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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교수의 건축순례 .17]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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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넘는 역사 소박·품격 그대로 초대 설립자 아담스 3개棟 설계, 美대학 양식 조지아풍 도입 건축…화려하지 않으며 편안 '계명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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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지아풍의 본관은 당시 미국의 대학에서 사용된 양식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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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설립자이자 2대 학장인 아담스 박사를 기리면서 건축된 아담스관. 많은 사연이 있는 건물이다. |
| | 화사한 봄은 겨울과 여름 사이에서 꽃과 나무 그리고 살랑대는 바람을 통해 잠시 우리 곁에 머문다. 요즘 세상은 강렬한 것, 화려한 것 그리고 특별한 것이라야 살아남는 분위기라서 봄 역시도 잠깐 만에 사라져 버리는 듯하다.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한 것을 큰 특징으로 말하던 것은 이제 옛 이야기다. 봄과 가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듯이 성실하게 자신의 삶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조용한 사람들도 존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자신의 일상에 충실한 것만으로는 생존에 한계가 있을 것 같은 일말의 불안감으로 다가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세태에 맞춘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한다. 그러한 현상을 그대로 담은 장소를 도시에 비유한다면 그 속의 공원이나 녹지는 드러나지 않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착한 모습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그러한 장소가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는 품격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건 참 소중한 것이다. 대구에서 많은 공원의 성격을 가진 장소 중 가장 독특한 곳 중의 하나가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다(이하 계대). 여타의 공원들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면 계대는 역사를 간직한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원과 같다 하겠다.
#교육자이며 선교사 그리고 건축가였던 아담스 박사의 유산
계대 캠퍼스는 1954년부터 건설되었으니 벌써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55년에 준공된 본관, 58년 바우어관(66년 2층부터 상부 증축), 그리고 60년대 건설된 감부열관, 쉐턱관, 아담스관, 그리고 80년대 이후에 비사관 등 전체 15개동과 한 개의 노천강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붉은 벽돌과 그리스오더(열주 원기둥)를 차용한 신조지아 풍을 기본으로 하여 디자인되었다. 본관부터 시작된 이러한 건축양식은 설립자인 기독교 재단의 미국인 선교사들과 미국 하버드에서 공부한 설계자 조자룡씨가 당시의 미국대학 양식인 조지아 풍을 그대로 도입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당시 대구의 건축은 주로 일본인들에 의한 관공서 건물과 상업용 건물에 사용된 아르누보와 르네상스 풍 그리고 의양풍(일본식과 서양식이 혼용된 양식)과 서양선교사들에 의한 고딕풍의 종교건물, 조지아식의 주택이 주가 된 때였기 때문이다.
대구 근대건축의 역사를 말할 때 '안두화'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계명대의 초대설립자이자 2대 학장인 선교사 아담스 박사를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는 기록상으로 1900년 대구 최초의 근대학교인 희도학교를 개교하고, 1906년에 계성중학교를 설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택을 포함하여 건물 3채의 설계까지 직접 한 사람이다. 더욱이 63년에 준공된 계대 노천강당은 그가 정년퇴임하면서 미국으로 돌아갈 때 처분한 전 재산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그는 이 강당이 부활절 연합예배 장소로 쓰이길 바라면서 참석자 모두가 뜨는 해를 볼 수 있도록 강당 무대부 구조물 높이를 2층 이상 못짓게 당부하였을 정도로 건축에 뛰어난 식견을 가진 훌륭한 선교사였다. 교육자이기도 한 그는 건축가였으며 멋진 건축 후견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공로로 한국 최초의 국민훈장을 받은 선교사가 되었는데, 그의 사후에 성경 속에서 발견된 1만달러는 그의 부인이 대학 대강당에 'Stainway' 피아노를 기증하게끔 하였다.
# 외국인이 만든 소박하고 편안한 공간, 계명동산
계대 캠퍼스는 요즘 우리가 보는 대학과 비교할 때 그 규모는 2만1천186평으로 매우 작은 편이다. 학교 관계자들이 일컫는 '계명동산'이란 말은 참 잘 맞는 것 같다. 건물의 규모와 용도는 대지의 위치에 맞게 적절히 배치되었고 나름대로의 광장과 축을 가지고 있다. 원래 대지가 가진 높이차를 적절히 이용한 외부 공간 곳곳을 정성들여 가꾸어 아늑한 휴먼 스케일이 느껴지는 하나의 개인 장원에 다름아니다. 결코 화려하고 요란스럽지 않아서 오히려 누구에게도 부담없는 편안한 공간, 그곳은 우리 건축인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비록 미국식 혹은 서양식을 흉내내었으며 건축가도 조경가도 아닌 외국인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동산이지만 한국인인 우리도 아무 무리 없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시대가 바뀌고 사고방식조차 변했음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진짜 아름다운 것은 국적과 피부색과 시대를 초월하는 값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신기함이나 베르사유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버나드 루도프스키가 쓴 책 '건축가 없는 건축'에 나오는, 편안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건물과 장소들처럼 나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이제부터라도 아름다움을 더 우위에 두자
지금은 잠잠하지만 한때 이 캠퍼스에 아파트를 건설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수많은 도심의 학교부지가 아파트로 다 채워질 때 건축인들은 속상해 하면서도 말이 없었다. 말을 하지 못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더 이상 개발논리로 가치있는 건축유산이나 장소를 마구 없애버리는 일이 그만 일어났으면 한다. 60년대에 신고전주의 양식을 띤 아름다운 건축인 뉴욕의 펜 스테이션(현재 뉴욕 닉스 농구단 실내경기장이며 그 하부에 역사가 있다)을 현대화란 이름으로 철거하고 신축했을 때 뉴욕시민들은 실망했다. 그 후 또 다른 역인 센트럴 스테이션을 도시교통에 방해된다고 신축하려 할 때 뉴욕의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반대하여 그 건축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근대건축물 보존법을 만들게 되었다. 그들은 편리함 대신에 아름다움을 선택하였고 지금도 교통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젠 우리도 문화선진국의 문턱에 왔다. 역사성을 가진 건축과 좋은 장소는 편리에 앞서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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