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 [잘 설해진 말씀의 경] 총정리
한개의 지문과 5개의 게송으로 구성된 이 경전은
짧은 경전에 해당되며 지문은 서론 부분에 해당되나
석가 세존의 하시려는 말씀이 자세하게 서술이 되어
있는것이 다른 경전과 다른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전재성 본에서 중요한 내용의 옮기는 것이 불자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여 그대로 옮겨보면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네 가지 특징을 갖춘 말은 훌륭하게
설해진 것이지 나쁘게 설해지지 않은 것이며,
양식 있는 사람에 의해 비난받지 않고 질책
당하지 않는다. 어떠한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수행승들이여, 여기서 수행승이 훌륭하게 설해진
것만을 말하고 나쁘게 설해진 것은 말하지 않으며,
가르침만을 말하고 가르침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으며,
사랑스런 것만을 말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으며,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은 말하지 않으면,
수행승들이여,
그 네 가지 특징을 갖추고 있는 말은 훌륭하여
설해진 것이고 나쁘게 설해지지 않은 것이며
슬기로운 사람에 의해 비난받지 않고 질책
당하지 않는다. 어떠한 것이 네 가지인가?”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처럼 말씀하시고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스승으로서 이와 같이 시로써 말씀하셨다.
지문에서 석가 세존의 하실 말씀의 핵심은 다
하셨고 이러한 법문이 있은 후 뒤에 시의 형식
으로 그 포인트를 말씀하시는데 그 분은 석가
세존의 게송이다.
이 부분을 정리해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 훌륭하게 설해진 것만을 말하고 나쁘게
설해진 것은 말하지 않는다.
2. 사랑스런 것만을 말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3. 가르침만을 말하고 가르침이 아닌것은
말하지 않는다.
4.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은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말을 하면 양식있는 사람에게 비난받지
않고 질책받지 않는다.
그리고 슬기로운 사람[지혜로운 사람]에게
비난과 질책을 받지 않는다.
다시 이 말을 간추려서 정리하고 약간의 설명을
더해 본다면 아래와 같다.
1. 훌륭하게 잘 설해진 말 : 처음도 중간도 끝도
다 좋은 말이다.
2. 사랑스러운 말 : 부드럽고 온화하며 자비로운 말이다.
3. 가르침의 말 : 진리를 설하는 법문을 말한다.
4. 진실한 말 : 거짓말, 꼬뜨기는 말, 두 말,
욕설이 아닌 진실한 말.
나머지 4개의 시는 시를 잘하는 제자인 방기싸가
아름답게 풀어내는 형식으로 세존의 말씀을 부연
설명하는 형식의 시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석가
세존의 제자로 문학적인 소양이 아주 뛰어난 제자가
진정으로 스승을 존경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당시에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하던 형식을 통해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도록 부연 설명을 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시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하고 있으므로 일정한 운율
즉 음악적인 구성과 멋이 분명 있겠지만 우리가 인도
사람도 아니고 그 문화도 잘 아는것도 아닌데다 시인도
아니고 문학 전공자도 아니니 아마도 뜻에 치중하여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만약에 예를 든다면 우리나라의 독특한 시조
형식과 비교해 보거나 가사 형식을 생각해 본다면
어느정도는 이해하고 수용이 되리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언어행위가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의
역할과 함께 그 진실성과 청정성을 사유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어떠한 말이 양식있는 사람[교양을
갖춘 양심적인 사람], 지혜로운 사람[지식을 갖추고
지혜까지 겸한 사람]에게 비난이나 비판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이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측면은 아주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을까
사유를 해보며 독자이신 불자님 스스로도 내가
했던 말이나 하고 있는 말의 그 어떠한 언어 행위에
대하여 어떠한 기준이 있고 정확하고 분명한 판단을
하고 하는지는 묻고 싶다.
위에서 이야기하는 기준을 보면 일반적인 삶에서
일상의 생활에서 도저히 완전한 실천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저런 언어 행위나
언어 구사는 부처님이 보살님 아라한의 성인의
말씀이고 성인이나 하실 수 있는 것이지 우리는
택도 없다고 아예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니 어느정도 기대치를 가지고 스님들은
그럴수 있을 거야 라고 나름 기대하지만 요즘은
거의 모든 행위가 미디어로 생중계 스타일로 공개
되는 시대이다 보니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특히 언어적 습관이나 행위도 여러 사람의 도마
위에 오르기 쉬운데 스님들이 공개적인 매체에
나와 인터뷰를 하거나 유투브등 방송을 하는
행위를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닐것이 분명하고 어떤 부분은 세속의 점잖은
사람보다 뒤떨어지는데 어찌 저러나 하며
속으로는 창피하고 자신이 불자가 아니라고
숨기고 싶기도 할 듯하다.
그러므로 언어행위가 가지는 파급효과는 그 어떤
라이브 방송보다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없으면 정제된 언어를 구사할 수 없으면 조용히
침묵하거나 공개적인 활동을 삼가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 내용에서 핵심을 잘 이해한다면
표면적인 언어행위의 완벽에 근본으로 작용하는
고요하고 청정한 마음을 사유해 본다면 어느
정도의 합리적인 이해가 되지 않을까?
결국 고요하고 청정한 마음이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행위에 대한 분명한 자각없이 충동적으로
행동하거나 늘 해오던 습관대로 행위를 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부분의 훈련이 안된것을 감안한다면
그래도 이쁘게 아름답게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말을
잘 할지는 몰라도 스스로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행위를 안으로 비춰본다면 웬지 허전하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함을 안다면 그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는 사람이며 그러한 것도 체크하지
못하고 좌충우돌 갑질아닌 갑질이나 꼰대같은 행동
이나 막무가내 행동이나 비양심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니 지혜로운 사람
양식 있는 사람이 비판과 비난을 받는것은 피할 수
없을듯한데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
이나 반성도 없이 다시 2차 공격을 무식하게 한다면
그의 그러한 행위는 언어행위 빵점 양심 마음 빵점
이웃 배려 빵점으로 기득권을 누리는것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것이다.
그러므로 언어행위에는 반드시 그러한 언어를 구사
하는 마음작용 함께하고 그러한 행위가 몸으로 까지
드러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아닌 것은
진실이 아닌것으로 드러나며 진리가 아닌 것은
진리가 아닌것으로 판명되고 훌륭하지 않은것은
훌륭하지 않은것으로 드러나니 그것은 포장으로
일회용으로 잠시의 재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반대로 안으로 부처 자기자신의 마음을 점검
체크하되 고요하고 진실하고 청정한 마음 상태인가?
그러한 마음 상태에서 언어 행위를 했는가?
이웃의 비판이나 비난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는가?
이러한 여견을 갖춘다면 붓다가 말씀하신 참 사람이며
진실한 사람이며 청정한 사람이니 그런 사람의 언어는
참으로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리라.
그러한 언어는 자기자신과 이웃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행위가 될것이다.
----2568. 11. 24 법주도서관 & 자주선림
교수사 자림 심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