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주당이 승리한 것도 아니고 한나라당이 진 것도 아니라 오세훈 서울시장의 개인적 정치적 패배라고 부르는 것이 무상급식 투표율이 보여준 분석이라고 봐야 한다. 유권자가 3천만 명이건 4천만 명이건 간에 투표하러 나가는 사람은 항상 전체 유권자의 절반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흔히 총선과 대선은 모든 정당이 출현하고 각 정당이 가지고 있는 화력과 물량, 그리고 인해전술이 총동원 되는 입체적인 전면전인데도 불구하고 지난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고작 46.1%였고 , 지난해 실시된 6.2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겨우 과반수를 넘긴 51.6%에 불과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17대 대선 때의 투표율도 기껏해야 62.9%였다. 특히 무관심 속에 치러지는 국지전 성격의 재, 보선에는 여,야가 총출동을 하지만 투표율은 기껏해야 30%대를 왔다 갔다 하는 점도 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10만 명이나 투표장을 찾아 25.7%라는 투표율을 보여줬다면 사람을 뽑는 선거가 아닌 정책 선거에서 나온 투표율 치고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투표율이라고 봐야 한다. 이 수치를 지난 18대 총선 평균 투표율 46.1%에 대입하면 가령 민주당이 투표에 적극 참여를 하여 정면대결을 벌였다면 민주당은 k.o 패 당했을 수치라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 어찌됐건 유효 투표율 33.3%에는 한참 못 미쳤으니 딴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 이력서를 보면 명문 학교 출신에다 경력도 화려하여 머리좋은 사람들은 국회에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것을 보면 아마추어에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야를 불문하고 도대체 전략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은 오세훈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인들은 정치와 정책을 혼돈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책문제를 다분히 정치 이슈화 시키는데 천재들일 것이다.
오세훈에게는 전략과 전술이 없었다. 처음부터 무상급식 문제를 정치 이슈화 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선 불출마 까지는 몰라도 시장 직을 거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대권 불출마 문제도 단도직입적으로 거론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남은 시장 임기를 다 채우겠으니 관심을 가져달라고 노이즈 마케팅을 펼쳐야 했던 것이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표현만 다를 뿐이지...
그리고 시장 직을 함부로 거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만약 이번 주민투표에서 유효투표율에 미달하면 야당과 원점에서 재협상을 추진하여 정치력으로 풀어 나가겠다고 해야 했다. 오세훈의 전략적 미스는 또 있었다. 서울시 의회에서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적어도 정치적 협상을 여러 차례 시도하여 서울시민의 관심을 유도하는 전술적 연출을 끈기 있게 해야 했지만 그것도 없었고,
당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주민투표를 결정하기 전에 적어도 한나라당 지도부와 숙의를 하고 고민을 하는 장면도 연출해 내야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도 못했다. 또한, 민주당이 일찌감치 투표 거부를 선언해 놓았으니 역대 총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재,보선 선거의 투표율 추이를 면밀히 분석하여 야당이 불참하는 투표에서 33.3%를 과연 획득할 수 있을 것인지 사전에 검토해 보는 시물레이션도 해봤는지 모르겠다. 만약 위와 같은 검토과정을 거쳤다면 적어도 전술적인 측면에서 정책 채택 문제로 국한 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저 오기와 깡으로 덜커덩 일을 크게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오세훈 주변에 과연 책사라는 인물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할 따름이다.
급식문제가 이슈가 될 때부터 많은 전문가와 논객들은 정책문제에 국한된 주민투표의 특성상 다른 지자체의 예를 들어 마지노선인 33.3% 투표율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지만 오세훈은 그런 지적을 외면하고 독단적으로 불투명한 도박판에 판돈을 다 걸은 결과 이제는 쪽박 밖에 남지 않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보수 일각에서는 박근혜에게도 일말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맹꽁이 같은 생각들인 것이다. 무상 급식 문제는 한나라당 당론이 아니었음은 물론이고 지난 6.2 지방선거 때 오세훈 시장이 내 걸었던 서울시 공약도 아니었다. 서울시 의회의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기 위해 꺼내든 돌발영상이었다.
경기도 의회에서도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났지만 약삭빠른 김문수 지사는 재빨리 덫을 피해 나왔지만, 서울의 경우는 전술상의 부재로 인해 오세훈이 엮이어 들어간 것이고... 해서, 박근혜가 뛰어들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박근혜는 투표율이 33.3% 에 절대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면 오세훈의 정치적 미숙을 탓해야지 이게 박근혜에게 핑계를 댈 일인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언론에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론하고 있다. 후보자들의 이름도 솔솔 나오기 시작한다. 보궐선거가 실시되면 민주당의 승리가 유력하다고 한다. 일리도 있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어 시정을 한번 운영 해 보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책임이 무한대로 보장되어 입으로만 시민들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고 여당을 무한대로 비판하는 입장에서 한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가로 변신하는 순간부터, 정치와 행정이 어떻게 다른지 실감하게 될 테고 민심의 화살이 어디를 겨냥하는지 한번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인기 있는 노무현이 집권 시절에는 왜 그렇게 천박을 받았는지, 그리고 500만 표 차이로 이긴 이명박 정권이 왜 민심의 외면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입으로 달콤한 사탕발림 소리를 하는 정치와 실제 정책을 집행하고 운영해야 하는 행정의 차이에서 기인한 탓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돈(예산)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