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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철도 유지보수 인건비 km당 1.5억… 獨은 5800만원
[코레일 비효율 경영]
국토부, ‘철도안전’ 외부용역 결과
英-佛-獨 비해 작업시간은 가장 짧아
사고-적자 유발 비효율 해소 시급
한국이 철도 시설 유지보수에 영국 프랑스 등 해외 선진국 대비 2배 수준의 인건비를 투입하지만 작업자들의 근로 시간은 오히려 더 짧다는 정부 연구용역 결과가 나왔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잇따른 철도 사고를 줄이고 만성 적자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비효율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동아일보가 21일 입수한 국토교통부의 ‘철도 안전체계 심층 진단 및 개선 방안 연구용역’에 따르면 국내 철도 선로 1km당 유지보수 인건비는 1억5600만 원으로 영국(9000만 원), 프랑스(7100만 원), 독일(5800만 원)보다 1.7∼2.7배 높았다. 이는 국토부가 올해 1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발주해 실시한 용역 결과다.
철도 유지보수에 더 많은 인건비를 들이고도 일하는 시간은 짧아 효율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현장 작업자의 주당 평균 작업시간은 37시간으로 프랑스(40.4시간)와 독일(40시간), 영국(39.2시간)보다 짧았다. 보고서는 “최적 인력을 운용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는 고정된 인력을 투입하면서 인력 활용 수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이번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코레일의 유지보수 업무 독점을 깨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 아예 상정되지 못하는 등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순구 기자, 이축복 기자, 최동수 기자
코레일 철도보수인력, 獨의 2배… 작업시간은 獨-佛-英-日보다 짧아
[코레일 비효율 경영]
외주인력 정규직 전환… 2000명 급증
인력 39%가 5년 미만… 숙련도 부족
“미흡한 장비-역량 부족에 사고 발생”
운영-유지보수 분리구조도 문제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역에서 발생한 무궁화호 탈선 사고. 뉴시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대전사업소에서 선로 40km 시설을 관리하는 데 투입하는 인력은 총 28명이다. 이들이 야간에 작업하는 시간은 1인당 3시간 반에 그친다. 프랑스 파리사업소가 같은 길이 선로 작업에 15명을 투입하고, 작업 시간도 4시간 반인 것과 차이가 크다. 일본의 경우에도 20명이 최소 4시간 작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더 많은 인력이 더 적게 일하고 있는 셈이다.
21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국토교통부의 ‘철도안전체계 심층 진단 및 개선 방안 연구용역’ 결과는 이 같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코레일 전반에 고착화돼 있다고 봤다. 유지보수 업무를 코레일이 위탁받아 독점하며 업무 지침 개선, 신규 장비 도입 등 필수 업무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무체계 변경으로 비효율이 누적되고 베테랑 근로자들이 은퇴한 빈자리를 저숙련 근로자가 채우며 안전사고가 잇따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 1km당 유지보수 1.89명, 독일의 두 배 넘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실시한 ‘철도안전체계 심층 진단 및 개선 방안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철도 선로 1km당 유지보수 인력은 1.89명으로 프랑스(1.0명)나 독일(0.76명), 영국(1.26명)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다. 1인당 인건비가 높은 데다 인력도 많이 투입되면서 전체 유지보수비 역시 한국이 2억1300만 원으로 프랑스(1억4200만 원), 독일(1억5500만 원), 영국(1억9500만 원)보다 높았다. 유지보수비에서의 인건비 비중 역시 한국이 73.2%로 영국(46.2%), 프랑스(50.0%), 독일(37.4%)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철도 유지보수 업무가 고비용 체계가 된 주된 이유로는 2018년 시행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이 꼽혔다. 당시 약 1400명의 외주 인력을 정규직 인력으로 흡수하면서 약 5000명 규모였던 유지보수 근로자가 현재 7000명으로 급증했다. 선로에 작업 인력을 많이 투입하는 이유가 근로자가 많아서라는 의미다. 이런 문제는 철도노조 요구로 2019년부터 ‘4조 2교대’ 근무체계가 도입되며 더욱 악화됐다.
용역 보고서는 업무 비효율이 사고 위험과 직결된다고 봤다. 코레일의 시설 분야 현장 근로자는 업무 시간의 20%를 보고에 쓴다. 이는 독일(7%)과 프랑스(10%)의 2배 수준. 현장에서 모바일 기기 등으로 바로 보고하는 해외와 달리 사무소에 복귀해 종이에 글씨를 쓰는 수기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 반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점검’ 시간은 업무 시간의 24%에 그친다. 독일(38%)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국토부는 코레일 사고가 잇따르자 지난해 12월 코레일에 기존 근무체계인 3조 2교대로 환원하라고 명령했다. 4조 2교대를 유지하려면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안전성 검토를 통과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코레일은 3조 2교대 환원을 거부하고, 안전성 검토를 추진해 현재 현장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 SR이 운영하고 코레일이 유지보수
철도 운영과 유지보수 업무가 분리된 기형적인 구조도 문제로 지적됐다. 광역철도의 경우 SR, 서울교통공사 등 운영사가 노선에 따라 다르지만 유지보수 업무는 코레일이 독점하고 있다. BCG는 “업무 분리로 시설 유지관리 규정을 변경하는 과정이 해외에 비해 복잡해 규정 완화나 업데이트 등에 매우 보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유지보수 비용을 코레일이 업무를 위탁받아 실비 정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예산을 절감할 유인 자체가 없다. 신규 장비 구매 역시 시설관리(국가철도공단)와 유지보수(코레일) 간 의사결정에 시간이 걸려 제때 도입이 안 되고 있다. 실제 2018년 1월 코레일이 승인했던 선로점검차와 고압살수차 등의 장비가 4년이 넘은 지난해 8월에야 도입됐을 정도다.
2017년 이후 베테랑 작업자의 은퇴가 늘면서 5년 미만의 신입이 증가하는 것도 작업자 역량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철도 유지보수 인력(6882명) 중 5년 미만 신입은 2017년만 해도 14%에 그쳤지만 지난해 39%로 크게 늘었다. ‘허리 역할’을 하는 경력 5년 이상 15년 미만 근로자 비율은 이 기간 39%에서 8%로 급감했다.
직원 교육, 평가 체계는 사실상 전무하다. 프랑스는 매년 직무 자격평가를 거쳐야 하지만, 한국은 직무 교육 자체가 5년 동안 21시간이다. 프랑스는 1∼3년 단위의 무작위 감사로 직원을 평가하는데, 한국은 별도 제도가 없다.
보고서는 코레일의 비효율 구조가 사고로 이어졌다고 봤다. 지난해 11월 영등포역 무궁화호 탈선 사고의 경우 선로점검차로 레일 표면을 확인할 수 있지만, 내부 결함까지 파악할 수는 없다는 점이 사고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신규 장비가 제때 도입되지 못한 것. 같은 해 7월 대전조차장역에서 발생한 SRT 탈선 사고도 선로 궤도의 뒤틀림이 감지됐는데도 제때 보수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선하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이대로) 숙련도가 떨어지는 사람을 더 투입하면 안전을 위협받는다”며 “디지털 기술 도입과 인력 재배치 등으로 효율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순구 기자, 이축복 기자, 최동수 기자
佛-獨-日선 선로 이상 발견때 관제사와 자동연결… 韓, 카톡으로 연락
[코레일 비효율 경영]
선로 72% 50년 넘은 통신기술 사용
긴급 상황 때 지시체계 혼선 우려
“사고 신속대응 체계 구축돼야”
지난해 7월 대전조차장역에서 수서역으로 향하던 수서발 고속철도(SRT) 열차가 궤도를 이탈했다. 자칫 큰 인명 피해가 날 수 있었던 이 사고는 고온으로 휘어진 선로를 달리며 발생했다. 약 1시간 전 이곳을 먼저 지났던 열차 기장이 선로 이상을 발견했지만, 관제사가 아닌 코레일 본사 기술지원팀장에게 전화로 알렸다. 이 사실을 전달받은 팀장은 관제사가 아닌 본사 시설사령에게 보고했다. 규정대로라면 관제사에게 알려 후속 열차 운행을 조정해 사고를 막아야 했지만 제대로 대처를 못 한 것. 이후 업무지시나 보고도 카카오톡 메시지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뤄졌다. 이 같은 ‘주먹구구식 대응’은 승객 11명이 다치고 약 56억 원의 피해를 낳는 사고로 이어졌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21일 국토교통부 발주로 진행한 ‘철도안전체계 심층 진단 및 개선 방안 연구용역’에 따르면 철도를 운행하고 통제하는 관제 업무에서도 도입 50년이 넘은 통신 주파수로 통신하는 등 비효율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BCG는 “보고 체계가 파편화되어 있고, 통신 방식이 낡은 데다 일원화돼 있지 않아 신속성이 떨어진다”며 “1분 1초를 아껴야 하는 긴급 상황에 보고가 안 된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 국토부 철도안전체계에서는 기관사와 구간담당 관제사 간 연결이 자동화되지 않아 기관사가 구간에 따른 담당자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휴대전화, SNS 단체 대화방 등 보고 방식이 제각각이어서 긴급 지시 체계에 혼선이 생기기 쉬운 구조다. 의사결정 핫라인(직통 전화)도 구축되지 않아 여러 책임자를 거쳐야 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선 기관사가 이례적 상황을 감지하면 지역관제센터 내 지역 관제사에게 100% 자동 연결되는 긴급연락 버튼을 누른다. 일본 역시 기관사가 해당 구간을 담당하는 운송 사령에게 100% 자동 연결되는 무선통신 시스템 버튼을 누르면 된다. 현장 정보가 분야별 사령에게 전화, 카카오톡 등 비공식 루트로 전달되는 국내 시스템과 다르다.
특히 한국은 1969년 도입한 초단파(VHF) 방식을 그대로 쓰는 선로가 전체의 71.9%에 이른다. 이는 짧은 음성만 전송할 수 있고 응급 전화나 관제사 자동 연결 기능은 없다. 반면 해외는 전 구간에 응급 전화, 관제사 자동 연결을 도입하고 있고 통신 방식도 음성과 메시지 전송이 가능하도록 통일돼 있다. BCG 측은 “해외는 관제 집중화 센터와 현장 중심으로 사고에 대응하는데 국내는 이 역할이 대전, 구로관제센터와 200여 곳의 현장(로컬)에 흩어져 있다”며 “신속 대응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축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