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殷)나라 고죽국(孤竹國-河北省하북성 昌黎縣창여현 부근에 위치한 조용한 나라)의 왕자였던 백(伯)과 숙(叔)은 장유(長幼)를 나타내는데, 중국 주(周)나라의 전설적인 형제성인(兄弟聖人)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이르는 말이다.
고죽국의 영주인 아버지가 막내아들 숙제를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었는데 위(位)를 물리기도 전에 아버지가 사망하게 되자 숙제는 형님 백이에게 왕위를 사양한다.
큰 형 백이가 “아버지의 명(命)이다”라면서 궁을 나가버린다. 서로 후계자 되기를 사양하다가 무책임하다는 여론이 들끓자 막내 동생 숙제도 왕위에 오르려 하지 않고 궁을 떠나버린다. 끝내 두 사람 모두 나라를 떠나버리자 어쩔 수 없이 둘 째 아들이 왕위를 잇게 된다.
그 무렵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멸하여 주(周)왕조를 세우자, 두 사람은 무왕의 행위가 인의(仁義)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 녹봉(祿俸)을 거부하고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한다. 이때 왕미자라는 사람이 수양산에 찾아와 백이와 숙제를 탓하며 “그대들은 주나라의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주나라의 산에서 주나라의 고사리를 먹는 일은 어찌된 일인가?”하며 책망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고사리마저 먹지 않았고 마침내 굶어 죽게 된다.
이후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는 끝까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충절을 지킨 의인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어 중국 문화권의 문헌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다. 유가(儒家)에서는 이들을 청절지사(淸節之士)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