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인터부에서
말환추천 19.10.23 15:16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이어령 선생이 비 내리는 창밖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이번 만남이 아마 내 마지막 인터뷰가 될거에요.
"지난주에 보기로 했던 약속이 컨디션이 안 좋아 일주일 연기됐습니다.
안색이 좋아 보이신다고 하자 "피에로는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운다"며 쓸쓸하게 웃었습니다. 그는 항암치료를 마다한 채로 마지막 기력을 다해 책을 쓰고, 강연하고, 죽음까지 기록할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습니다. 머지 않아 ‘탄생'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이 인터뷰로 가까운 이들에게 "그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사진 촬영을 할 땐 "씽킹맨(Thinking Man)은 웃지 않는다"고 겁을 주더니, 인터뷰 내내 "쫄지 마!"라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고 밝혔습니 다.
"나같은 환자들은 하루에도 듣는 코멘트가 여러 가지야. "수척해 보여요." "건강해지셨네."
시시각각 변하거든. 알고 보면 가까운 사람도 사실 남에겐 관심이 없어요. 허허. 왜 머리 깎고 수염 기르면 사람들이 놀랄 것 같지? 웬걸. 몰라요. 남은 내 생각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도 ‘남이 어떻게 볼까?' 그 기준으로 자기 가치를 연기하고 사니 허망한 거지.
"창을 열면 차가워진 산소가 내 폐 속 깊숙이 들어와요.
이 한 호흡 속에 얼마나 큰 은총이 있는지 나는 느낍니다.
지성의 종착점은 영성이에요. 지성은 자기가 한 것이지만, 영성은 오로지
받았다는 깨달음이에요.
죽음의 형상이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로 올지, 온갖 튜브를 휘감은 침상의 환자로 올지 나는 몰라요.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마지막에 ‘END’ 마크 대신 꽃봉오리를 하나 꽂아놓을 거라고 했습니다. 피어있는 꽃은 시들지만, 꽃봉오리라면 영화의 시작처럼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을테니. "끝이란 없어요. 이어서 또 다른 영화를 트는 극장이 있을 뿐이지요.“
진짜 지성과 영성을 가지신분입니다. 시시한 단어조차 말이 되고 생명이 되니 깨달은 언어가 빛납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돌아가실 준비를 너그럽게 하고 계신다는데 놀랐습니다.
벅차고 벅찬 감동 존경심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생존하고 계시는 몇 안되는 시대의 선구자이며 깊이 있는 참 지식인입니다. 인간의 존재의미를 승화시켜주시는 스승님입니다.
마지막 인터뷰라는 말이 서글픕니다.
암투병하시는 지도 몰랐고. 이어령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몇 안되는 분 한분이시고 멘토신데 암투병 잘 이겨내시길 기원합니다.
인생이 어찌보면 허무하기도 하고 요즘들어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나이만 먹었다고 저절로 현명해지는 것도 아닐테고 살아내신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꽉 채우며 제대로 살아내셨기에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뜨겁습니다.
진정한 어른의 말씀을 경청하기 힘든 요즘 같은 때에 밀도있는 깊은 말씀 감사합니다. 부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고통없이 즐거우시를 기도드립니다.
나 자신이 선물이라니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에 인간은 왜 나는 이토록 집착과 탐욕을 부리는지 반성해봅니다.
항상 젊은 사고와 앞서가는 지성을 보여준 훌륭한 작가님.
현실 한가운데 위치하고도 늘 문학과 언어가 가진 놀라운 힘과 열정을 보여주던 분. 역시 지금 그 연세에도 많은 창작관련한 사고와 죽음을 준비하며 왕성한 하루하루 보내시고 있습니다.
앞을 알 수 없는 썰물같은 요즘 현실 속에 오랜만에 존경하던 작가님의 근황을 알려준 기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이어령 프로필
이어령은 1934년생으로 현재 만으로 85세입니다.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육인입니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냈으며 소설가,시인이자 수필에 희곡까지 써낸 작가이며 기호학자입니다. 1955년 서울대 재학시절 자신이 학예부장으로 있던 문리대 학보에 '이상론'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상은 작가라기 보다는 그냥 특이한 사람정도로 취급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의 그 난해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풀어가는 솜씨를 보자 새로운 관점을 지녔다고 판단한 문학계 쪽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을 끈것입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어느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기성 문단에 대한 의견을 밝힐 기회가 생겼었는데, 그 자리에서 아주 혹독하게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 일이 소문으로 퍼지면서 당시 한국일보 문화부장이던 작가 한운사의 귀에 닿게 되었고, 한운사는 겨우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이어령에게 그 발언의 요지에 관한 글을 신문에 발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어령이 이를 받아들여 써낸 글이 「우상의 파괴」였습니다.
이 글이 이어령의 정식 데뷔작이된 셈입니다.
[인터뷰] 이어령 교수와의 대담- 삶과 죽음
당신은 이 나라를 사랑하십니까? <李御寧>
당신은 이 나라를 사랑하십니까? 한국은 못난 조선이 물려준 척박한 나라입니다. 지금 백척간두 별랑 끝에 있습니다. 그곳에는 선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헤지고 구멍나 비가 세고 고칠 곳이 많은 나라입니다. 버리지 마시고 절망으로부터 희망의 날개를 달아주소서 어떻케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험남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은 없습니다. 아무리 휘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앉자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의,식, 주, 걱정이 끝나는 날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이 벼랑인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액이 5,000억달러를 넘어서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 시장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만 더 생겨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겁 없는 자들의 키가 한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의 나락입니다. 비상(非常)에는 비상(飛翔) 해야 합니다. 싸음박에 모르는 정치인들 에게는 비들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 팍팍한 서민에게는 독수리 날개를 주십시오 주늑들은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비행을 가르쳐 주시고 진흙 바닥의 지식인들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날개를 보여주소서 그들을 날개 하소서 뒤쳐진자 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헐벗은 사람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사는 노인에게는 학 과같은 날개를 ~주소서, 그리고 남남처럼 되어가는 가족에게는 원앙새의 깃털을 내려주소서, 이 사회가 갈등으로부터 더 이상 찢기기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주소서 소리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가며 대열을 이끌어 가는 저 따스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개하소서, 그래서 이 나라를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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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내시고 교수로써 영혼있는 글들로 국가관을 정립하게하고 삶의 의미를 느끼게하는 분이시지요...
이 기도문을 읽으며 울컥 합니다~
미물들의 지혜도 못따라가는 무지목매함을...
참 존경스런분으로 기억 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