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1월 20일 임자. 맑음. 새벽에 일어나 치성을 드리고 잠(箴) 외우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추념(追念)컨대, 그 옛날 우리의 스승인 서산(西山.김흥락) 선생을 따르고 모시던 날에 내 나이 겨우 수십여 세였는데, 선생이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명하시고 가르치시길, “그대는 참으로 돈독하게 믿고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 책을 잡고 정밀하게 연구하기도 전에 주자(朱子)의 글을 존신(尊信)하는 듯하다. 주자의 글을 존신하는 것은 염락(濂洛)을 존신하는 것이고, 염락을 존신하는 것은 수사(洙泗)를 존신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나는 가르침을 받들고 물러나와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제1책 상편을 읽고 암송하였으나 그 나머지는 다만 때때로 뒤지면서 그 뜻을 고찰할 뿐이었다. 그러나 어찌 암송이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 같겠는가. 이제 기력이 점점 쇠하여, 스승께서 기대하고 면려(勉勵)하신 뜻에 만에 하나도 우러러 부응할 길이 없으나 오직 주자의 글을 존신하라고 하신 한 가지 가르침이 단사(丹沙)처럼 환하니 감히 실추(失墜)할 수 없었다. 이에 제1책을 지난겨울 섣달에 보름을 공부하여 하편의 반을 암송하고, 올해는 동짓달에 보름 남짓 공부하여 그 나머지 암송을 다 마쳤다. 이에 『주자서절요』 제1책의 처음과 끝을 꿰뚫으니, 다 나의 소유가 되었다. 40년 동안 『주자서절요』 의 반 책을 암송하다가 이제야 1책의 처음과 끝을 다 얻은 것이다. 세상의 많이 읽고 잘 외우는 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삼여(三餘.책읽기 좋은 때 즉 겨울,밤,비 올때)의 공부에도 차지 못하는 분량일 듯하지만 나는 40~50년을 공부하여 얻었으니, 나의 굼뜨고 미련함은 말할 것도 못 된다. 그러나 잘 외우는 자는 한 번 외우고 말 뿐이나 나는 40~50번을 연이어 암송하며 그치지 않았으니, 이것이 남들의 독서와 다른 것이고, 또한 암송하고 존신하는 뜻을 그 사이에서 행했다. 이제부터 남은 해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요컨대 관 뚜껑을 덮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느 날에 바야흐로 효과를 보아서 고정(考亭.주자)의 문도(門徒)가 됨에 부끄러움이 없을지 모르겠다. 아침에 궤연(几筵)에 배알하고, 네 명의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아침을 먹은 뒤에 묘소에 가서 곡하고 돌아와 궤연을 모셨다. 길에서 『주자서절요』를 서문부터 「정자명서(鄭自明書)」까지 외웠다. 오후에 제15과를 복습하였다. 저녁에 괴시(槐市)·익동(翊洞)의 두 족인(族人)이 축산(丑山)의 산사(山事) 때문에 돈을 거두는 일로 왔다. 대개 이미 며칠 전에 이곳에 와서 독촉하여 거두어 갔는데 나에게는 이제야 온 것이다. 밤에 새로 공부한 15개의 일과를 외웠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1번 통째로 읽었다. 밤이 고요해진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국학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