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왕산악, 우륵
"둥 두두두둥. 땅 땅다다다 땅."
"호오, 그 소리가 참으로 아름답구려. 음악 속에 흐르는 웅장한 기상이 짐의 마음을 더욱
벅차게 하오."
"송구스럽습니다. 마마."
왕산악의 거문고 연구를 듣던 양원왕은 매우 흡족한 얼굴로 칭찬하였다. 왕산악은 임금의
명을 받아 진나라의 칠현금을 고치어 고구려에 맞는 여섯 개의 현으로 구성된 거문고를 만
들어 왕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보여주었다. 양원왕 8년인 552년, 중국 진나라에 다녀온 사
신이 처음 보는 악기를 들고 왕산악의 집으로 찾아왔다. 평소에 노래와 춤에 관심이 많고
또한 악기도 잘 다루는 왕산악은 사신이 들고 온 악기가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대마리간, 이게 요즘 진나라에서 유행하는 악기입니다."
"호오, 그래요. 아주 진기한 것을 구해오셨구려. 흐음 줄이 일곱 개고."
"예, 그래서 중국에서는 칠현금이라고 합니다."
대신은 왕산악에게 아주 공손히 소개했다. 왕산악은 당시 고구려의 국상(현재의 국무총리)
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이 악기를 한번 연구해 보겠소?"
"송구스럽게도 켜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워낙 음악에는 재주가 없어서. 하지만 대
감께서 음악을 좋아하시어 이렇게 가지고 온 것입니다."
"허허, 이렇게 답답한 사람을 보았나. 악기를 가져올 때면 그 소리내는 방법을 익혀 오는
것이 마땅한 것인데."
왕산악은 앞에 놓인 악기의 소리가 듣고 싶었으나 켤 줄 아는 사람이 없어 답답해했다.
그리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칠현금에 대한 소문을 내어 칠현금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을 찾았
다. 하지만 고구려에는 아무도 그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악
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견디다 못한 왕산악은 자신이 직접 칠현금을 연주
하는 법을 깨우치기로 하고 이리저리 소리를 시험해 보았다. 평소에 노래와 악기에 관심이
많았던 탓인지 그는 얼마 되지 않아 칠현금을 켤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소리가 훌륭하기는 했으나 왕산악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고구
려의 웅장한 기상이 실려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그는 고구려에 맞는 새로운 악기를 만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역시 소리를 아름답게 내기 위해서는 뒤 판은 밤나무가 좋고, 위 판은 오동나무로 하는
것이 좋겠구나."
이리하여 왕산악은 여러 시험을 거친 끝에 줄은 여섯 개가 적당하고, 뒤 판은 밤나무로
위 판은 오동나무의 속을 비운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동나무 위에
홰나무로 여섯 줄을 지탱하는 괘를 16개 두어 오늘날 거문고라고 불리는 악기를 만들었다.
거문고를 타는 방법은 단단한 대나무로 만든 체인 술대를 오른손에 끼우고, 왼손으로는 16
개의 괘를 따라 뜯도록 되어 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맑고 점잖은지 고구려의 기상처럼 우
렁찼다.
어느 날 그가 혼자서 악기를 타고 있는데 난데없이 검은 학이 날아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왕산악은 자신이 타고있는 악기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래 검은 학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는 것으로 이름을 짓자. 검을 현, 학 학, 악기
금. 현학금 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현학금을 우리말로 하면 '검은 금'이다. 이 악기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그 이름
이 변하여 거문고라고 불리워졌다.
고구려에서 거문고가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퍼져갈 때, 신라에서도 새로운 음악에 대한 관
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551년 봄, 신라 진흥왕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시찰하고 있었
다. 진흥왕이 낭성(오늘날의 청주)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아주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흐음, 아주 듣기 좋은 소리구나. 이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오너라."
임금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임금 앞에 데리고 왔다. 왕은 이들을
자신에게 가까이 오게 하고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늘 아래 이런 재주는 다시 없으리라. 악기의 소리도 귀를 즐겁게 하지만 그 곡 또한
뛰어나도다. 나를 위해 한 곡 더 들려주오."
우륵은 그 자리에서 진흥왕을 찬양하는 곡을 지어 진흥왕을 즐겁게 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고, 또 그 악기의 이름은 무엇인가?"
"네, 소인이 이름은 우륵이라 하옵고 이쪽은 저의 제자 이문이옵니다. 그리고 이 악기의
이름은 가야금이라 하옵니다."
"가야금이라..."
진흥왕은 우륵의 가야금 타는 소리에 탐복하여 우륵과 그의 제자를 왕궁으로 데리고 갔
다. 우륵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주를 지녀 보리피리, 버들피리를 만들어 부는 등
소리를 내거나 듣는 일을 몹시 좋아했다. 이러한 우륵에게 그의 음악적 재질을 살릴 수 있
는 기회가 왔다. 그는 가야의 서울에서 왔다는 한 나그네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나그네는 이상한 악기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할아버지, 그 악기 이름이 뭐예요?"
"응, 이건 당나라에서 들어온 건데 쟁이라고 부른단다."
쟁은 명주실을 꼬아 만든 13줄로 구성되어 오른손 손가락으로 줄을 뜯으며 연주하는 악기
였다. 우륵은 나그네와 친하게 지내며 쟁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나그네는
우륵의 악기 다루는 실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실제로 우륵은 보름만에 쟁을 마음대로 다루
게 되었다. 나그네는 이러한 우륵을 정식으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마을을 떠나면서 당부
했다.
"나는 일찍이 너같이 음악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아이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런 시골
에서 있지 말고 나를 찾아서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도록 해라."
그 후 우륵은 나그네를 찾아가 음악을 공부하였고 일년 뒤에는 나그네의 추천에 의해 궁
중의 악사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가야의 가실왕은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줄이 열세 개인 쟁과 줄이 스물다섯개인 비파를 보면서 가야의 악기가 없는 것을 아쉬워했
다. 가실왕의 명을 받은 우륵은 왕이 보내준 목수와 함께 새 악기 연구에 들어갔다. 우륵은
목수가 나무를 깎아오면 소리를 내어 그 음질을 비교해 보았다.
"역시 몸통은 오동나무로 하는 것이 좋겠군. 그리고 그 위에 열두 줄을 올리자."
몸통을 오동나무로 정한 우륵은 그 위에 열두 줄을 올리고 기러기발 모양의 괘를 괴어 줄
의 소리가 고르게 하고 오른손의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그리고 가운뎃손가락으로 줄의
머리를 퉁기면, 왼손 각 손가락으로 기러기발 바깥쪽을 눌러다 놓았다 하면서 줄이 떨려 소
리가 나도록 했다. 악기가 완성이 되자 가실왕은 몹시 기뻐하며 가야의 이름을 따 가야금이
라 부르도록 했다. 이에 우륵이 가야의 여러 곳을 다니며 가야금에 맞는 곡을 작곡하기 시
작하여 마침내 12곡을 완성하자, 가실왕은 이 12곡을 가야국의 음악으로 삼았다.
하지만 가야는 날로 쇠약해지고 신라의 힘은 강대해져 기어이 신라에게 망하고 말았다.
이에 나라 잃은 설움에 낭성에서 가야금을 치며 후진양성에 힘쓰던 우륵은 진흥왕을 만나
신라의 궁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가야금의 소리는 은은하고 아름다워 우리 신라인들에게는 아주 잘 어울리는 악기다. 나
는 이 가야금을 모든 신라인들이 즐길 것을 명하겠다."
"마마, 아니 되옵니다. 가야금은 신라의 소리가 아니라 가야의 소리입니다. 그런데 어떻
게 신라인들이 이미 사라진 가야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단 말입니까!"
"무슨 말이오. 가야는 우리 신라와 합병을 맺어 이미 우리의 땅이 아니오. 그런데 어찌 경
들은 아직도 가야를 미워하고 있소. 가야인도 우리 신라인임을 잊었단 말인가!"
진흥왕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야금을 온 신라에서 즐기도록 했다. 그래서 신라
사람들은 명절 때가 되면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가야금을 즐기며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
다. 거문곡을 만든 왕산악은 무려 187곡을 작곡하여 고구려의 힘찬 기상을 유감없이 전달하
였으며, 우륵은 이후 국원(충주)으로 가, 계고, 법지, 만덕 이라는 제자를 양성했다. 우륵이
가야금을 치던 강가의 절벽 위를 사람들은 탄금대라고 불렀다.
이 두 사람은 조선시대의 박연과 함께 우리 나라 3대 음악가로서 꼽히는 사람들이다. 그
들의 음악적 재능과 소리를 연구하는 열정은 보통사람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
다. 이들에 의해서 고구려와 신라의 백성들은 음악을 들으며 노래와 춤을 즐길 수 있었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우리들만의 악기를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삼국시대에
있어서 고구려와 신라는 힘뿐이 아니라 음악에서도 서로가 앞선 문화인임을 뽐내려 했다.
그리고 가야금과 거문고를 만들어 낸 우륵과 왕산악은 그 국가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서 손
꼽히는 맞수였다. 이들이 만나 서로 어울려 음악을 연주했다면 어떠했을까? 웅장하고 강한
힘을 지닌 거문고와 애절한 사연을 말하는 듯한 가야금이 어우러진 국악을 들으며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아련히 떠오르는 산과 강의 어우러짐에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