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의 유래
매사냥의 재미에 빠지면 기둥뿌리를 뽑아가도 모른다.
잘 길들인 해동청 보라매 한마리는 열마지기 문전옥답 하고도 바꾸지 않는다.
말을 타는 것은 셋째 한량이요, 첩을 두는 것은 둘째한량이요, 가장 으뜸가는 한량은
매사냥꾼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매사냥을 한다고 모두가 천하의 한량은 아니며 매사냥꾼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매사냥을 즐기는 팔자 좋은 한량이 있는 반면에 매사냥에 목줄이 걸린 사냥꾼도 있다.
그들은 잘 길들인 매로 장끼, 여우, 족제비 등을 사냥해 그것을 장에 내다 팔아서 처자식을
먹여살리는 것이다.매사냥꾼 박서방이 매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는데 운수 사납게도
박새 한 마리를 낚아 챈 매가 돌아오지 않고 산너머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 버렸다.
매에게 목줄이 걸린 박서방은 눈앞이 캄캄해져서 산넘고 물건너 매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 집에 갔다가 이튿날부턴 아예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주막에서 눈을 붙이고
날이 밝으면 또 돌아다녔다.
이레째 되는 날에 내앞마을 동구 밖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었다.
우첨지라는 동네 터줏대감이 어디선가 날아온 매 한 마리를 잡아서 가둬두고 있다는 것이다.
박서방은 곧바로 우첨지네 집으로 갔다.천석꾼 부자 우첨지네 기와집 안마당에 들어서자
사랑방 문이 열리며 우첨지가 모습을 드러냈다.뒤룩뒤룩 살이 찐 우첨지란 사람의 뱃속에는
꾸역꾸역 욕심만 들어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소인은 매사냥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박가라 하오며 나리께서 매를 잡아 두고 계신다기에…"
우첨지는 박서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쳤다.“여봐라, 저 사람을 당장 쫓아내라”
결국 이튿날, 우첨지와 박서방은 고을 사또 앞에서 송사를 벌이게 됐다.
“저희 집 머슴이 3년 전 뒷산에 나무 하러 갔다가 매새끼 한마리를 잡아 왔기에 정성껏 길렀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물어보십시오.”
우첨지는 증인으로 매새끼를 잡아 온 머슴과 동네 사람 일곱명을 데려왔다.
사또가 머슴과 동네 사람들에게 물었다.
“사실이렷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우첨지 말이 맞다고 대답을 했으며 사또가 매사냥꾼 박서방에게 물었다.
“저 매가 너의 것이라는 징표라도 있느냐?”
사또의 말에 박서방은 눈물을 글썽이며
“시치미는 당연히 떼 냈을 테고…” 한숨을 쉬었다.
“시치미?”
사또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첨지를 보자 그도“시치미가 뭐지?” 하면서
박서방을 쳐다봤다.‘오호라, 매사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군.’박서방의 두 눈이 빛났고
매사냥꾼이라면 당연히 알고있어야 할 시치미를 사또도 우첨지도 모르는 눈치다.
시치미란 얇게 간 뿔조각에 매주인의 주소를 써서 매의 꽁지깃 속에 단단히 매어 두는 것이다.
박서방 요청으로 사또가 우첨지로부터 매를 건네받아 꽁지깃을 펼치자 시치미가 나왔다.
머슴과 우첨지 논밭의 소작농들인 동네 사람들은 위증을 한 것이다.
“여봐라, 위증한 저놈들은 곤장 다섯대씩, 우첨지는 열다섯대를 안겨라.”
"그리고 매사냥을 못한 며칠간의 손해 스무냥을 배상토록 하라!"
*참고
시치미의 수할치(매를 먹이고 돌보며 사낭을 하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 따위를 새긴 작고 얇은 뼈로
매의 꽁지깃에 달아둔다.사냥 도중에 배가 불러 달아났던 매는 다시 인가로 찾아들며 찾은 사람은
이를 수할치에게 알려준다.그러나 매를 탐내는 사람은 시치미를 떼어 버리고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모른 척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의 유래이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