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71
제7장 청풍산의 두령들
제31편 번갯불 진명 31-4
진명은 모두가 그렇게 자기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산채에
머물기로 했다.그날 모든 사람들이 송강을 받들어 상좌에 앉히고, 좌우에 진명과 화영,
다음에 세 명 두령이 순서대로 앉아 술을 마시며 청풍채 칠 일을 의논하는데,
진명이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나섰다.“그 일은 아주 쉬운 일이니 따로 의논할 것도 없소.
첫째 지금 그곳을 지키는 황신은 내 부하요, 둘째 그가 내게서 무예를 배웠고,
세째는 나와는 개인적인 교분이 두텁소.내가 내일 가서 황신을 산채로 끌어들이고
화지채의 보물들을 가져오고, 유고의 계집을 잡아다 형장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그 말에 송강은 물론 모든 두령들이 환영했다.다음 날 진명은 아침 일찍 하산했다.
그때 황신은 혼자 청풍채를 지키고 있다가 진명이 온다는 말을 들었다.
“총관께서 혼자 말을 타고 오셔서 책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황신은 몸소 나가 그를 맞았다.두 사람이 자리를 잡자 황신이 급히 물었다.
“총관께서 무슨 일로 호위병도 없이 오셨습니까?”
진명은 먼저 청풍산 도적떼를 토벌하러 간 후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의 경과며
산채에서 송강을 만난 얘기를 했다.“청풍산에 송공명이 계시단 말은 금시초문인데요.”
“자네가 유고와 함께 청주로 압송하려던 운성현의 장삼이라는 사람이
바로 송공명이었네.”
“유고의 말만 듣고 큰일을 저지를 뻔했습니다.”그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군사가 들어와 지금 산채에서 도적의 무리들이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했다.
그들은 송강과 화영, 그리고 연순, 왕영으로 졸개 1백 50 여 명을 거느렸다.
황신은 곧 책문을 크게 열고 그들을 맞아들였다.송강은 졸개들에게 백성을 추호도
손대지 말라고 이르고, 남채로 들어가 유고의 가족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왕영은 유고의 계집을 욕보이고 졸개들은 유고의 집 금은 보화를 다투어 약탈해 수레에
실었다.화영은 자기 집으로 달려가 처와 가족들을 구해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다음 날 송강과 황신이 주례가 되어 화영의 여동생과 진명의 혼례식이 산채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예물은 송강과 연순이 마련했다.
그들은 며칠 동안 잔치를 베풀며 기쁜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계속 즐길 수만은 없었다.
청주의 모용부윤은 화영, 진명, 황신 등 조정의 명장들이 도적떼와 결탁하여
나라를 배반한 사실을 중서성(中書省)에 보고함으로써 조정에서는 대규모의
군사로 청풍산 토벌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러자 청풍산의 두령들은 곧 도회청에 모여 대책을 의논했다.
손바닥만 한 산채에 대규모 관군들이 포위하고 공격해오면 당해낼 도리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어차피 여기서는 견뎌내기 힘들 겁니다. 모두 양산박(梁山泊)으로
들어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양산박은 산동 제주관하(濟州管下)로 그 둘레가 8백 여리요,
중간에 완자성(宛子城), 요아와가 있는데, 지금 조천왕(晁天王)이 4,5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웅거하고 있어 관병과 포도청에서도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는 곳입니다.
아무래도 그곳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하지만 우리가 간다 해도 양산박에서
받아 줄까요?”그 말에 송강은 크게 웃으며 조개가 생일 예물을 겁탈한 일이며 유당이
돈과 글을 가지고 자기를 찾아와 사례한 일들을 소개하자 모두들 기뻐했다.
송강의 청탁이면 양산박에서 그들을 받아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형님의 부탁이면 되겠습니다. 구태여 날짜를 정할 것이 아니라
이곳이 정리되는데로 떠납시다.”그들은 쉽게 결론을 내고 말았다.
물론 양산박으로 가고 싶지 않은 졸개는 돈을 주어 제 갈길로 가게 하는 한편,
지원자를 모으니 진명이 거느린 군사들만 그 수가 4,5백 명이 넘었다.
그들은 금은, 재물, 의복 따위를 모두 수레에 싣고 노인과 아이들도 수레에 태웠다.
말들만 해도 그 수가 수백 마리가 넘었다.그들이 모두 떼를 지어 한꺼번에 떠나면
관가의 의심을 받게 되므로 모두 관군 행세를 하기로 했다.
청풍산을 떠나면서 그들은 산채에 불을 지른 다음세개의 대열로 나누어 출발했다.
제1대는 송강, 화영, 제2대는 진명, 황신, 제3대는 연순, 와영, 정천수였다.
각 대대마다 깃발을 달고 '도적을 잡는 관군' 이라고 썼으므로 길에서 아무도 그들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 72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