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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제가 오래전에 신학교에 재학하는 중일 때 한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인기도서의 배후에는 성령 아니면 악령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공식적으로 1억 3천만 명 이상이 시청한 오징어 게임의 배후에 성령님께서 계실까요?
악령은 자기에게 절하고 예배하는 자에게 세상의 부과 명예를 줍니다. 인류는 타락하여 선한 것보다는 악한 것에게 이끌립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환호하는 것은 사람을 악마의 나라로 이끕니다. 특별히 사람이 눈으로써 보는 내용은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어린이들은 악을 눈으로써 보고 그것을 쉽게 모방하는 것입니다.
신문기사들에서 살폈듯이 어린이들은 옳은지 나쁜지 판단하지 않으며 ‘이것이 재미있다’라며 모방 놀이를 즐깁니다.
타락한 사람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악(惡)이고 나쁜 것이며, 곧으면 재미없다고 느끼고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1. 이 시대에 같은 모양이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이 시대(時代)에 같은 모양이 되지 아니하나”라고 권하였습니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고 죽으면 백신을 접종하지 않아서 죽었다고 하고, 백신을 접종했어도 돌파 감염으로 죽으면 기저 질환으로 죽었다고 하며, 이렇게 그들은 백신 접종을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년층은 코로나 19로 죽는 쪽이 백신 접종으로 죽는 쪽보다 많겠지만 청년층은 코로나 19로 죽는 쪽보다는 백신 접종으로 죽는 쪽이 많으므로 확률적으로 백신을 맞는 것이 위험한데 그들은 백신 접종을 권장합니다.
오징어 게임의 할아버지가 게임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그들이 백신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말할지라도 백신 접종을 유도합니다. 백신 접종을 안 하면 출입할 수 없게 함으로써 접종할 수 없게 만듭니다.
오징어 게임이 미성년자 관람 불가지만 어린이들이 많이 모방하는데, 세계의 어린이들이 벌써 이 드라마를 접하였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주인공과 그 자신을 동일시하여 이기려 합니다. 내가 456억 원의 돈을 얻기 위해 나머지 455명이 죽어야 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은 죽어도 된다는 생명경시 사상에 접하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런 생각에 물들어서 세상은 더욱더 악해집니다. 아이들은 순수한 동심을 가졌던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질 것입니다.
탈락은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죽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승리하려면 타인이 죽어야만 한다는 악마의 영성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몰렉 등의 우상에게 바쳐졌던 인신 제사와 상통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바치는 어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이의 생명을 희생시킵니다.
힘없는 아이를 인신 제사로 바침으로써 내가 복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트로이”라는 영화에 승전을 위해 인신 제사를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징어 게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모니터를 통해 감시 통제되었는데, 앞으로 현실에도 감시 통제되는 사회가 올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몸에 칩을 넣는 것도 강요한 적이 없다고 말할 것이나, 강요하지 않으나 게임에 참여하고 백신을 맞는 상황 속에 몰아넣었듯이, 칩도 강제로 삽입하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 몰아넣을 것입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게임을 강요한 적이 없어”라는 것입니다.
참가자들 모두가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영혼을 판 것처럼, 마트에 출입하고 회사에 출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칩을 받을 것입니다. 일단 칩을 받게 되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는 사회로 진입하게 됩니다.
휴대전화가 어디 있는지 그 위치가 파악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몸에 칩을 넣으면 그 칩은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파악시켜 줄 것입니다. 그 칩은 매우 작을 것이니 매매를 제한하는 것일 때 다 의심해야 합니다.
코로나가 확진된 자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칩이 모든 이동 경로를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몸에 칩을 넣고서 지하철을 타면 지하철 출입 막이 자동으로 열리므로 지갑을 꺼낼 필요가 없어 비접촉 게이트가 편리하다고 주장될 것입니다.
그러나 ‘편리’와 ‘안전’을 미끼로 ‘감시’를 하는 감시 사회가 될 것인데, 이것을 거부하면 마트 출입과 회사 건물 출입이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칩을 넣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강요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는 돈과 권력을 얻으려는 목적에 부정을 저지르는 시대입니다.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 제46대 대통령은 ‘니콜라스 마두로’입니다.
2025년 6년의 3선 임기가 시작되어 2031년까지 임기가 예정되었으나 지난 3일 미국에 생포되고 미국으로 압송되며 직무 정지되었습니다.1)
출구조사에 곤살레스가 65%가 넘는 득표로 2배 점수를 기록하였으나 마두로의 승리가 선언되었으며 부정선거의 정황이 여럿 나왔습니다.2)
마두로 정권이 부정선거를 통하여 자국민을 경제적으로 박해하였으며 미국 내에서 대규모 마약 판매를 기획하고 방조하였음이 명분입니다.3)
CNN에 따르면 마두로가 영부인과 잠자던 중 압송되었다고 합니다.4)
13년을 대통령에 재임하면서 악행을 저질렀지만 이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비록 사람의 눈에 더디게 느껴져도 반드시 실행됩니다.
한국 좌파도 돈을 사랑하여 부정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한 것입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위선적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딤전 4:2).
좌파가 되는 것은 돈을 사랑하여 악인이 되거나 머리가 나빠 속아서며 하나님의 정의가 베네수엘라에 이어 한국도 곧 실현될 것을 기대합니다.
“라라랜드”는 음악이 있어 지루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이 점 하나만큼은 칭찬할 만한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으로서 영화를 바라보았을 때, 결혼하지 않고 남녀 주인공이 한 침대에서 잠을 자거나 동거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영화나 드라마는 사랑한다면 연인 사이에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그립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여러 정당성과 감정으로 부도덕을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미화시킵니다. 아이들은 이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성장하고 사랑하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식의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합니다. 연애하는 연인 사이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로 이런 가치관이 어릴 때부터 주입되어 그렇지 않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힘들고 ‘오늘날에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오히려 케케묵고 고루한 사람으로 평가되며, 그런 이성을 찾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까지 평가합니다.
여주인공의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려서 삽니다. 그녀가 결혼 후에 남편과 함께 우연히 들른 재즈 클럽에서 남자 주인공을 만납니다. 그러자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함께 손잡고 춤을 추는 환상이 펼쳐집니다.
그 판타지 속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라 과거에 그녀가 연애하였던 남자 주인공입니다. 말 그대로 ‘연애 따로, 결혼 따로’입니다. 만일 그녀의 남편이 독심술이 가능하여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의 판타지 속의 주인공이고 그 남자의 마음속에 과거에 사랑을 나눈 연인으로 자신의 아내가 각인된 것을 알 수 있었다면 또한 아내의 마음과 육체에 옛 연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다면 그녀의 남편 심정은 어떠하였을까요?
그녀가 옛 연인을 만났을 때, 그 순간 그녀와 그녀의 옛 연인은 비록 판타지 속이었지만 깊은 교감을 나누었고 그녀의 마음속에 그녀의 남편은 외인에 불과하였고 잊힌 존재였습니다. 이상은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관점으로 영화 줄거리를 바라본 것이 아니었고 여자 주인공 남편의 관점으로 영화 줄거리를 바라본 영화 내용 평가입니다.
오징어 게임이 아프리카에도 전해진 것은 복음도 그와 같다는 것이며,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때 끝이 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끝은 가까이에 왔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이 시대에 같은 모양이 되지 말아야만 합니다. 노아는 전도하기 위해 이 세상과 타협하거나 세상을 본받지 않았습니다. 전도하기 위해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악마의 거짓말입니다.
노아는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고 그의 여덟 가족만 구원되었습니다. 노아는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으나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한다 해도 이 시대에 같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불신자들과 접촉점을 찾기 위해 그들과 닮으면 안 되는 것이며 그들처럼 오징어 게임 문화나 핼러윈 축제를 즐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그들을 본받아 즐기면 안 되니, 이 시대 사람들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이니 죄악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타락하여 선을 좋아하는 것보다 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와 같은 인류의 타락한 성향을 자극하는 문화를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문화라고 그대로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죄인들에게는 악한 것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수가 좋아하는 대상이라면 그것은 악한 것일 가능성이 대단히 큽니다.
오늘날에는 더더욱 사람들이 예전의 인기도서인 『천로역정』 대신에 새로운 인기도서인 『긍정의 힘』과 같은 세속 책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런 악한 시대에 우리는 이 시대에 같은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악한 이 시대를 본받아 이 시대와 함께 타락한 것을 좋아하면 안 됩니다.
내가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탈락시키는 시대에, 신자들은 이런 악한 시대정신을 본받지 말아야만 하겠습니다.
일루미나티들이 주장하는 사항이 이러한 피라미드 모양의 계급사회며 1달러짜리 지폐도 이런 피라미드형의 계급사회를 이상화하고 있습니다.
다수를 무정하게 짓밟고 올라가는 소수만이 정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수의 죽음을 기반으로써 둔 사람만이 거금을 얻는 게임처럼 말입니다.
이런 세상 정신의 배후에는 악마가 있고 악마는 예수님과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수를 살리시기 위해 그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자신을 희생시켜 형제들을 살리신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경쟁자를 제거하여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악마의 영성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제국을 건설한 정복자들과 황제들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제국을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약소국을 멸망시켰던가요? 영웅들이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수많은 약자가 피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의 제국을 세운 록펠러도 이런 방식에 경쟁자들을 제거한 것입니다. 경쟁자들의 눈물 위에 독점기업을 만들어 부의 제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약자들은 무명으로 죽고 영웅은 죽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정신을 본받지 않으며 예수님을 본받는 복된 성도들이 됩시다!
2. 정신에 새롭게 함에 의해 변형시킴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정신에 새롭게 함에 의해 변형시킴을 받을 것이니 하나님의 선하고 기껍고 완전한 뜻이 무엇인지 시험하기 위해서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파울은 지금 트랜스포머(Transformer)가 되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같은 모양이었으나 이제는 모양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이 시대를 conform하지 말고 transform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 둘에게 다른 모양에 나타나셨습니다(막 16: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앞에서 다른 형상으로 변형되셨습니다(마 17:2). 예수님께서는 변화 산에 오르사 다른 형상으로 변형되셨습니다(막 9:2).
파울은 이렇게 믿는 자에게 다른 형상으로 변형되기를 권한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더욱더 신성하게 변형되는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파울은 성화에 대하여 가장 주목할 만하게 요약하여 주고 있습니다.5)
우리는 정신(mind)에 새롭게 함에 의해 변형되어야(transform) 하며, 에스겔에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spirit)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회개는 자신의 위반을 자신의 곁으로부터 던지는 것입니다(겔 18:31). 회개는 자신에게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spirit)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11장 19절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spirit)을 주신다고 하셨고, 에스겔 18장 31절에는 새로운 마음과 영(spirit)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 11장 19절에 새로운 영(spirit)은 하나님의 선물로 약속되지만, 에스겔 18장 31절에는 새로운 영(spirit)을 만들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두 구절은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약속하셨어도 내가 만들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며, 아무 힘도 안 쓰고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면 안 됩니다. 성화도 하나님께서 주시나 사람이 성화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신선한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들 안에 넣지 아니하는 것은 가죽 부대들이 부서져 그 포도주가 쏟아지고 가죽 부대들이 없어짐이니, 신선한 포도주를 새로운 가죽 부대들 안에 보관하여야 합니다(마 9:17).
아무도 신선한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들 안으로 던지지 않으나 그러하면 그 포도주가 가죽 부대들을 부수고 멸망시킴을 받을 것입니다. 옛 전통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새로운 언약과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길과 종교적인 전통을 서로 대조시키십니다.6) 새로운 시대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7)
“마음”으로 번역된 단어(누스)는 “정신” 혹은 “지성”(mind)이며, “heart”가 아닌 “mind”로, 감정적 내면이 아닌 지성적 내면을 뜻합니다.
“마음(heart)”을 의미하는 단어(카르디아)는 이것과는 다르며 마음에 깨끗한 자들이 복되다는 예수님 말씀에 사용되었습니다(마 5:8).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지성을 여셨습니다(룩 24:45). 예수님께서 사람의 지성을 여셔야만 사람이 성경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정신에 새롭게 함에 의해서 변형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변형은 그 정신에 새롭게 함에 의해서입니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과는 다른 모양으로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8) 이것은 크리스천에게 부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과 사고방식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9)
하나님께서 우리의 정신(mind)을 새로운 것으로 창조하셨는데, 사람이 타락하게 된 결과 부패하고 낡은 것으로 바뀌었습니다(렘 17:9). 그러므로 우리의 정신이 다시 새롭게 바뀌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 정신에 새롭게 함에 의하여 형상이 변할(transform) 수 있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신자들의 삶은 다른 형상으로 변하는 일생의 과정입니다.
행동을 바꾸기 이전에 정신의 변화에다가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10) 이것은 행동의 변화에 관심을 지니는 세상의 도덕 교육과 정반대됩니다.
크리스트교는 행하여야 할 세부 항목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11)
정신(mind)에 새롭게 함에 의해 변형되어야 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시험하기(prove) 위해서, 찬성할(approve)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시험하다(prove)”라고 번역한 헬라어(도키마조)는 “검사하여 증명하다”(prove)나 “찬성하다”(approve)로 번역되었습니다. 무엇을 시험합니까? 하나님의 뜻(will)이 무엇인지를 시험합니다.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는 것입니다.12)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13)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정신에 새롭게 함에 의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시험하게 됩니다. 전에 할 수 없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뜻을 시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14)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는 성별이 표준이지 행복이 표준이 아닙니다.15)
하나님의 어떠한 뜻이냐면 그의 선하고 기쁘게 하고 완전한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으며 완전한데 하나님의 뜻을 시험하려면 정신을 새롭게 함에 의해 변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다는 것이며 크리스천들은 바로 이 점을 분별하게 되는 것입니다.16)
시편 119편 97절에 “내가 당신의 율법을 왜 그리 사랑하는 것입니까, 모든 그날에 그것이 나의 묵상입니다(MEM).”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에게 무겁지 아니하고 기뻐할 만한 것입니다.17) 하나님의 뜻은 선하고 기뻐할 만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고 기뻐할 만할 것이고 완전하다는 사실입니다.18) 하나님의 뜻은 항상 선하고, 항상 기뻐할 만하며, 항상 완전합니다.19)
신자들은 거듭났으나 아직 옛 습관대로 생각하고 사는 것이 편합니다. 그렇지만 편하다고 옳지는 않습니다. 편함을 추구하면 변화가 없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에 편안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하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바뀌는 것을 싫어하고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느낍니다. 그러므로 더욱 좋은 쪽이 있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쪽보다 자기 방식에 맞는 것을 더 좋은 것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편하다는 느낌의 함정입니다. 그러므로 진보와 발전이 없습니다. 편안하게 안주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더 좋은 것을 놓치게 됩니다.
옛 습관들을 깨부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힘이 들고 아픈 까닭에, 본능적으로 도전을 거부하고 싫어합니다. 그런 까닭에 변화가 없습니다. 점차 따뜻해지는 물을 즐기다가 결국 삶아지고 마는 개구리와 같습니다. 지금의 편안하고 좋은 안락함에서 뛰어나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당장은 노력하여야 하고 힘써야 하지만 더 좋은 삶이 기다립니다.
지금 당장은 새로운 것이 힘들기에 도전을 주는 사람이 싫을지 모르나 편안함을 박차고 나와 도전하는 자에게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에 안주하겠습니까?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변화를 선택할 것입니까? 익숙한 것은 편하지만 진전하는 삶으로의 변화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익숙한 것이 좋고 부모의 그늘이 좋은 여자들은 시집가지도 않습니다. 시집간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던 삶에서의 변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익숙한 친정을 떠나고 시집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싫다면 시집가지 말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이 되었음에도 옛 습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뀌는 것에 커다란 노력이 필요하고 힘써야 하고 힘들기에 안주합니다.
우리의 정신이 새롭게 되어야만 하고 언행도 새롭게 되어야만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가진 이 시대의 정신과 같은 정신으로 살면 안 됩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이 시대의 정신과 같았으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크리스트께서 믿는 자들의 남편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싱글일 때와 똑같이 생각하거나 혹은 행동하여서는 안 됩니다. 옛 습관들을 버려야만 하며 힘들다고 바뀌기를 외면하여서는 안 됩니다. 바뀌는 것은 힘든 과정이나 사랑하기에 변화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익숙함을 버리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결코 그러한 것이 허용되지 아니합니다. 이 시대와 비슷하게 바뀐 크리스트교는 변질한 것이지 진짜가 아닙니다. 진짜 크리스트교는 이 시대에 비슷한 크리스천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다른 크리스천들을 만듭니다.
크리스트의 신부가 되는 것은 크리스트와 같은 모양으로 닮는 것이지, 크리스트를 이 시대와 같은 모양으로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의 목적은 새로운 인간상을 만드는 것입니다.20)
1) https://namu.wiki/w/%EB%8B%88%EC%BD%9C%EB%9D%BC%EC%8A%A4%20%EB%A7%88%EB%91%90%EB%A1%9C
4) 위 사이트.
5)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144.
6) Darrell L. Bock, 『BECNT 누가복음 1』, BECNT 성경주석, 신지철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751.
7) Robert Guelich, 『마가복음 1-8:26』, WBC 성경주석 34상, 김철 옮김 (서울: 솔로몬, 2001), 223.
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48.
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49.
1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50.
1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51.
1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83.
1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85.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87.
1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90.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92.
1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94.
1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96.
1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99.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165.

첫댓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고 다만 가슴으로 느낄뿐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지 말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밝은 눈으로 바라보자구요.
남의 잘못을 보고 빈정대지 말고 잘하는 점만을 골라보며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내 모습을 반성해 보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살아가게 마련이지요.
오늘도 많은 관심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즐거움과 행복과 가득한 아름다운 하룻길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잠 7:2).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