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포만을 사이에 두고 변산반도와 마주한
고창 하전마을 갯벌체험마을에는
철 지나 노는 이 없어 바람만이 오가는 축구골대 갯벌에 서있고
체험 아닌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딸딸딸 덜덜덜 경운기 몰아가는 소리가
딸 아들 다 키운 어르신 자랑처럼 들립니다.

검단선사의 진심이 통했을까
도적질 그만 두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던 그 자리
염전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장어구이와 바지락 칼국수 손님맞을 준비에 바쁜
일요일 오전 열시 반이 아직 일러
굳게 닫힌 소금전시관
지나가는 객에게 전설을 말합니다.

선사를 뵈러 떠나는 그들의 어깨에 올라 앉은 것은
도적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벗어버리고 다시 태어났다는 순백의 정표
해냈다는 자랑
스승에 대한 보은
중력을 거스르는 기쁨
그리하여 이름한 보은길 따라 걷습니다.

해풍에 떠밀려 누렇게 익어가는 논길따라
조선말 여성 명창 진채선 소리를 따라
사등마을로 들어서면
삼거리에 면한 집 담벼락에 낙서처럼 선운사 방향이 화살표와 함께 그려져 있고
반대로 길을 잡고 나아가면 터만 남은 진채선 생가가 골목안 막다른 곳에 있습니다.
판소리를 모아 전승한 신재효 선생이 애제자로
망해가는 나라 궁하나 세우면 번듯하게 일어설줄 알았던
흥선대원군 그가 중건한 경복궁 연회에서 당당히 이름을 날린 진채선
그 이름 앞에는 최초의 여성명창이란 명예가 앞서 나가고
그 뒷태로 애련의 주인공 꼬리처럼 따라갑니다.
진양조 가락처럼 돌아드는 마을길 따라 걷다보면
세월에 곰삭아 가지를 내려놓은 느티나무 더 안에도 마을이 있음을 말해주고
쌓아 놓은 깻단 옆에선 부지런한 아줌마 쪼그려 바지런떨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았던 정자나무 비로서 만나니 동네가 큰 것을 알겠습니다.
350년 느티나무 옆 정자엔 손 때 묻은 바둑판
사람의 왕래를 보여주는데 고개들어 바라본 앞산 재실 솟을대문
나무와 짝을 이뤄 동네 위세를 보여줍니다.

정자나무를 지나면 바다는 점점 멀어지고 선운산이 감싸 안은 골 안으로 들어섭니다.
골안이라고 밴댕이 속처럼 좁아터진 그런 골이 아닙니다.
둥글둥글한 산이 너무 멀지고 그렇다고 답답하지도 않게 불가근 불가원 편안하게 서 있습니다.
골로 들어서기 전 길가 마을에 우뚝선
교회당인지 성당에는 알파와 오메가가 또렸하게 시작과 끝을 말하고
그 옆 원불교 교당에는 둥글게 둥글게 살라고 동그라미 오똑합니다.
도천저수지 수로따라 꽃대궐을 바라보니
화산마을은 원 뜻이 어떠하든 내 마음에 꽃뫼마을로 들어앉습니다.
대추를 주렁주렁 매단 나무가 논두렁에서 손짓합니다.
대추열매를 보고도 안 따먹으면 일찍 죽는다는 소릴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내 생각 보다 몸이 잽싼 화가 슨상님이 벌써 따고 계십니다.
하나를 얻어 깨무니 웬만한 사탕보다 답니다.

수로따라 난 길을 오르면 저멀리 붉은 띠를 두른 숲이 보입니다.
붉은 것이 띠가 아니라 꽃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순간 그렇게 보일만큼 숲이 아름답습니다.
팽나무 곰솔나무 느티나무가 몇백년씩 이웃하며 자라 사동 마을숲이 되었습니다.
동구밖 느티나무에서 만나자고 하면 나무 찾다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를 터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저마다의 나무를 찜해 놓던지
다른 곳에 그들만의 밀회장소를 먀련했을 것입니다.

화산 마을이 키운 사람은 어딘가 달라도 많이 달라서
자기집 마당에서 다리쉼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제 마당에 깃든 것은 짐승이라도 그냥 보내지 않는데
하물며 지나가는 객에게는 말해 무엇하냐며
고창의 명물 복분자 원액에, 순수한 고창쌀로 빗은 복분자 막걸리 두명
ㅤㅁㅏㅊ춘듯 안주는 짝수요 술은 홀수라
챙겨나오신 멋쟁이 청년회장 박씨
놀자(?) 주자(?) 아저씨
길 떠나는 객이 못내 아쉬워
담가놓은 술은 쎄고 ㅤㅆㅔㅅ는데 마누라는 집에 없고
아이들은 멀리 있어라
돌아서며 말 흘리시는 멋장이 빽바지 박노주 화산마을 청년회장님
유순한 산세와 깊은 골 여유로운 들 멀리 바라보이는 변산반도의 기개있는 산세
모두 모두 아름답습니다.

화산마을을 지나면 골은 더 좁아지고 도천저수지 발밑으로 보이면
쳔연마을이 나타납니다.
집이 들어앉아 길이 되고 길은 돌담을 따라 갑니다.
마당에 풀이 자라 지붕은 더욱 낮아진 집을 지나 마을을 벗어나면
밭두렁에서 넘어온 풀에 길이었던 흔적만 아스라이 남아있는 갈래길에
참당암 이정표 서 있는데
머리는 가라해도 마음은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가르쳐 줘도 믿지 못하면 꽝인 것은 산길이나 인생사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시간도 애매하고 산길 접어들면 밥먹을 곳 없을 것 같아 밥부터 먹자고 자릴 잡습니다.
12시 조금 안되었으니 이른 점심이라면 이르겠지만 아침을 6시에 김밥 한줄로 떼운 처지에는
결코 이른 점심이 아닐진대 모두들 저녁을 일찍 먹으려고 그런가보다 하면서 두런거립니다.
아마도 나 모르게 뭔가를 많이 먹었나봅니다.

밥을 먹으려고 자리잡은 곳은 느티나무 밑입니다.
검단선사때 부터야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랬다고 해도 믿을 만합니다.
족히 500년은 훌쩍 넘을 것 같은 느티나무가 지팡이 하나 짚지 않고 서있는 품이
장함을 넘어 신령스럽기까지 합니다.
소금을 매고 참당암을 찾아가든 분들도 산길로 접어들기 전에 이 곳에서 땀을 식혔을 겁니다.
그들이 내려놓은 소금가마니에서 흘러내린 간수가 약이 되어 이렇게 튼실하게 컸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이 나무는 소금먹고 자란 보은나무라 이름 붙여 봅니다.

40여명이 둘러 앉아도 넉넉한 보은나무 그늘에서 먹는 점심은
각자가 풀어놓은 보따리 크기도 크기지만 혹시라도 못 싸온 사람이 있을까 덤으로 준비한 그 마음이 더 큽니다.
젓가락 숟가락 달랑 들고 온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배가 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권하는 인정에 치여 죽을 뻔 했습니다.

오르막 산길에는
밥주걱에 붙은 밥풀 떼 먹다 시어미에게 맞아 죽은 며느리 묻은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며느리밥풀꽃이 삼키지도 못하고 토해 버린 밥풀 두개 입에 물고 있습니다.
능선까지 그래도 오르막이라고 다리를 붙잡지만 가겠다는 데야
사람도 어쩌지 못하는 것을
길지 않은 시간에 능선 갈래길에 다다릅니다.
참당암 가는 길은 누군가 오지말라고 나무로 빗장을 쳐 놓았습니다.
산길로 들어서는 그 길 만큼 사람을 꺼려하는 기색입니다.
가로지른 나무와 흐릿해 보이지 않는 길은 가지마라 가지마라 외치지만
삼인행 필유아사라 스승이 길을 안내합니다.

길따라 곧 만나게 되는 야생차밭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만난 꽃무릇
열정의 화신인양 붉은 꽃잎과 꽃술들
숨겨 놓은 비밀의 정원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이어서 만나는 강아지풀 무리 아래로 보이는 참당암
오늘의 고적함은 여기까지
빗장을 친 사람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선운산 쪽으로 넘어들자 수많은 산행객들
울긋불긋한 복장에
시끄러운 소리들은
천혜절경이라는 낙조대와 천인암
도솔천 내원궁을
종로통 후미진 골목에 찾아들어 만나는
모텔 내원궁 막걸리집 낙조대로
내몰더니
기어이 천마봉 벼랑끝으로
밀어버리더이다.

관광버스 척척받는 암자가 암자일까
바람처럼 왔다가는 먼지처럼 사라지는 불자님들
받아가는 그 복일랑 오래오래 간직하길 바라지만
도솔암 내원궁 알밤같은 지장보살 표정은 요지부동
다시 올 용화세상 중생을 제도할
미륵보살
도솔천 내원궁 언제적 떠나왔나
벼랑 바위 오셨으니
용화세상 시작인가
동학군 패퇴가 안타깝다.

도솔암 뒤로 하고 선운사 향해 가는데 산 속 깊은 곳에서도
사람은 인도로 차는 차도로
산중 암자는 더 이상 선승의 수도를 위해 자리를 내주지 못하고
오로지 시주 받고 복을 팔기 바쁘니
자동차 피하는 마음에 자연이 들어올리 만무한데
선운사 가까워질수록 크게 들리는 확성기 소리 귀신도 쫓을듯 크기만 합니다.

선운산 문화제 할 수도 있지만 사천왕문 안까지 들어올 까닭이 뭔지 궁금합니다.
귀신도 도망갈 소리가 사천왕의 고함이라면 차라리 나을텐데
앰프 용량 파악도 못하는 수준 낮은 기사가
그저 크게 나면 좋은 줄 알고 한껏 키운 소리에
스피커 웅웅대고 귀청이 찢어질 듯 앵앵거려
선운사 문화재는 모두 낯을 돌리니
보기에도 민망하여 황망히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는데
대웅전 앞 배롱나무는
시멘트로 메꿔 놓은 가지가 더 많아져 마음이 짠합니다..
꽃무릇이 한창이라 찾아간 선운사
이미 상해버린 마음에
더 이상 머물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돌아서 나왔습니다.
돌아도 안보고 바쁘게 나왔습니다.

선운사 문화제
거봐라 사천왕 이눔아
내말이 어디 틀린데가 있든
겉으로 멀쩡하고 학식 있는 척한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고
내 말을 하지 않았더냐
지금 저 안에서 벌어지는 난장 봐라
힙합에 몸부림치는 청소년은 그렇다쳐도
넓은 마당 따로 두고 그래 절간 안에 무댈 차린 것은
입장료 욕심때문이 아니더냐
니가 저 꼴을 보려고
나를 잡아다가 네 발 밑에 깔았더냐
네가 나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고
좋아하면 좋아한다 말을 하지 어찌 이리 핍박이냐
만공 경허 보덜 못했더냐
깨치고 난 다음에 무애행 걸림없이
떠돌며 살다 살다
저기 만주 용천 어드메서
문둥이 아낙을 옆에 끼고 안 살았더냐
어여 이 발 들고 나를 꺼내
애지중지 떠받들지 않겠느냐

눈 한짝 찢어지게 부릎뜨고,
두 주먹 움켜쥔 채
사천왕 발 밑에서
호통치는
여인의 소리만 그렇게 남았습니다.
육자배기 가락은 간데 없이
여인의 소리만 그렇게 남았습니다.
2010.9.26일 선운사 문화제를 보고
첫댓글 오늘 청한님의 글과 사진들이 나를 달뜨게합니다. 청한님 발길따라 함께한여행 행복합니다.
전 시골에 갈 때마다 마을 입구나 정자에 큰 나무를 보곤 하는데
그 나무가 느티나무라 하더군요
느티나무가 무병장수 풍년을 기원하는 나무란거와
그 나무의 잎이나 가지를 꺽으면 신의 노여움을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유로 그토록 오랜 세월을 큰 아름드리 나무로 베이지 않고
버티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긱이..ㅎ
저 또한 청한님 발길따라 함께하여 행복합니다(2)^^*
청한님~ 좋은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걸으셨는데 나중에 들린 선운사에서 마음이 편칠 못하셨네요.
평일날 호젓하게 걸을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천왕 발밑에 있는 여인의 모습이 청한님 시야에 들어왔네요.
다음에 가면 저도 꼭 봐야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