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하면 초록의 산과 들로 야유회 가는 분위기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정의 달로 얼마간 엄숙한 분위기도 있다. 어버이날이 있기 때문이다. 엄숙하다는 말은 부모가 생존해 계시거나 이미 작고하셨거나 마찬가지로 통하는 의미일 것이다. 이 엄혹한 사회에서 자식을 낳아 기르며 한 평생을 살아 내신 것만으로도 인간적인 존경을 받아 마땅하고 거기에 덧붙여져 그 인생살이가 자식인 나와 내 형제들을 위한 희생이었다면 어찌 가슴 뭉클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려 해악을 끼치고 간 조승희 같은 아이나, 2005년 한 해에 1만 2천 명이 자살을 했다는 세계 1위의 자살대국인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중앙일보 이 훈범 논설위원의 말대로 우리 부모들은 낳아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의 교육을 책임진다. 그 살인적 교육비 뿐 아니라 외국유학 보내지 못해서 안달이고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자식을 위해 이 곳 저 곳 기웃거려서 직장 알아봐주고 혼인처 알아봐주고 아파트 사주면서 분가시키면 이걸로 되었는가 싶지만 웬걸 아이 봐줘야지 집 봐주고 살림 거들어야지-끝이 없다. 거기에 더해서 누구의 선례대로 다 큰 자식이 밖에서 맞고 들어오면 건달들 동원해 보복으로 패주기까지 해야 한다. 이렇게 평생을 자식에게 바친다한들 그 말년은 뻔하다. 첫째 딸네서 얼마간 둘째 아들네서 얼마간 또 막내 아들네서 얼마간 얹혀 지내며 축구공처럼 패스되다가 풍까지 오면 탁구공처럼 여기저기로 튕겨지다 결국 길거리 파출소에서 발견되어지는 신세였는데, 지금 중장년 내일 모레면 노년인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식들이 대학 교육까지 마치고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심각하다. 십 몇 년 동안 영어를 배웠으면서 정작 외국인 앞에 서면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것처럼 같은 기간 동안 효에 대해 배웠어도 삶으로 옮겨 실천하지 못하는 문제는 가정교육이 문제인가 아니면 사회교육문제인가. 교육학 개론 제1장에 교육의 목표는 인간의 사회화라고 분명히 나와 있음에도 우리의 교육은 어울려서 더불어서 사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평준화가 어떠니 3불 정책이 어떠하니를 따지기 이 전에 가장 기본적인 인성교육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 교육학자 현용수가 유대인의 인성교육에 대해서 쓴 글이 5월 1일 자 중앙일보 오피니언 란에 실렸다. 유대인 들은 동물학대를 율법으로 금지한다. 이것은 동물애호 차원보다 인성교육 측면에 더 큰 이유가 있다. 동물을 잔인하게 다루면 인간 심성이 거칠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이유는 동물에게도 좋지만 먼저 인성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육을 받는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화초나 채소를 심고 가꾸는 일로 흙을 만지게 한다. 화초를 가꾸어 집과 교정이 아름다워지는 것 이 전에 아이들의 심성이 자연을 닮아 아름다워지게 하기위해서다.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욕하는 것을 금지한 율법도 있다. 상대가 듣지 못한다고 욕을 하면 못 듣는 사람보다 욕을 한 사람의 인성에 더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올 해 중학교 1학년인 여학생들이 친구 한 명을 집단 폭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동네 오빠들을 시켜 성폭행까지 하게한 일이 있었는데 그는 이 사실을 통탄해 하면서 유대인의 인성교육과 한국의 그것을 비교해보자는 얘기였다. 좋은 육질의 고기를 먹기 위해서 개를 매달아 놓고 죽을 때 까지 몽둥이로 때리는 모습을 보며 자란 한국 아이들의 인성은 결국 그렇게 잔인해지지 않았느냐- 그런 얘기였다. 그렇다면 유대의 저 거대한 팔레스타인 장벽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보복 공격으로 임산부에게 쏟아지는 총탄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망원렌즈로 분명 꼬마 아이를 확인하고서도 폭탄 테러범일지 모른다며 조준사격으로 사살하는 이스라엘 병사는 그 멋진 인성교육의 수혜자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결국 유대의 두뇌들이 움직이는 미국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인류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 위에 그 위대한 후손들의 머리 위에 퍼부어대는 포탄들은 어떤 인성교육의 결과란 말인가. 조 승희의 부모가 한국과 미국에서 자식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며 몸으로 보여준 인성교육은 조 승희를 14년 동안이나 가르친 미국의 교육은 다 어디로 증발해 버렸는가.
우리의 교육이던 유대의 교육이던 작금의 사회와 세계를 떠받치기에는 너무나 허약해 보인다. 가정의 달 교육의 달에 스승의 날을 옮기니 마니 하는 문제로 아옹다옹하는 것은 모양이 우습다. 도올과 기성 교단 간에 성경의 자구해석을 놓고 논쟁하는 소리가 이 오월엔 듣기 싫다. 5천년을 면면히 이어 내려온 우리민족의 홍익인간 사상 앞에서 소개된 지 2백년이 안된 유대의 역사를 놓고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우리들끼리 자구해석에 머리 박을 일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 1 여학생 하나를 제도하지 못한 마당에...
홍콩의 축구장에서 새로운 기네스 기록이 작성되었다는 뉴스가 인터넷 포털 대문에 떴기에 들어가 보니 1만 3천 839명이 모여 노자의 도덕경을 동시에 낭독하였다는 거였다. 비움의 철학 무위의 철학으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추종하는 도교와 도덕경에 대한 설명은 빠지고 1만 몇 천이 한자리에 모여 경을 읽어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것이 보도 내용의 요지이니, 실체는 빼먹고 선정성만 남은 신문을 무어라 할 것인가.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막으려고 시사저널 기자들을 통째로 쫓아 거리로 내어 모는 거대자본의 횡포를 보면서 자본주의의 가르침이 승리했다고 외칠 수 있는가.
차창으로 스치는 라일락 향내가 외려 머리를 쑤신다.
부부가 먼저 건강하고 잘 살아야 한다니까-
마누라!
애들은 라면에 김밥으로 대충 차려주고
관절과 신경에 좋다는
염소탕이나 먹으러 갈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