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밭 깨꽃
비를 좀 더 뿌렸으면 싶은 장마가 일찍 끝나 아쉽다. 강수량이 예년에 비해 적음보다 장마 이후 한동안 지속된다는 폭염이 신경 쓰인다. 당분간 한반도 주변에는 북태평양고기압에다 티벳고기압까지 밀려와 강우전선이 형성될 일은 없단다. 인터넷으로 주간 일기예보를 검색해 봤더니 비나 구름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최고기온은 삼십 도를 훌쩍 넘고 밤은 연일 열대야에 해당했다.
우리 집에선 에어컨 가동은 이직 생각 않는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에어컨을 켤 셈이다. 칠월이 절반 지난 셋째 일요일 새벽이다. 간밤 열대야 속에 초저녁잠을 청해 일찍 일어났다. 아침밥을 해결하고 시내버스 첫차로 산행을 감행했다. 어차피 집에 있어도 피할 수 없는 더위라면 숲속을 좀 거닐다 나올 생각이었다. 동정동에서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탔다.
갓골을 지나 천주암 앞 비탈을 올랐다. 차창 밖 길섶 노란 달맞이꽃이 화사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즈음이니 달맞이꽃이 아니라 해맞이꽃으로 불러도 될 듯했다. 이미 발품 판 보람은 찾은 셈이다. 달맞이꽃은 한여름 밭둑이나 강기슭에 무성하다. 같은 귀화식물이긴 해도 가시박처럼 밉상을 아니다. 가시박은 넝쿨로 뻗쳐나가 토종을 못 살게 구는 생태계 교란 식물로 골칫덩이다.
감계 신도시 아파트를 앞둔 외감마을 앞에서 내렸다. 동구 밖을 드니 노변 밭뙈기에는 참깨 꽃이 활활 피었다. 여름날이면 내가 수년에 걸쳐 그곳을 지나치지만 신농씨 같이 고추면 고추, 콩이면 콩, 여름 농사를 참 잘 지었다. 해마다 작물을 달리한 돌려짓기로 올해는 참깨를 키웠다. 이른 봄 싹을 고르게 틔어 어느 한 곳 빈자리 없이 수북하게 자라 꽃을 피워 꼬투리가 달려갔다.
달천계곡 방향으로 들다가 높다란 남해고속도 지선 교각 곁을 지나 창원터널로 갔다. 고압 송전탑이 지나는 산자락은 단감과수원이었다. 과수원을 지나 활엽수 숲으로 드니 조금 전까지 들려오던 고속도로 노상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음이 그쳤다. 불과 터널 입구와 거리는 얼마 아니지만 숲이 주는 효과를 실감했다. 산길 들머리는 고갯마루 성황당처럼 돌무더기 돌탑이 쌓여 있었다.
평소는 건천인 개울이 장마철 이후라 맑은 물이 흘렀다. 손을 담그니 아주 시원했다. 모자를 비켜 벗어 이마의 땀까지 씻었다. 개울을 건너 부엽토 길을 걸었다. 인적 없는 숲에서 가랑잎이 삭아 폭신한 길을 길으니 마음이 평온했다. 숲은 산새소리도 들려오지 않은 아침 이른 시각이었다. 등산로에서 내려서서 숲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길이 보이긴 해도 그건 산짐승이 다닌 길인 듯했다.
한여름 이맘때면 영지버섯이 돋아나는 철인지라 두리번두리번 숲속을 살펴도 보이질 않아 다시 등산로로 올라섰다. 양미재로 가는 숲길에서 등산로를 벗어났다 다시 오르길 반복해 봐도 영지버섯은 찾아내질 못했다. 고개 못 미친 너럭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고 얼음생수와 곡차를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농사를 짓는 지인에겐 날씨가 무더워 방문이 어렵겠다는 문자를 넣어주었다.
사실 날씨가 폭염이 아니라면 양미재를 올랐다가 하산 길에 지인 농장을 찾아갈 셈이었다. 한 달 전 그곳 밭이랑 심어둔 열무가 다 자라 쇠었을 것이다. 열무를 뽑고 고구마 잎줄기를 따서 우리 집 찬거리로 삼을 작정이었는데 마음을 거두었다. 지금은 걸을 만해도 한두 시간 지나면 뙤약볕이 뜨거워 들길을 걸을 수 없지 싶었다. 너럭바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한동안 명상에 잠겼다.
가부좌를 풀고 양미재를 넘었다. 구고사 뒤편 산언덕에서 영지버섯을 한 무더기 찾아냈다. 아침 이른 시각 길을 나서 숲에서 땀 흘린 보람이 있었다. 구고사로 내려가니 법회나 재가 없어서인지 절간은 절간 같았다. 법당 아래서 손을 모은 뒤 약수를 한 바가지 받아 마셨다. 산정마을 내려가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다시 양미재를 넘어 외감마을로 나왔다. 18.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