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얘기해...청나라는...양이들의 고지도에 나오는 그 타탈리아가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타타리아는...
중세에 칭기스칸의 대원제국에 버금가는 대 영토를 경영한 국가인... 청나라"라며...
양이들의 고지도상엔...시종일관 타탈리아"이지... 청(淸,칭,첸,텡)"이란 국명표기가 거의 없음이... 그 첫째 이유입니다.
오로지 오늘날의 청도(산동반도)나 천진(북경일대)에만 이 칭(淸)자 지명발음이 표기됍니다.
중조(차이나)가... 현 산동반도나 남경 북경 등지를 다 경영한 기록이 널널한데...
역사는 늘 이곳을 청국(淸國)이 지대하게 관여한 것으로 기록합니다.
타탈리아가 중조의 상징적인 신하국일 뿐...막강한 제후국이기에...황제(천자)를 누르고...내정간섭이 가능했기에 그런 거라 하기엔...
아주 지나치게 자기들 고유영토인양 뻔질나게 관여했음이 둘째 이유입니다.
청국은...타탈리아의 고유 국명이 아닌...중조에 속한 자치국 정도였단 정황입니다.
오늘날도...
중원대륙 중... 청(淸)"자와 발음이 같은 지명들은...이 산동반도 일대에 거의 다 집중됐음이 ...그 세번째 이유입니다.
중앙아(원 만주)에서 현 만주까지...타탈리아 전 영토에 청경(淸京)이니...淸都니...이런 지명이 거의 없단 겁니다.
청국(청나라)...제가 볼 땐...옛 청국국의 고유 지명입니다.
고구려의 영토 중...동쪽의 고구려(靑丘)
그 옛날...중앙아와 동유럽까지 다 지배하던...
배달 구려국 치우씨(제우스)가... 황제헌원을 치고....잠시 중원 동부에 치중키 위해 도읍을 옮겼던 지역입니다...
두 발 달린 짐승... 어딘 못 가냐"란 속담이 있는데...
고대로부터의 북방 기마족들은...두 발 달린 짐승들이...네 발 달린 짐승들(말)을 제 몽뚱이 부리듯 했으니...
깐느므거...한 세달이면 한반도 북부 집안(輯安)에서 동유럽까지 초원길을 주파했을 것으로 봅니다.
북방족들 전통의 봉화불과 파발마를 이용한 역참제도가 아주 잘 발달되어 있었으니여...
잠시, 치우천황에 대한 글을 보시겠습니다...경황이 없어 인터넷에 떠도는 글 중에 그냥 펌을 했습니다.
탁록( 鹿)은 하북성 탁록산 아래에 있다. 마치 그랜드 캐넌과 같은 습곡지형에 요새처럼 이루어진 이 곳에는 치우와 황제가 10년 동안 73회를 싸웠던 지금부터 4700년 전의 고전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버스를 타고 2~3시간이면 닿는 이 탁록은 중국의 오악 중에 하나인 항산(恒山)으로 막혀 있는 산서성과 하북성을 잇는 관문이기도 하다. 탁록을 가로지르는 하천의 이름은 탁수( 水)와 영산하(靈山河)이다. 또 다른 탁록은 산서성 대동부(山西星 大東府)에 비정되어 있다. 항산을 중심으로 하북성의 탁록이 동쪽에, 산서성 대동부는 서쪽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동쪽의 탁록에 더 큰 역사적 비중을 두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이 일대에 남아 있는 치우와 황제의 유적지를 국가 주요문물단위로 지정하고 있으며, 그 동안 황제전통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라고 하여 모든 역사서를 고치고 있으며, 1995년부터 중국문화의 뿌리를 염제, 황제, 치우로 정하여 성역화 사업을 하여 ‘삼조당(三祖堂)’을 세웠고,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의 귀근원(歸根苑)을 만들었다. 지난 기천년 동안 치우에게 주어졌던 오명을 씻으며, 치우가 이룩하였던 동이문화를 자신의 문화로 수용하고 있다. 우리가 단군의 역사에 발목이 잡혀 있을 때, 그들은 우리의 꿈과 신화도 중국의 일부분으로 만들었다. 이제 탁록은 반목의 땅이 아니라, 새로운 화합의 장으로 태어나고 있다. 그 자리에 치우침이 없는 역사의 공정성이 바탕이 된다. 탁록이란, 하북성 탁록현에 있는 지명으로 현재 북경에서 서쪽으로 2~3시간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닿는 곳이다. 탁록에는 치우천, 치우채, 치우묘 등 치우계열의 유적과 황제천, 황제성 등의 황제 계열의 유적이 널려 있는 곳이다.
청구국 강역고
한웅천왕이 처음 강림하여 개천한 이후에 14세 자오지 환웅(치우천황)에 이르러 뛰어난 용맹과 신무로써 여러 제후국들의 반란을 격퇴하고 호태왕처럼 강역을 확장하였다. 환웅천황이 도읍을 신시라 하고 배달국을 개창한 태백산과 동일한 지명이 현재 중국 서부 섬서성과 하북성에 있는 연유로 인해 정확한 위치설정에 있어 여러 설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한단고기』와 『규원사화』의 기록에는 단군조선의 역사와 연계시켜 종합해 볼 경우 백두산 설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좁혀들 수밖에 없다.안함로의 『삼성기』에 한웅씨가 백산과 흑수 사이에 강림하여 자정여정을 천평에 뚫고 정전을 청구에 구획했다고 했다. 여기서 천평이란 지명은 백두산에 있었던 지명으로 조선조 영정조 실록에는 백두산의 북쪽에 있다고 했으며,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고지도에는 백두산 동남쪽에 천평을 기록해 놓아 한웅천왕의 신시의 위치를 백두산 부근으로 비정할 수밖에 없다.그 후 점차 서쪽 중원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간 분파로서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황제헌원씨 등이 지류로서 독립된 세력을 이룩한 것이, 이른바 중국의 시조라고 하는 삼황오제의 시초인 것이다.14세 치우천황에 이르러 염제신농씨의 후손인 유망씨가 정사가 어지럽고 제후들이 배반하자 치우천왕이 이들을 제거하고 중원 제후들의 영역까지 차지하게 되자, 황제헌원씨가 천자의 자리를 탐해 치우에게 도전을 해오게 된 것이다. 치우는 탁록 등지에서 수차례 싸워 승리한 뒤 대륙 동부, 동북부, 북부, 동남부, 전지역을 차지하고 청구국을 개척하여 넓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영토의 확장으로 청구국의 중심지도 옮겨졌다. 그 중심 신시가 된 곳은 탁록과 공상, 곡부 등지로 설정해 볼 수 있다.
탁록은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을 치룬 곳이며, 현재에도 치우와 관련된 여러 유적지가 남아 있다. 문헌에 따라 탁록의 옛 명칭이 청구라고도 하고 있어 탁록과 청구국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상에 대해서는 『태백일사』, 『규원사화』에 기록된 내용이며 중국에서도 하남성 개봉 남쪽 회양을 진류라고 표기하고 있다. 후에 공상은 궁상 또슨 부상이라는 명칭으로 산동성 곡부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였고, 또 치우능과 태호복희씨 능이 동일하게 산동성 일대에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현재에 이르기까지 고대로부터 산동성을 청주 또는 청구라고 하는데 이 역시 청구국에서 유래된 지명이며, 산동성과 그 인근에 청과 관련된 지명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것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먼저 격전장이었던 탁록은 하북성 북경 서북쪽에 있으며 양수 역시 이곳을 흐르는 강의 이름이다. 헌원과 전쟁 뒤에 연과 회대 지방을 무로 점령하고 서쪽으로 정예군사를 보내어 예탁을 지키게 하여 헌원이 동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게 했다고 했는데, 연은 연주로서 산동성과 하북성 경계 일대, 즉 황하 하류 유역일대를 연주라고 했으며, 회대는 회수와 태산 일대를 말하는데, 태산은 산동성에 있는 소위 동악을 말하고, 회수는 하남성 안휘성 강소성을 거쳐 황해로 들어가는 강물을 말한다.이상 치우천왕이 개척한 청구국의 강역을 살펴보면 대륙북부와 동북부, 동부, 동남부 지역을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임을 알 수 있고, 역대 중국의 『사기』와 『서경』 등의 문헌에서 말하는 동이들의 할거 지역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북부와 동북부 지역의 이족들에 대해서 북륭, 북적, 산융, 동호, 숙신이라 불렀고, 산동성 지역에 있는 이족들은 래이, 우이, 도이, 조이, 모이, 양이 등으로 불렀으며, 회수일대의 이족에 대해서는 서이, 회이 등으로 불렀음은 중국 문헌에 나타난 기록들이다.
치우천왕이 회대 땅을 점령하고 서로는 예탁을 지키게 하여 헌원의 동쪽 진출을 막게 했는데 예는 산서성 최서남단 황하가 위수와 합류하는 근처에 있는 지명으로 춘추시대에는 예국(芮國)이 있었고 현재는 예성이란 지명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그래서일까? 황제의 능은 2곳인데, 2곳 모두 이곳 산서성보다 서쪽인 섬서성과 감숙성에 있다. 치우능은 『황람』에 보면 산동성 동평군 감향성에 있다고 하였고, 또한 견비총이 산서성에 있으며 탁록에도 치우의 묘가 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이 동이족의 작품이든 아니든, 후대 중국 학자들의 여러 손을 거치면서 수정되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륙에 존재했던 청구국과 조선의 강역을 『산해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대인국·군자국·청구국은 「해외동경」편에 기록되어 있고, 대인의 시(대인지시, 즉 신시)·조선은 「해내북경」편에, 대언·대인의 시·대인당·군자국·백민구·청구국·흉려토구 등은 「대황동경」편에 각기 나뉘어 있으면서 중복되어 기록되어 있다.또 호불여국·불함·성도재천·치우·풍백·우사·묘민 등은 「대황북경」편에 있으며, 조선은 「해내경」편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우리측 문헌 사료와 모두 일치하고 있고 고대 동이족의 주 활동무대와도 일치하고 있다. 치우와 황제의 싸움은 동이와 하화계의 싸움이 아니라, 천자와 제후와의 전쟁이며 같은 이(夷)로서 본류와 지류와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발문
치우는 탁록 등지에서 수차례 싸워 승리한 뒤 대륙 동부, 동북부, 북부, 동남부, 전지역을 차지하고 청구국을 개척하여 넓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영토의 확장으로 청구국의 중심지도 옮겨졌다. 그 중심 신시가 된 곳은 탁록과 공상, 곡부 등지로 설정해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유라시아대륙 타탈리아 통치영역 중 어디에도...
체첸등 몇 몇 지명들 빼곤...이 청(칭,첸) 발음의 지명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타탈리아 지역은 오히려 연(燕)으로 자주 표기됩니다...연경(북경이 아님)등이 그 예입니다.
우리가 청나라 청국(淸國) 할 때의 그 청은...
대 금나라(金)란... 타탈리아 연방이 아닌...중원 동부,,, 상해, 청도(현 산동),천진(북경일대)가 아니였나 강력히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후금(타타리아)는 중조(차이나)"나 조선(동국&청국)입장에선... 대국(大國)이라 호칭했을 확률이 많았다 예상합니다.
큰 나라란 대국(大國)의 뜻도 있지만...
타타르(따르따르...떼떼르)의 유사음인 대(大)자의 음을 차용해...따르따르국의 상징 문자로 적용한 듯 합니다.
같은 동이족들의 전통지역인...북경일대와 산동반도...상해일대는...상고대부터 청구,칭구,친궈...등으로 불렸기에...
남방 왜족으로 갈력히 의심돼는 중화 공산당은 여직도 그 지명들을 다 못 지우고 처질렀던 것이고여...^. .^
현 만주의 동구(동국)북부가 타탈리아(후금)에 병합되고선...한반도 동국도 타탈리아(후금)에 간접통치를 받고...
청구(청고려)지역이 동국과 분리가 되어 힘을 못 쓰고...중조(차이나)에 완전 병합되었다가...
후금(타탈리아에 점차 그 통치권한이 이양되는 과정이...구한말 이전부터의 청의 조선병합으로 역사에 외곡기술된 거라 봅니다.
한 마디로...조선(朝鮮)은...청구국과 동국의 고유 명칭이요...
대륙조선은... 中朝(중국) 명(明)...등으로 호칭됐다 보이며...청구와 동국을 간접통치했고...
누루하치의 후금은...달달,달단,타탈리,떼떼르,따르따르 등으로 불리웠으며...
중조나 조선에선 이들을 대국(大國,大邱,떼국)이라 불렀다 예상됩니다.
일본과 양이들의 침략에 목숨을 구걸하고
만주와 한반도(동국조선)으로 이주한 중조(차이나)의 지배층들이...
한반도와 만주에서의 안녕을 위하여...치욕스런 역사를 덮고자,,,한반도에서의 영토권을 주장하고자...
청조선(청구국)과 동조선(동국)은...모두 우리 중조(차이나)의 통치를 받았으니...이 모두가 조선였습니다~~~란 논리로...
조선(동국+청구)의 역사에 차이나(중조)의 역사를 덮어 버렸기에...역사가 아주 자연스럽게 조작된 것이며...
오늘날의 후학들이...이리도 헤멨던 것이라 예상해 봅니다.
청구국과 동국이 전통적인 조선(朝鮮)이요..
이 역사가 후대에...타탈리아의 역사로...중조(차이나)의 역사로 섞어치기 된 것이며...
현 한반도와 만주에 이 타탈리아(후금),중조(차이나),청조선(청구국) 유민들이 몰려
원 동국조선(東國)의 원주민들이 뒤 섞이면서...
이를 통합하기 위한 ...이들 전체의 공통신화인...단군신화의 재 강조도 필요했고...
청구국을 따르따르(후금)으로 외곡하기...중조(차이나)를 조선으로 덮어 씌우기...등이 절실했었다 예상합니다.
오히려...역사외곡이 절실했던 건...이미 조선을 다 먹었던... 꺼리길 것도 없었던 양이들과 일본이 아닌...
중조(중국,차이나)에서 한반도로 들어온...원주민 동국인들 눈치를 봐야 했던...차이나인(대륙조선인)들였다 예상됩니다.
이 와중에...치우천자님 때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온...
청구조선(청구國)의 역사가 완전히 날라가고...현재는 지명으로만 근근히 남아 있으며...
따따르(후금,몽골)가 청나라로 외곡되어져 버린...청구국...이 나라가... 역사외곡의 최대 피해국 일까 합니다.
청나라는...
현 만주와 북경 청도(청구,산동)을 차지하곤...이곳에 치중했을 확률이 많은 타타르족으로서...
동이 청구족에 문화 인종적으로 상당부문 흡수되어...서쪽의 타타르와는 별개로 운영된 나라일까 합니다.
살징적인 후금의 황제국으로만 존재했지...그 활동은 현재의 만주와 산동반도,북경에 치중됐던 나라가 아니였나 뵙니다.
청나라의 청(淸)여...
청구국의... 靑 + 만주(중앙아 만주=타타르)를 뜻하는 滿"의 합성일까 합니다.
만주(따따르)지배하의 청구국 이란 뜻 아닐까 싶습니다.
첫댓글전금 - 후금이 청으로 되었다는 시각은 학계의 정설 입니다 중앙아 쪽에 청 이라는 지명이 없는 이유는 그 쪽이 동쪽이 아니기에 그러한 것 이지요 靑은 오행 에서 동입니다 .,. / 치우 그리고 황제 피터지계 싸웠지만 동이나 하화 다 같이 구리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화는 반고환웅을 정점으로 하며 태호복희 와 여왜를 씨족신으로 하고 동이는 제석환인을 정점으로 하는 갈고환웅과 치우씨 계열 입니다
동이 서아는 우랄 알타이를 기준으로 동서로 나눈개념 이었다가 후대에 이르러 하화 들과 동이가 중원에서 한판 붙은 다음 부터 산동반도 동북삼성 그리고 반도조선 을 동이라고 했는데 동이의 수장인 치우가 승리하여 산서 산동 강소와 한반도 그리고 동북삼성을 선택한 거로 보입니다
동국이란 개념도 원 개념은 우랄 알타이 부터 동쪽으로 이동해간 동이족 거주 지역을 이르는 말로 봐야 합니다 동이족은 절대로 한족을 돕는 일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다르기에 그렇습니다 동이족이 한족인 홍수전과 거사를 같이 했다고 홍진영님께서 그렇게 알고 계신거 같은데 이는 착각하신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타타리아 제국(후금제국 7부)중...황제지역인 청구지역을 청이라 한 것이지...청이 전체 타탈리아를 이른 지명은 아닐것이란 글입니다...결국 청의 주 인적구성은 후대로 올 수록...동이 고려족들이 차지하기에...그들은 동만주와 한반도 동국과는 한 종족이나 진배없었다 봅니다.
청이 한반도 와 같은 겨레이지요 그야 두말이 필요 없지요.,. / 그건 그렇고 청이 소중하게 보존하려고 한 만주 봉천지역 말 입니다 청이 거기서 (선양지역) 발상 했다고 신성시하여 봉금령(출입금지) 시켰는데 이또한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도 맞는 것 이 많습니다
연..? 언급이 된 김에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 몇 가지만 여쭤 보겠습니다. 예전에 연개소문이 연나라와 관련 있었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연개소문이란 말 자체가 연나라 왕 '소문' 이런 식이고 고구려가 망하는 순간까지도 연개소문은 연나라의 왕이었다는 의미이신지..? 그리고, 연산군이 세자 시절에 그 지역을 통치하였었기에 그런 칭호(물론 다른 한자를 쓰긴 합니다만..)를 썼을 가능성은 없는지..? 이런 게 궁금하네요. 혹시, 이런 사항에 연구가 있으신가요..~
항상 현 몽골일대와 시베리아 전체를 연연...연(燕)으로 표기했음은...고구려가 위나라와 함게 친 연연이 고구려의 속지가 됐단 것이며...이는 초기 고구려의 동쪽 지역에 해당되니...연개소문의 가계는 동부(동부여)가문이 되는 것이며...연개소문의 아비를...연태조라 호칭함은...연개소문의 가문이...연나라지역 제후였음을 의미한다 봅니다.
한가지 부탁드려봅니다. 아카데믹한, 학문적인 글이 아니더라도....위 본문에서..."중조(차이나)가... 현 산동반도나 남경 북경 등지를 다 경영한 기록이 널널한데...역사는 늘 이곳을 청국(淸國)이 지대하게 관여한 것으로 기록합니다"라는 부분입니다. 독자가 다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쓰신 것인지요?
제가 위 본문에서 인용한 부분은...중조가 산동반도, 남경, 북경 등의 지역을 경영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고, 한편으로는, 청국이 이런 지역을 관여했다고 역사는 늘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서로 대립, 충돌되는 내용인데요...저도 홍 선생님이 언급하신 기록들을 직접 살펴보고자 합니다.
"청조선(청구국)과 동조선(동국)은 전통적인 조선(朝鮮)이다"라는 주장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홍 선생님의 지론이신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조선이라는 말은, 그 뿌리나 근본에 가깝다는 뜻이겠지요? 이 주장이 역사적 사실(Fact)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근거나 증거를 보충하시면 좋겠습니다.
홍 선생님께서는 이른바 '대륙조선'은 '中朝(中國)', '명(明)'으로 불리워졌다는 주장이신데...그리고 이러한 '대륙조선'이 전통적인 조선인 '청조선'과 '동조선'을 간접 통치했었다는 사실이 있으며...그렇다면, 본 카페의 명칭 일부인 '대륙조선'과는 그 의미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보면 맞습니까? 혼동이 되므로 확인하고자 합니다.
홍 선생님은 역사 왜곡의 틀을...전통적인 조선(동국+청구국; 동조선+청조선)의 역사에 대륙조선(중조; 중국; 차이나)의 역사를 덮어 씌운 형태로 인식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진실을 찾는 연구가 이렇게 혼란스럽다...주관적인 가설이지만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다고 봅니다. 다만, 상식과 논리로써 증명하는 경우에는 논리의 비약이 있으면 문제가 있고, 상식 자체가 진실이 아니라면 또 문제가 있습니다. 이 점을 유의해 주신다면 훌륭한 학설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홍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역사가 아주 자연스럽게 조작된 것이다"라고 표현하셨는데....사실, 역사는 이긴 자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의도적으로 왜곡/날조되는 것이라 봅니다. 물론 그 시대의 상황이 이긴 자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역사를 왜곡/날조하도록 내버려두는 일은 있을지라도...잘 아시다시피, 우리가 현재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역사 기록은, 그 기록이 실제 쓰여진 시대마다 왜곡/날조/잘못된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특정 문헌을 근거로 삼을 때에는 그 증거 가치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 평가 내용을 언급하면 더욱 객관적으로 보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역사를 왜곡/날조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김선생님의 애정어린 담금질 고맙습니다...네,역사는 강자의 것이기에...고려사도 중조(대륙조선)에 의해 엄청나게 조작됐을게 뻔한 겁니다...그러나 그 조작은...누가 누구를 다스렸냐...누가 위대했냐...구체적인 국경선들의 자위적인 해석 등의 통치역량과 정통성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지...기본 지역상의 통째로의 역사외곡은 어려웠을 것이며...외곡해 봐야 믿어 주지들을 않으니...외곡의 효과가 전혀 없다 하겠습니다.
중조(대륙조선)은...계속 동쪽으로 몰려...구한말엔 청구국(청조선)의 강역으로 대부분 몰렸다 예상되고....이 때 부터...중조와 조선(고려)의 국호는...의도적이기도 했겠지만...아주 자연스럽게 겹친 것이라 봅니다...어짜피 중조의 입장에선...동국과 청국 모두는 자신들의 동쪽 영지였기 때문입니다.
중조가 만든 지도에...현 한반도만이 조선으로 표기(외곡)된 것은...나라 자체의 위치를 외곡한게 아닌...그 경계를 줄여서 외곡한 것이며...조선이 가끔 명명하던 대조선(大朝鮮)이란 국명은...대국(大國)이란 의미의 타타르+조선...즉,타타르 영역의 조선(동이고려)란 뜻으로 보입니다...양이들 지도의 타탈리 차이나의 정체 같습니다...후기 대륙조선의 직할영토가 대부분 이 청구지역으로 몰리곤...대조선이 중조의 실질적인 인구집중 지구인 동쪽 영토의 전부격이 된 것이기에...자연스럽게 전 중원의 대륙조선 역사가...동쪽 청구국과 동국인...조선(고려)으로 덮어 외곡하기가 수월해진 것이라 예상합니다.
제가 알기로 '청나라의 청'과 '이성계가 입은 청포', '푸른늑대의 후예(징기스칸)'의 푸른색은 모두 끝없는 초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모두 거의 동일한 지리적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결국, 초원은 말을 충분히 먹일 수 있고, 그로인한 강력한 기마부대를 양병할 수 있는 겁니다. 잉여농산물이 풍부하여 그로부터 발생되는 문명은 지금의 중국대륙이 더 발달할 수 있지만, 기병을 바탕으로 한 군사력은 초원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문영이 더 발달한 세력이 전세계를 지배하진 않습니다. 미국이 강한 이유는 결국 군사력입니다.(항공모함과 공군전투력.../ 이제는 말이 필요없죠..^^)
참고로, 한반도의 경우 거대문명이 발생할 수 있는 장소는 절대 될수가 없습니다. 우선, 초원도 없고, 잉여농산물을 만들어 낼수 있는 땅도 없고... 해방이후 중국대륙에서 들어온 과도한 인구로 인해서 1950년대 한국전쟁이후에도 먹고사는 것 자체가 어려웠죠.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농작물이 그렇게 잘 자라지 않고, 해충이 많습니다. 농약을 안치면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걸 어느정도 해결한 사람은 모두 아시는 '우장춘'박사입니다. 제주도 감귤농장 만들고, 한국풍토에 맞는 품종개량 벼를 만들어 내고... 지금이야 반도체 하나만 잘해도 먹고살지만..... 그러니, 예로부터 귀향이나 무덤의 장소로 쓰였다고 보여집니다.
다만,그 동이 고려족들이 점차 대륙서부의 황조들에 밀려...또한,대륙황조들의 패망유민들이 몰려...그 대륙의 역대 엑기스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지역이라서 의미가 있다 봅니다...유독 한반도가 패망 황조들의 피란지가 됨은...지역적인 이유도 잇겠으나...현 만주와 한반도는...동이족들의 전통적인 소도였기 때문이 아닐까 봅니다...도력이 높은 선인들과 불도 스님들...전통적 샤만(무교 제사장)들의 가문과...그 제자들의 땅이였고...고대로 부터 소도를 침범하는 황제는 황제로서 자격을 자연 상실하는 격이라서...피난지론 왔다였지 않았을까 봅니다...집안현의 많은 피라밋들과...현 한반도의 종교 백화점화 현상이 관련있다 봅니다.
첫댓글 전금 - 후금이 청으로 되었다는 시각은 학계의 정설 입니다 중앙아 쪽에 청 이라는 지명이 없는 이유는 그 쪽이 동쪽이 아니기에 그러한 것 이지요 靑은 오행 에서 동입니다 .,. / 치우 그리고 황제 피터지계 싸웠지만 동이나 하화 다 같이 구리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화는 반고환웅을 정점으로 하며 태호복희 와 여왜를 씨족신으로 하고 동이는 제석환인을 정점으로 하는 갈고환웅과 치우씨 계열 입니다
치우씨 계열이 산동 동북삼성을 먼저 차지 한것은 사실이지만 치우나 황제 모두 그 조상님 대에는 중앙아시아 흑수 백산 사이에서 시작 했습니다 본문의 인용부분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글 입니다
동이 서아는 우랄 알타이를 기준으로 동서로 나눈개념 이었다가 후대에 이르러 하화 들과 동이가 중원에서 한판 붙은 다음 부터 산동반도 동북삼성 그리고 반도조선 을 동이라고 했는데 동이의 수장인 치우가 승리하여 산서 산동 강소와 한반도 그리고 동북삼성을 선택한 거로 보입니다
동국이란 개념도 원 개념은 우랄 알타이 부터 동쪽으로 이동해간 동이족 거주 지역을 이르는 말로 봐야 합니다 동이족은 절대로 한족을 돕는 일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다르기에 그렇습니다 동이족이 한족인 홍수전과 거사를 같이 했다고 홍진영님께서 그렇게 알고 계신거 같은데 이는 착각하신거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틀이 오해를 살 수 있게 써져 있어서...방금 수정했습니다.
네.최선생님...후금(타탈리아가 청을 개국한건 맞습니다...후대로 갈수록 동이 청구족에 문화 인종적인 흡수를 당해...오늘날의 만주와 북경일대 산동일대에 치중하다...그저 상징적인 타타르의 황제국 지위만 누리게 되어...중가리아등의 도전도 받고 그런다 봅니다.
전 타타리아 제국(후금제국 7부)중...황제지역인 청구지역을 청이라 한 것이지...청이 전체 타탈리아를 이른 지명은 아닐것이란 글입니다...결국 청의 주 인적구성은 후대로 올 수록...동이 고려족들이 차지하기에...그들은 동만주와 한반도 동국과는 한 종족이나 진배없었다 봅니다.
청이 한반도 와 같은 겨레이지요 그야 두말이 필요 없지요.,. / 그건 그렇고 청이 소중하게 보존하려고 한 만주 봉천지역 말 입니다 청이 거기서 (선양지역) 발상 했다고 신성시하여 봉금령(출입금지) 시켰는데 이또한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도 맞는 것 이 많습니다
봉금지역을 일본이 만주에다 철도부설 하는 대신 청에게 양보 하고 이어서 청이 그 지역을 봉금 했다는데 일본이 이 지역을 왜 포기 했을까요 ? 일본이 포기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지도가 달랐을겁니다
중조(대륙조선)의 천안(天安)이자... 중조의 북경였던...당시는 청조(동이 타탈리아)가 실질적으로 다스리던 북경일대를 청나라의 땅으로 완전하게 인정하는 대신...동북만주를 일제에게 내 달라던 협상같습니다...청의 영토가 중어든 셈이겠고여...
연..? 언급이 된 김에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 몇 가지만 여쭤 보겠습니다. 예전에 연개소문이 연나라와 관련 있었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연개소문이란 말 자체가 연나라 왕 '소문' 이런 식이고 고구려가 망하는 순간까지도 연개소문은 연나라의 왕이었다는 의미이신지..? 그리고, 연산군이 세자 시절에 그 지역을 통치하였었기에 그런 칭호(물론 다른 한자를 쓰긴 합니다만..)를 썼을 가능성은 없는지..? 이런 게 궁금하네요. 혹시, 이런 사항에 연구가 있으신가요..~
항상 현 몽골일대와 시베리아 전체를 연연...연(燕)으로 표기했음은...고구려가 위나라와 함게 친 연연이 고구려의 속지가 됐단 것이며...이는 초기 고구려의 동쪽 지역에 해당되니...연개소문의 가계는 동부(동부여)가문이 되는 것이며...연개소문의 아비를...연태조라 호칭함은...연개소문의 가문이...연나라지역 제후였음을 의미한다 봅니다.
연산군은 솔직히 그 관련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전혀 모르겠습니다...ㅡ. .ㅡ
홍진영 선생님, 좋은 글...감사합니다.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늘 애독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부탁드려봅니다. 아카데믹한, 학문적인 글이 아니더라도....위 본문에서..."중조(차이나)가... 현 산동반도나 남경 북경 등지를 다 경영한 기록이 널널한데...역사는 늘 이곳을 청국(淸國)이 지대하게 관여한 것으로 기록합니다"라는 부분입니다. 독자가 다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쓰신 것인지요?
예를 들어, 기록이 널널하면, 이떤 기록인지? 그 일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대표적인 기록의 제목이라도 바로 옆이나 밑에 표시해주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역사는...기록합니다" 라고 하셨는데, 어떤 역사 기록인지? 독자의 입장에서 궁금합니다.
제가 위 본문에서 인용한 부분은...중조가 산동반도, 남경, 북경 등의 지역을 경영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고, 한편으로는, 청국이 이런 지역을 관여했다고 역사는 늘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서로 대립, 충돌되는 내용인데요...저도 홍 선생님이 언급하신 기록들을 직접 살펴보고자 합니다.
홍 선생님께서 '양이들의 고지도'를 언급하셨는데...그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증거 가치를 부여하시는지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지도 상에서 국가나 땅의 이름을 표시하는 일반 원칙이 있는지요? 제가 잘 몰라서 여쭈어 봅니다.
"청조선(청구국)과 동조선(동국)은 전통적인 조선(朝鮮)이다"라는 주장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홍 선생님의 지론이신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조선이라는 말은, 그 뿌리나 근본에 가깝다는 뜻이겠지요? 이 주장이 역사적 사실(Fact)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근거나 증거를 보충하시면 좋겠습니다.
홍 선생님께서는 이른바 '대륙조선'은 '中朝(中國)', '명(明)'으로 불리워졌다는 주장이신데...그리고 이러한 '대륙조선'이 전통적인 조선인 '청조선'과 '동조선'을 간접 통치했었다는 사실이 있으며...그렇다면, 본 카페의 명칭 일부인 '대륙조선'과는 그 의미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보면 맞습니까? 혼동이 되므로 확인하고자 합니다.
홍 선생님은 역사 왜곡의 틀을...전통적인 조선(동국+청구국; 동조선+청조선)의 역사에 대륙조선(중조; 중국; 차이나)의 역사를 덮어 씌운 형태로 인식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진실을 찾는 연구가 이렇게 혼란스럽다...주관적인 가설이지만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다고 봅니다. 다만, 상식과 논리로써 증명하는 경우에는 논리의 비약이 있으면 문제가 있고, 상식 자체가 진실이 아니라면 또 문제가 있습니다. 이 점을 유의해 주신다면 훌륭한 학설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홍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역사가 아주 자연스럽게 조작된 것이다"라고 표현하셨는데....사실, 역사는 이긴 자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의도적으로 왜곡/날조되는 것이라 봅니다. 물론 그 시대의 상황이 이긴 자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역사를 왜곡/날조하도록 내버려두는 일은 있을지라도...잘 아시다시피, 우리가 현재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역사 기록은, 그 기록이 실제 쓰여진 시대마다 왜곡/날조/잘못된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특정 문헌을 근거로 삼을 때에는 그 증거 가치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 평가 내용을 언급하면 더욱 객관적으로 보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역사를 왜곡/날조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김선생님의 애정어린 담금질 고맙습니다...네,역사는 강자의 것이기에...고려사도 중조(대륙조선)에 의해 엄청나게 조작됐을게 뻔한 겁니다...그러나 그 조작은...누가 누구를 다스렸냐...누가 위대했냐...구체적인 국경선들의 자위적인 해석 등의 통치역량과 정통성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지...기본 지역상의 통째로의 역사외곡은 어려웠을 것이며...외곡해 봐야 믿어 주지들을 않으니...외곡의 효과가 전혀 없다 하겠습니다.
동국(현 만주+한반도)과 청국(베이징+청두+상해)등지의 전통 동이고려의 영역을...서역출신 중조가 그들의 조산과 같은 국명였던...즉,청국국과 동이..그리고 중조(차이나)의 공통조상였던 단군조선(기자조선 포함)의 국호를 적용해...핸정명칭상으론...조선(朝鮮)이라 명칭했다 봅니다...동국과 청국..그리고 양이들은...자타공히, 여전히 고려(코리아)라고 호칭했었다 보이고여...
중조(대륙조선)은...계속 동쪽으로 몰려...구한말엔 청구국(청조선)의 강역으로 대부분 몰렸다 예상되고....이 때 부터...중조와 조선(고려)의 국호는...의도적이기도 했겠지만...아주 자연스럽게 겹친 것이라 봅니다...어짜피 중조의 입장에선...동국과 청국 모두는 자신들의 동쪽 영지였기 때문입니다.
중조가 만든 지도에...현 한반도만이 조선으로 표기(외곡)된 것은...나라 자체의 위치를 외곡한게 아닌...그 경계를 줄여서 외곡한 것이며...조선이 가끔 명명하던 대조선(大朝鮮)이란 국명은...대국(大國)이란 의미의 타타르+조선...즉,타타르 영역의 조선(동이고려)란 뜻으로 보입니다...양이들 지도의 타탈리 차이나의 정체 같습니다...후기 대륙조선의 직할영토가 대부분 이 청구지역으로 몰리곤...대조선이 중조의 실질적인 인구집중 지구인 동쪽 영토의 전부격이 된 것이기에...자연스럽게 전 중원의 대륙조선 역사가...동쪽 청구국과 동국인...조선(고려)으로 덮어 외곡하기가 수월해진 것이라 예상합니다.
제가 알기로 '청나라의 청'과 '이성계가 입은 청포', '푸른늑대의 후예(징기스칸)'의 푸른색은 모두 끝없는 초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모두 거의 동일한 지리적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결국, 초원은 말을 충분히 먹일 수 있고, 그로인한 강력한 기마부대를 양병할 수 있는 겁니다. 잉여농산물이 풍부하여 그로부터 발생되는 문명은 지금의 중국대륙이 더 발달할 수 있지만, 기병을 바탕으로 한 군사력은 초원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문영이 더 발달한 세력이 전세계를 지배하진 않습니다. 미국이 강한 이유는 결국 군사력입니다.(항공모함과 공군전투력.../ 이제는 말이 필요없죠..^^)
푸른 초원이기 보단...淸天을 이른다 봅니다...검푸른(햋빛이 관여치 않은 순수한 하늘색) 하늘을 상징하는 색이며...해 뜰 무렵의 동녁하늘을 뜻하는 색이며...동이를 상징하는 습관이...서역 아랍지대까지 흘러간 청색 선호풍속일까 합니다.
참고로, 한반도의 경우 거대문명이 발생할 수 있는 장소는 절대 될수가 없습니다. 우선, 초원도 없고, 잉여농산물을 만들어 낼수 있는 땅도 없고... 해방이후 중국대륙에서 들어온 과도한 인구로 인해서 1950년대 한국전쟁이후에도 먹고사는 것 자체가 어려웠죠.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농작물이 그렇게 잘 자라지 않고, 해충이 많습니다. 농약을 안치면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걸 어느정도 해결한 사람은 모두 아시는 '우장춘'박사입니다. 제주도 감귤농장 만들고, 한국풍토에 맞는 품종개량 벼를 만들어 내고... 지금이야 반도체 하나만 잘해도 먹고살지만..... 그러니, 예로부터 귀향이나 무덤의 장소로 쓰였다고 보여집니다.
한반도는 대 홍수 이전의 황해가 육지였을 때의 문명권 유민들의 지역이자...만주와 북경,상해,남경으로 이어지는...황해문영인 즉,동이족의 동쪽 지역일 뿐...대륙조선은 고사하고...동이 고려의 영역에서도 중심 번화가는 절대 아니라 봅니다.
다만,그 동이 고려족들이 점차 대륙서부의 황조들에 밀려...또한,대륙황조들의 패망유민들이 몰려...그 대륙의 역대 엑기스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지역이라서 의미가 있다 봅니다...유독 한반도가 패망 황조들의 피란지가 됨은...지역적인 이유도 잇겠으나...현 만주와 한반도는...동이족들의 전통적인 소도였기 때문이 아닐까 봅니다...도력이 높은 선인들과 불도 스님들...전통적 샤만(무교 제사장)들의 가문과...그 제자들의 땅이였고...고대로 부터 소도를 침범하는 황제는 황제로서 자격을 자연 상실하는 격이라서...피난지론 왔다였지 않았을까 봅니다...집안현의 많은 피라밋들과...현 한반도의 종교 백화점화 현상이 관련있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