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69
제7장 청풍산의 두령들
제31편 번갯불 진명 31-2
성미가 급한 진명은 관군들을 마구 독촉해 추격을 계속시켰다.
그러자 이번에는 서쪽에서 징소리가 크게 울리며 우거진 잡목 속에서 붉은 깃발을 든
일련의 무리들이 달려 나왔다.진명은 군사들을 이끌고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얼마쯤 가다 보니 산속은 깊은 적막 속에 잠겼다.길은 끊기고 어딘지
방향도 알 수가 없었다.산속에는 잘라놓은 나뭇단들이 쌓여 길을 막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지고 밤이었다.하늘에는 달빛이 가득 찼으나 산속은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 있었다.진명은 잡목에 불을 놓았다.
바로 그때 산 위에서 난데 없는 피리소리가 들렸다.산 위를 바라보니 몇개의 횃불을
밝혀 놓은 곳에 화영과 송강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진명은 분통이 터져 소리쳤다.그러자 화영이 진명에게 태연히 말했다.
“진총관, 역정이 심하구려. 오늘은 돌아가 쉬시고 내일 다시 만나 한번 겨루어 봅시다.”
진명은 벌컥 화를 냈다.“네 이놈, 도적아! 썩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우리 3백 합만 싸워보자.”그러자 화영은 웃을 뿐이다.
“진총관. 당신은 오늘 몸이 좀 고단할 것이오. 내가 지금 싸워서 이겨도
자랑거리가 못 될 것이니 내일 다시 합시다.”진명은 화가 터졌으나
화영의 활 솜씨가 두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진명이 할 수 없이 군사를 거두어 돌아왔으나 사태는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본부 진영이 도적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산 위에서는 화포와 불화살들이
일제히 쏟아져 내리고, 그 배후에서 수십 여 명의 졸개들이 활을 쏘아대고 있었다.
게다가 삼경쯤에는 높은 곳에서 물이 쏟아져 내려 삽시간에 물난리가 났다.
군사들이 모두 물속에 잠겨버렸다.
군사들이 앞을 다투어 언덕 위로 오를 때 도적떼들이 관군들을 하나씩 포승줄로 묶었다.
관군들은 모두 도적들에게 잡히거나 물귀신이 되고 있었다.
그쯤 되자 진명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관군들은 전투복이며 갑옷과 무기들을
모조리 잃고 말았다.진명의 처절한 참패였다.그 모든 작전이 송강과 화영의 계략이었다.
마침내 진명은 군사 5백 명을 잃고 말 7,80마리도 약탈당한 후 자신마저도 도적의
졸개들에 의해 사로잡히고 말았다.졸개들이 진명을 발가벗겨 동아줄로 묶어
산으로 올라왔다.그때는 이미 날이 밝았다.산채에는 다섯 명의 호걸들이
취의청에 앉아 있다가 진명이 결박당해 끌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 화영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진명의 결박을 풀고 옷을 입힌 다음 그를 의자에
앉히고 엎드려 절했다.진명은 깜짝 놀랐다.
“나는 이미 사로잡혀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몸인데 장군이 웬일이시오.”
“아닙니다. 졸개 놈들이 장군을 몰라보고 이런 모독을 한 것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저기 한가운데 앉으신 분은 누구신가?”
“저분은 운성현의 송압사 송강이시고, 여기 이분들은 이 산채의 주인 되는 연순, 왕영,
정천수십니다.”“아니! 송압사라니?
그럼 혹시 산동의 급시우 송공명이란 분이 아니신가요?”
화영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송강이 나섰다.“그렇소. 내가 바로 송강이오.”
그러자 진명은 자리에서 물러나 큰 절을 올렸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진명은 송강으로부터 이곳까지 와서 있게 된 연유를 모두 듣게 되었다.
“일을 한쪽만 보고 판단하여 크게 그르쳤습니다. 저를 돌려보내주신다면 모용에게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그러자 연순이 나섰다.
“총관께서 청주의 5백 병마를 다 잃었는데 무슨 면목으로 다시 돌아가겠소.
더구나 모용부윤이 총관을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이대로 산채에서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러자 진명은 곧 뜰로 내려서며 사정했다.“저는 살아 있는 한 송나라 장군이오.
죽어서도 송나라 귀신이 되기로 작정한 사람이오.조정에서 내게 병마총감을 내리고,
겸하여 통제사의 관직을 내렸는데, 제가 어찌 산속에서 몸을 던져 조정을 배반하겠습니까!
여러분께서 나를 죽이시든가 보내시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내 뜻은 굽힐 수가 없소이다.”
- 70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