인도 다질링에서 프랑스계 영국인 아버지 어니스트 리차드 하틀레이와 아일랜드계 영국인 어머니 거틀루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상류층 자녀들만 다니는 로햄프턴 수녀원 학교에 7살 때 입학하여 13살때까지 다녔다. 넉넉한 가정환경 덕분에 졸업 후 4년 간 유럽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고 18살 때 31살인 허버트 리 홀만을 만나 결혼한다. 그러므로 유명한 이름 비비안 리는 그녀의 결혼 전 본명이 아닌 셈이다. (본명은 비비안 메어리 하틀레이.)
20살 때 딸 수잔을 낳았지만 비비안 리는 이대로 집안에 갇혀 인생을 낭비하기엔 너무 아름답고 야심이 강했다. 그녀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와 접촉했다. 올리비에도 리처럼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13살 때 세익스피어 연극에서 브루투스를 빼어나게 연기해 연극계를 놀라자빠지게 한 천재였다. 당시 28살의 올리비에는 기혼남이었지만 비비안 리의 적극적이고 매력적인 대쉬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37년 첫 연극 <햄릿>을 올렸다. 올리비에는 햄릿이었고 비비안 리는 당연히 오필리어였다.
<햄릿>의 성공으로 이들은 <빌리지 스퀘어>라는 영화를 찍었고 로렌스 올리비에는 이후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폭풍의 언덕>에 캐스팅되었다. 그러자 리는 남편과 딸을 팽개치고 무작정 올리비에를 따라 할리우드로 떠났다. 당시 비비안 리는 영국의 주목받는 여배우였지만 아직 할리우드에서 비비안 리는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20대 초반의 풋내기 배우인 비비안 리는 할리우드를 떠돌다가 우연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오디션에 들어갔다. 그때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은 오랜 오디션으로 지친 채 스칼렛 오하라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을 먼저 촬영해나가고 있었다. 셀즈닉의 친동생 마이론이 먼저 리를 발견했고, 셀즈닉은 비비안 리를 여주인공 역에 낙점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미국 남부 여인의 상징 스칼렛 역에 영국 출신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여러 모로 리 이상의 배우는 없었다. 원작의 묘사 그대로의 외모 - 하얀 피부와 까만 머리, 초록색 눈과 가느다란 허리 - 뿐만 아니라 리는 스칼렛과 공통점이 많았다. 두 사람 모두 부유한 가정환경에 수녀원계 학교를 다녔고 프랑스계와 아일랜드계 혈통을 타고났다. 게다가 적극적이고 자부심이 강하며 모험을 망설이지 않는 성격조차도 같았다.
비비안 리 바비인형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추종을 불허하는 할리우드의 대스타가 되었고 영화가 발표된 이듬해 1940년 로렌스 올리비에와 결혼했다. 올리비에 또한 할리우드와 영국을 오가며 중후한 작품을 찍는 배우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올리비에의 무대공포증과 리의 우울증으로 관계가 파탄에 이르러 59년 이혼하고 말았다. 이혼하기 전 리는 한 번 유산하고 폐결핵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다. 정신마저 혼미해져 53년 <코끼리 걷다>라는 영화에서는 횡설수설하며 예전 영화의 대사를 읊다가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배역을 교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비안 리의 팬들은 <바람과...>보다도 그녀의 연기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1951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꼽는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병과 유산으로 정신과 육체 모두 허약해진 비비안 리를 성심껏 돌보았고, 그에 힘입어 비비안 리는 이 영화로 재기에 성공했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원작은 이제까지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시카 랭 등의 여배우들을 주연으로 두세 번 리메이크되었지만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랜도 버전이 최고로 꼽힌다. 이 영화에서 막 스타가 되기 시작한 말론 브랜도와 예민함이 극도에 달한 비비안 리는 스크린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첨예하게 에너지를 뿜어냈다. 브랜도는 친구에게 쓰는 편지에서 '리는 실제로 나를 자극한다'라고 쓸 정도였다.
리는 이 영화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만 이미 결혼생활은 파탄난 상태였다. 올리비에는 무려 30살 연하의 조안 플로라이트와 사귀고 있었고, 이혼하고 2년 뒤 올리비에는 리와 그랬듯이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이후 67년 비비안 리는 불과 54세에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거의 전적으로 건강 관리에 무심했던 탓이었다. 양쪽 폐 모두 결핵에 걸려 있었고, 직접적인 사인은 각혈이 기도를 막았던 것이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첫번째 남편 리와 두번째 남편 로렌스 올리비에,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비비안 리를 돌보았던 연인 잭 메리벨이 함께했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중
첫댓글 초록 벨벳드레스..저거 커텐 뜯어서 만든것! ....아아...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첫귀절 마지막 귀절 다 외우고 있쥐...
조짱, 바람과 함께사라지다 책 보다가 시험 망쳤다는 풍문이.. 고거 사실이야? ^0^
흠~ 저 아름다운 이목구비!!! 역시 미인들은 하나같이 남성편력(?) 대단햐~
자기 자신의 욕구에 충실했던 사람이라고 봐도 되나요? 음.. 아뭏든 그 열정은 대단합니다.^^
넘~ 아름다운 모습 ...신비감!! 느낄 정도의 미모~
아이를 난 몸매가 저런다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장면들은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구나 비비안리 눈빛에서 야심을 볼 수 있지요...
그녀는 단순히 얼굴만 예쁜 배우는 아니었던 거 같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에는 젊고 아름답고 야심만만하던 젊은 날의 비비안리가 그대로 투영되어있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는 만년에 늙고 병들은 비비안 리의 모습 바로 그 자체인 것 같더라.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
이미지 영~화의누림 뒤의 처절하게 쓸쓸하고 쓸슬한 인간적인 외로움과 절망..시사한 봐 크네..희숙아 너의 목소리지?
비비안--그러면 비너스와 더불어 어릴적 들어온 속옷광고생각이...."철푸덕!(무드깨는소리여요)ㅎㅎㅎ죄송함다.
솔방울님 넘 웃긴다..그래도 대단하네여.비비안 기억하는 사람들 다 우리편이다아아아...희숙아. 사실여.크크..그래도 내가 잘 판단헌거제. 시험성적은 바람과 함께 사라져불고 그때 쌓은 교양은 지금까정 남아서 날 빛내고..크크...
정희야, 너 언제부텀 독심술했냐~? ㅎ..
저희학교 비홥니다.친구엄니가 아침에 싸준 맛있는 찐 고구마 친구들과 다 나눠먹고 난뒤 문득 발견한 고구마 담겼던 귀한 비닐봉지.코~~택스 뉴자유.얼추 죽었었습니다.아직도 그 전설이....
솔방울니~임~, 왜 그렇게 웃겨요~~? 아이구.. 배꼽 빠집니다. ^^
크하하하...솔방울 넘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