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1. 4. 큐티
여호수아 14:1 ~ 9
내가 밟은 땅을 주십시오
관찰 :
1) 요단 서쪽 기업의 분배
- 1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 요단 동편의 땅에 대한 배분을 정리한 뒤 이제 요단 서편에 대한 정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분배에 참여한 이들은 제사장 엘르아살, 눈의 아들 여호수아, 그리고 각 지파의 족장들이 함께 했다. 의도적으로 제사장이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단 서편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고, 그 땅을 점령하게 된 방식도 사람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말씀대로” 순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기록하는 기자는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조금의 소홀함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 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 요단 서편에 대한 분배는 사실상 이미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바였습니다. 그것을 다시금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엘르아살, 여호수아, 이스라엘 지파의 족장들은 모두 모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그에 대해 반박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땅이 다른 지파의 땅에 비해서 좋지 않다거나 하는 불만을 표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았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이 믿음의 요소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3절. “이는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준 요단 동편 땅의 기업에 대해서 다시금 언급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레위 자손에게 기업이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을 열 두 지파가 공궤하고, 또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고 가르쳐야 하는 사명이 있음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 4절. “이는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다만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으니” => 요셉의 두 아들을 야곱이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고, 그 아들들에게 자신의 다른 아들들에게 주는 것과 같은 분깃의 축복을 했기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요셉의 두 아들들이 각자의 기업을 얻게 된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 두 지파 + 레위 지파의 구도가 된 것입니다. 요단 서편에서 레위인들이 얻은 것은 48개의 성읍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뿐이었습니다.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없었기에 그들은 다른 지파들의 섬김으로 생존할 수밖에 없는 신앙적 베이스를 갖게 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레위인들이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사명임을 레위인들도 이식하였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이 때 까지는 말입니다.
- 5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셨고, 모세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파의 족장들에게 이미 말해 놓았던 것들이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요단 서편 땅은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각 지파별로 그 땅을 완전정복해야 하는 사명이 또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로 자신이 맡은 지역의 대적들을 상대하다가 힘들면 다른 지파와 연합하여 그 땅을 점령해야 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기록은 각 지파간의 연합에 대한 기록이 드뭅니다. 오히려 각 지파의 이기주의적인 모습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뿐입니다. 하나님이 선대하시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이제는 최소한의 부분을 이스라엘이 각 지파별로 감당하면 되는 상황에서, 다 된 밥에 이들은 코를 빠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2)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신이 밟은 땅을 달라고 찾아오다
- 6절a.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 유다 자손의 대표인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갈렙을 살피면 특이한 부분들이 눈에 띠게 됩니다. 우선 갈렙은 정통 이스라엘 족속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15:19에 의하면 그니스 족속은 아브라함 시대 가나안 족속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갈렙의 가족은 그니스 사람 헤벨과 마찬가지로(삿 4:17) 모압 사람 룻(룻 1:1-5), 헷 사람 우리아(삼하 11:3, 6, 24) 등과 같이 이스라엘의 계약과 축복과는 본래 관계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문헌에 의하면 출애굽을 하기 전, 그니스 사람의 일부가 유다 지파와 합류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믿음은 히브리 민족과는 달리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닌 믿음의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가 진짜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분께 자신들의 운명을 내 맡겼던 것입니다. 갈렙의 일생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갈렙에 대한 이러한 배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렙의 존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스라엘의 혈통성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라는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방향 설정에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6절b.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 이 말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대한 정탐 귀환 보고에서 갈렙이 여호수아와 더불어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였으므로, 그는 가나안 땅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요구한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민 14:24; 신 1:36의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a. “가데스 바네아”는 일명 '가데스'라고도 하는데 원래 명칭은 '엔미스밧'(창 14:7)입니다. '가데스'란 명칭은 고대의 성읍들 중 성전이 있는 지역에 흔히 붙여진 명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명칭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여정 중 주요 사건이 일어난 '가데스'를 특별히 구별짓기 위해 '가데스'란 명칭 뒤에 '바네아'란 말을 덧붙인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신 광야에 위치한 오아시스 지역으로서(민 27:14), 출애굽 중 모세가 제 1차 정탐꾼을 파견한 곳이자(민 13:26), 또한 반석을 쳐서 물을 낸 곳입니다(민 20:1-13).
- 7절.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 갈렙은 사십 오년 전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갈렙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가 가나안에 파견한 12정탐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민 13:6). 갈렙이 혈통적으로 유다 지파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지파의 대표 정탐꾼이 되어서 12정탐꾼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열심이 특별했던 것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갈렙은 정탐을 마친 후 여호수아와 함께 담대히 가나안 공격을 주장했습니다(민 14:6-9).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낙 자손들이 자신들의 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겁에 질려 자신들을 메뚜기로 인식한 나머지 열 정탐꾼들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민 14:10).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실한 종들인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원하는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민 14:24;신 1:36). 갈렙은 그 사건을 일평생 잊지 않고 가슴에 간직하고 이 날을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갈렙은 가나안 땅 정탐을 마친 후에 돌아와 보고할 때, 백성들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과 확신에 따라 자신이 목격한 가나안 땅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고,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 땅이 자신들의 것이 될 것임을 주장했던 것을 여호수아에게 다시 remind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 8절.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 갈렙의 이러한 표현은 결코 교만함이거나 공치사성 발언이 아니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이후의 그의 인생 45년은 바로 그러한 충성의 표현이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사명을 감당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85세의 나이에 이르도록 아직도 전쟁터에 나가 아낙 자손과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자기 관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9절.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께 충성을 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통하여 성취되는 것을 보기를 소원하고 갈망했고, 이제 그 때가 되었음을 알고 여호수아 앞에 나아온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데스 바네아의 정탐 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전체 지도자가 되어 모세의 뒤를 이었지만 갈렙은 감추어져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갈렙은 여호수아를 도와서 가나안 정복전쟁의 최일선에 항상 앞장섰으며, 그의 꿈은 한시도 사그러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르침 :
1) 갈렙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달라고 하는 헤브론 땅은 이스라엘 연합군의 공격 속에서도 살아남은 아낙 자손들이 철병거를 가지고 존재하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그 땅을 다른 지파의 연합 세력이 없이 유다 지파만의 힘으로도 점령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모한 것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믿음의 보고 이후에 이어진 속터지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해서 믿음으로 버텨온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그 약속이 이제 자신이 밟은 땅을 다시 가서 점령하게 됨으로 성취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당당히 주장하며 그 불가능의 땅을 자신에게 허락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갈렙의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상상해 보면 마음이 뜨거워지게 됩니다.
2)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그 땅을 밟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도 아닌 존재가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된 것도 대단한데,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 여호수아와 더불어 받은 언약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그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여기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분명히 그 땅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갈렙의 이러한 요구는 놀라운 믿음의 확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었어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이가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되고, 하나님의 언약의 땅을 차지하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3) 갈렙은 하나님을 분명히 만났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누구보다 열심히 가나안 정복전쟁에 참여했음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신의 땅, 자신의 비전을 성취하고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라는 리더십 아래에서 순종했던 갈렙이 이제는 갈렙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믿음의 사람, 용기의 사람,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적용 :
1) 갈렙이 이렇듯 확신 가운데 거하고 있을 수 있는 근거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어떤 약속을 받아서 그 약속을 품고 있는 것입니까? 북경에서 청년 사역을 위주로 하면서 북경의 여러 캠퍼스들을 돌아다니고, 오도구 지역에서 찬양집회를 하며 공안에게 쫓겼던 과거를 생각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주님께 간구하고, 주님이 주셨던 비전들을 되새기게 됩니다. 북경비전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신 바로 그 비전들이 성취되게 될 것을 그렇기에 간절함으로 기대했습니다. 미얀마를 향하며 주님의 역사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아닌 주님이 일하실 것이기에 내가 품었던 비전은 환상이 아닌 실제가 될 것입니다.
2) 어제 찬영이가 얼바나 샴페인으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시간 민영이 병조와 더 깊은 차원의 여행을 하며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3) 코너스톤 교회의 새벽기도회에서 설교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