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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 39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요 7: 39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 이는 그 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1]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영광을 받음"에 관한 말씀은, 여기서는 특히 그의 승천을 가리킨 것이다. 14: 26, 16: 7을 보면, 성령님의 강림은 그의 승천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 요 14: 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요 16: 7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뷕셀(Buchsel)은 "영광"이란 말이,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까지 포함한다고 하였다(Theo., S.74).
슐라테르(Schlatter)는, 이 구절들(37-39)에 있는 성령 관설은 그리스도의 말씀 운동, 곧 신약 시대의 전도 운동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다(Theo., d. Apost., S. 152).
그러나 여기 이 말씀은 신자에게 대한 성령님의 내적 역사, 곧 거듭나게 하는 역사를 가리킨다. 구약시대에도 성령이 역사하셨으나, 신약 시대의 역사는 그 성격이 특이하다.
이 시대(오순절 때)에 임하신 성령은 강수와 같이 풍성하고, 교회 안에 유하시며 교회를 근거점으로 하고 일하신다(Grosheide, Hij in de gemeente woonte en uit de gemeente werkt. 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P.535).
2] (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이 때는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의 희생 전이므로 부활하시기 전이다. 예수가 승천하신 이후 성령의 강림이 역사하므로 성령은 아직 이 세상에 보냄을 받기 전이다.
3] 성령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요한복음 7: 37-39)
어느 교회 피아노 반주자가 성도들에게 '모든 민족에게'라는 새로운 복음송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민족에게 주 성령 부어 주소서∼"라는 첫 구절에서 리듬이 자꾸 틀리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민족에게"라고 "게"의 음을 좀 더 길게 빼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계속해서 틀리게 되니까 피아노 반주자가 고함을 버럭 질렀습니다.
"주 성령이 그렇게 빨리 와서는 안돼요!"
오늘 우리들 가운데 혹여 주님의 성령이 빨리 오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들 가운데 주의 성령이 강하게 임재하시기를 사모하십시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 각각의 심령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이곳에 모든 삶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믿습니다. 모든 불화를 정복하는 하늘의 평화가 있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크고 작은 결박을 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도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생명을 소성케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도 믿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시대적인 약속을 감지하고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인 저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제 자신과 여러분들 안에서 지금껏 성취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고, 또 그 약속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으십시오.
우리가 잘 알거니와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선진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이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은 믿음으로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에게도 이 믿음을 주옵소서!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주옵소서! 역사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오늘 찬양하면서, 기도하면서, 종의 입술을 통하여 들려지는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의 믿음이 뜨거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잠자던 믿음이 다시 깨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소극적인 믿음이 강하고 적극적인 믿음으로 바뀌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은 더 좋은 학식을 요구합니다. 더 좋은 조직을 갖기를 원합니다. 더 좋은 사상을 갖기를 원합니다. 더 좋은 물질을 갖기를 원합니다. 더 좋은 환경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시대보다도 더 큰 불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여, 이곳에 불을 내려주옵소서!"
성경에 보면 엘리야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 때가 어느 때입니까? 영적 어둠의 시대입니다. 영적 기근이 세상을 덮을 때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그 당시의 시대를 가리켜서 기갈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배고파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목말라 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이 없는 영적 기갈의 시대가 바로 오늘 우리의 시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의 시대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차라리 경건의 모양이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에 경건의 모양이라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 속에는 거룩한 능력이 없습니다.
때문에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권능의 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나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민족의 장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인생 여정에서 쉬운 승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다만 하늘의 능력을 힘입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늘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으로 권능의 채움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비전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제발 사람을 헐지 말고 인물을 세우십시오. 내 입술에서 저주와 비방과 헐뜯음과 공격적인 언어를 다 제거하십시오. 오직 성령의 감동 감화로 내 입술에 축복과 위로와 세움과 은혜의 언어로 가득 채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아십니까? 사탄은 우리들의 마음을 격동시킵니다. 그래서 성질을 돋우게 만듭니다. 그래서 섭섭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 심령 속에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듭니다. 그래서 입에서 비난과 저주와 불평을 쏟아내게 만듭니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들의 마음에 감화와 감동을 일으켜 주십니다. 그래서 온유한 성품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그 심령에 넉넉한 하늘을 품게 하십니다. 그 심령에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게 합니다. 입에서 찬송과 감사와 은혜를 쏟아내게 합니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내 가정이 하늘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내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이 땅의 도덕 풍조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예수님을 만나는데 있습니다. 모든 기쁨은 길과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모든 생명의 행복과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음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경제 회복을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자동차를 팔기를 원합니다. 더 많은 전자제품을 팔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물질적인 팽창이 일어나도 정신적인 팽창이 뒤따라 주지 않으면 망하고 맙니다. 아무리 경제 회복이 일어나도 심령의 회복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지난 IMF 때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소련이나 동구권이 왜 무너졌습니까? 진리가 없으면 무너집니다. 예수가 없으면 무너집니다. 예수가 있어야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예수가 있어야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예수가 없으면 가정도 무너지고, 나라도 무너집니다. 예수님을 떠난 심령에는 더 악한 귀신이 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난 거리는 죄악과 마약과 혼란과 방황의 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 땅의 도덕 풍조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질병이 일어나는 것은 체질 때문입니다. 체질이 바뀌면 그 바뀜에 따라서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기게 됩니다. 때문에 병을 고치려면 그 사람의 체질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사회도 매 한가지입니다. 병든 사회의 체질이 달라지면 문제 많던 사회의 여러 가지 악과 무질서와 파괴와 혼돈의 일들이 고쳐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 제도나 사회 구성 요소나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일시적인 효과 밖에는 없습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이루고 있는 생명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변하고 개혁되고 고쳐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고쳐지고 역사가 고쳐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를 어떻게 체질을 바꿔야 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체질을 바꿔야 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나약하고 이중적이고 무감동적이던 인간 사울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 앞에 항복하고 포로가 되었더니 바울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사건이 있어져야 합니다. 믿을 때에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권능 앞에 포로가 되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능력에 붙잡혀서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다시 한 번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심령에 뿔난 사람은 뿔이 없어져야 합니다. 심령이 강퍅한 사람은 온유해져야 합니다. 시기와 분쟁과 음욕과 질투와 더러운 육신의 열매를 따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이 달라지고 변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는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이 땅에 성령의 바람을 일으켜 주옵소서. 심령들마다에 생기의 바람이 불어오게 하옵소서"
인생을 살다보면 많은 고난과 고통이 여러 갈래로 옵니다. 여러 방법으로 옵니다. 여러 형편에서 옵니다. 그러나 해결의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됩니다. 권능의 손에 붙잡히면 됩니다. 탕자의 모든 고통은 아버지의 품에 돌아왔을 때에 한 순간에 다 해결되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나사렛 예수가 증거 되는 심령 속에는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증거 되는 가정 속에는 큰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가 그 심령에 들어가면 됩니다. 예수가 그 가정에 들어가면 됩니다.
보십시오. 유대 땅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나 잡던 사람이 예수를 만남으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죄 가운데 몸을 팔던 여인이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살맛이 났습니다. 그렇게 돈만 알고 돈 벌레처럼 돈을 많이 벌던 세리장도 예수를 만남으로 삶의 목적과 방향이 바뀌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만나십시오.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나사렛 예수를 만나십시오. 그래서 오늘 주의 말씀을 듣는 모든 심령들 속에 위로부터 주시는 성령의 권능의 큰 기쁨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내 영혼에 기쁨과 행복을 채우고, 내 가정, 내 민족, 이 도성에 성령의 큰 기쁨이 가득 채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진리의 능력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들 속에 운행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들 속에 운행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내 속에서 경험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을 호흡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 곳입니다. 살맛이 없던 사람들이 와서 살맛을 얻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생기의 바람을 맞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지금 성령의 능력을 탐내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십시오.
성령-프뉴마는 숨쉬다,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셔서 모든 심령들로 하여금 살아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는 사람들이 끝없이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한 것은 이 말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 받으라!"
제가 지난 3년간의 설교를 분석해 보았더니 성령의 충만함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주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매 주일 매 시간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제가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 그토록 강조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사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내 가정과 교회와 이 민족이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으십시오.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한번 포로가 되어 보십시오. 주의 사랑에 매여 우리의 영혼이 기뻐 마음껏 찬양하는 은혜를 누려보십시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찬양합니다"♬ 이 은혜의 사건이 여러분에게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혹여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분이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왜 그렇게 성령을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좀 차원 높은 설교를 하실 수는 없는가? 학문적이고 신학적 수준이 높은 설교를 할 수는 없는가?"
이해하십시오. 제 차원이 그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 수준이 그것 밖에 되지 않음을 이해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그런 분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신앙은 앎의 문제가 아니라 누림의 문제입니다. 신앙은 논쟁이 아닙니다. 올바른 신앙은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해방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감상이나 명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속에 역사하는 사건의 대상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 쉽게 사는 인생을 약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풍성하게 사는 삶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닐 때에는 오병이어의 기적 등으로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잃어버린 다음에는 풍성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바다로, 고향으로 다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쉽게 살려고 도망간 결과는 더 많은 고난과 빈곤과 위협과 손가락질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가의 집 다락방에 다시 모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살폈을 때에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하게 된 제자들은 그들의 삶 속에 풍성함이 왔습니다. 3천명, 5천 명을 회개시키는 큰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히십시오. 그래서 제발 종교인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권능에 붙잡힌 영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역사적으로 보아도 종교인이 큰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끝없이 교리적인 논쟁만을 일으켰습니다. 영적인 사람만이 하나님 역사의 맨 앞에 서서 그 많은 고통과 고난을 당당하게 맞서는 주역을 감당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영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끝없이 말장난만 일삼는 종교인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영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얄팍한 지식을 자랑하지 말고,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간증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복된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그런데 이어서 기록된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본문 39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결국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심령이 목마른 자는 누구든지 주님께로 나오라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 심령에 성령이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배'라는 말은 '아랫배', 혹은 '사람의 가장 깊은 부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를 구주로 믿는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성령이 강물처럼 흘러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울의 입술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여기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할 때에 충만함을 받으라는 헬라어 '플레로오'는 우리가 약을 먹으면 약이 온 몸에 뱁니다. 술을 먹으면 술이 온 몸에 뱁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거룩한 것이 온 몸에 배라, 하나님의 힘이 온 몸에 배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여러분의 골수와 심령 구석구석을 만지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새 술에 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여, 오늘 하늘의 거룩한 능력에 다 취하게 하시옵소서."
아십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종교를 붙들지 않고 성령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땅의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는 종교를 붙든 사람은 많아도 성령을 붙든 사람은 적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저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소위 착각적인 신앙에서 깨어나십시오. 오늘 저는 우리 모두가 성령의 새 술에 취하여 내 가정을 진동시키고, 이 땅을 진동시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잘 믿어서 내가 복을 받고, 내 가정이 복을 받고, 내 가문이 복을 받고, 내 민족이 복을 받고, 열방이 복을 받는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아서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된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여기에서 '부어 준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쉬파크'인데, 이 말은 사람을 세워놓고 물을 한 바께스 갖다가 확 부으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쫙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령께서 강하게 기름 부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받으면 환상이 옵니다. 이상이 옵니다. 꿈을 꿉니다. 과거 지향적인 삶이 미래지향적인 삶으로 바뀌어집니다. 무엇보다도 하늘의 능력을 받아야 믿는 사람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늘의 도구, 평화의 도구, 믿음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약속된 영적 자원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나 자신과 이 땅의 도덕적 풍조에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게 하십시오.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자기 한계성을 정복하십시오.
성령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까?
믿는 자들에게서 나타납니다.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지금 여기 기도와 말씀이 있는 곳에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배에서 성령이 강물처럼 흘러 넘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여러분 머리 머리마다 성령께서 강하게 기름 부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모하는 모든 심령들이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권능에 붙잡히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에 붙잡히지 말고 성령에 붙잡히십시오. 사람에게 붙잡히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앞에 붙잡히십시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사니, 나는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것이로다. 생명과 평안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모든 환경과 상황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꿈을 꾸러 왔습니다. 이상을 보러 왔습니다. 절망했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에 저들의 생애에 알지 못했던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로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붙잡혔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한숨이 물러갔습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의 한숨이 떠나갔습니다. 모든 염려와 불안의 한숨이 바뀌었습니다. 모든 미움과 시기와 질투의 거친 숨결이 사라졌습니다. 모드 좌절과 실패와 낙심의 깊은 한숨이 떠나갔습니다.
사도행전 13장 52절에 보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던 제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도 제자들에게서 일어났던 그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늘의 생기로 우리의 호흡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에 기쁨이 강같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승리의 복음을 누려야 합니다.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나는 길은 성령 충만함을 받는 길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살아나는 길도 성령의 임재를 시간마다 때마다 경험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은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을 듣게 될 때에 어둠의 영들에게 포로된 자들의 결박이 풀어질 것입니다. 복음을 듣게 될 때에 눈 먼 자가 보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듣게 될 때에 눌린 자가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듣게 될 때에 어둠 속에서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능력입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에는 복음의 능력이 살아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기적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은 낡은 자동차 엔진 대신에 제트기 엔진을 달고 천국을 향해 달리는 것입니다. 자력 없는 쇠붙이는 바늘 하나도 끌어당길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을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기를 원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말씀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성령님을 이 시간 환영하십시오.
여름철에 바다를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파도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끝없이 밀려와서 부딪히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파도를 바라보는 것보다 밀려오는 파도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파도를 타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미국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를 향해 파도를 보내주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향해서 성령의 파도를 보내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끊임없이 성령의 파도를 보내주십니다. 하나님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보내주시는 성령의 파도를 온 몸으로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성령의 파도를 타십시오. 성령의 파도를 타고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성령의 강이 흘러나리라"
(오주철 목사) 출처: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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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사람입니다.
소중한 오늘 하루도 웃음과 건강이 넘치는 좋은 시간 되세요.💖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