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일기방 식구님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이석증으로 몸을 돌보는 시간을 보내며, '아은'이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삶과 신앙, 그리고 침묵에 대해 천천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제 올린 글을 일기방 식구님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어 가져왔습니다.
무더운 여름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면서 더위를 슬기롭게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늘 평안과 기쁨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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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첫 단계: 말의 침묵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응답이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말로 나를 설명하며 살아왔다.
왜 그랬는지,
내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말을 통해 나를 설명하고, 이해받고,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말은 사람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설명 속에서 오히려 나 자신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내 안에는 하나의 질문이 깊어졌다.
“나는 무엇을 증명하려 했던 것일까.”
“나는 왜, 누구에게 나의 진실을 설명하려 했던 것일까.”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
나의 진실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던 마음.
그것들은 모두 나를 지키기 위한 마음처럼 보였지만, 때로는 내 영혼을 더 깊은 소음 속에 머물게 했다.
많은 말을 쏟아낸 뒤에도 마음은 쉽게 평안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설명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빈자리가 있었다.
그때 나는 침묵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Fr. Basil Nortz의 『Holy Silence: Practical Guide to Recollection in God』을 묵상하며, 침묵의 의미는 조금씩 새롭게 열렸다.
침묵은 말의 부재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생각과 자기표현의 욕구를 잠잠하게 하고, 흩어진 마음을 다시 하느님의 현존 안으로 모으는 시간이었다.
그 가르침 앞에서 나의 말을 돌아보았다.
진실을 전하고 싶은 마음 안에는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있었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
상처받은 나를 설명하고 싶은 마음,
내가 옳았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그러나 말의 침묵은 말을 억지로 삼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끊임없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였다.
나를 증명하려는 마음의 소리를 잠잠하게 하고, 하느님 앞에서 이미 알려진 나 자신 안에 머무르는 첫걸음이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인간의 영혼을 아름다운 성에 비유했다.
성 안 깊은 곳에는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방이 있지만, 우리는 종종 바깥의 소음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 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성 밖에서 머물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나를 찾으려 했고, 타인의 이해와 인정 속에서 내 존재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내면의 성 첫 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나를 설명하려 하는가.”
“나는 누구에게 나의 진실을 증명하려 하는가.”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 자신을 더 크게 드러내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길임을 가르쳤다.
그에게 침묵은 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더 이상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였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진실은 모든 사람에게 설명되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이미 나를 알고 계셨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던 마음도,
설명할 수 없었던 내면의 무게도
이미 알고 계셨다.
그 순간부터 침묵은 두려움이 아니라 쉼이 되었다.
말의 침묵은 목소리를 잃는 것이 아니었다.
끝없이 나를 설명하던 마음이 멈추고,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나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하는 첫걸음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나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이미 알려지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침묵의 첫 단계에서 시작된 작은 걸음은 나를 잃어버리는 길이 아니라, 참된 나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 길은 아주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서 비로소 나의 영혼은 하느님의 숨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배워 간다.
말해야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이미 사랑 안에 머물고 있음을 배우는 법을.
※ 이 글은 가톨릭 영성 전통 안에서 만난 침묵의 의미를 개인적인 삶의 묵상으로 풀어낸 글입니다.
첫댓글 좋아요. 영성이 녹아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큰 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의 약수터에서 손표주박으로
한움큼 약수를 떠서 마신 느낌입니다.
침묵속에 녹아있는 사랑의 약수가 나날이 퐁퐁 솟아날 것 같군요.
함께 목을 축이는 이 마다 눈이 뜨이고, 마음이 열리고, 사랑이 채워지는
그런 곳이 되리라 믿어요. ---
노란라켓 교장선생님,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귀한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숲속 약수터의 약수”라는 표현이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앞으로도 그 말씀을 격려로 새기며, 침묵 안에서 사랑이 흘러나오는 글을 써 내려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나오며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 침묵의 시간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사랑으로 채워지는 작은 쉼터가 되기를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늘 평안하시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