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유레카!>
이처럼 혼미했던 시기를 지나 판독의 기준이 서서히 정립돼 갔던 1975년을 마감하면서 이제 재검사의 대상은 폐조직 하나로 단일화 되었고, 1976년 벽두부터는 그 간 의문부호로 처리되어 따로 보관해 두었던 백여 개의 폐조직들을 대상으로 대조시험, 비교시험 등을 통해 덜 의심스러운 것들을 하나씩 배제(rule out)시켜 나갔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로 선별된 폐 조직들이 십여 개. 다시 그 중에서도 ‘+++’ 이상의 강도로 표기되는 조직 몇 개만을 최종 선택하여 이제 확인시험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숨 가빴던 경기의 출발선에서부터 바로 요 며칠 전까지의 기억을 더듬어 온 나는 현미경실 의자에 기대앉아 바로 어제 밤의 가슴 졸였던 결승점 부근에서의 정경을 다시금 떠 올렸다.
일차 확인시험의 결과는 내게 일말의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즉 환자의 초기 혈청으로는 미약한 ‘+’ 반응만을 볼 수 있었음에 반해, 회복기 혈청을 처리한 동일 조직에서는 예의 그 낯익은 무수한 점상의 형광체가 눈부신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데, 그 밝기는 ‘+++’ 로 표기될 만한 훨씬 강한 것이었다. 이는 회복기에서 항체가의 상승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특정병원체에 대한 면역학적 특이반응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다난했던 장애물 경기의 결승점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멋지게 골인할 것인가 아니면 경주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1976년 1월 중순경.
나는 마지막 확인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날 종일 이어진 실험으로 어느 덧 날은 어두워져 사위는 적막한데, 검은 장막 안 현미경 앞에서 홀로 '차단시험'의 결과 판독을 앞둔 나는 경건한 기도자의 자세가 됐다.
'차단시험'은 형광반점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마지막 수순의 실험이다. 즉 면역학 전문용어로 '블로킹 테스트(Blocking Test)'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해당 바이러스 항원의 특이항체가 항원과 결합, 선점하고 있으면 형광물질을 붙인 동일한 항체가 결합하지 못해 형광이 나타나지 않는, 즉 차단효과가 나타나는 원리이다.
이 실험을 위해서는 중요한 재료로서 형광물질이 부착된 출혈열 환자항체(형광항체)가 필수적인데, 이를 제작하기 위해 오랜 기간 수많은 문헌을 섭렵하고 기구를 제작하는데 많은 시간과 심혈을 기울였다.
먼저 정상혈청 처리 후, 형광항체와 반응시킨 폐조직의 검경에 들어갔다. 현미경 위에 슬라이드를 올려놓고 숨을 가다듬었다. 슬라이드를 통해 올라온 수은램프의 강렬한 파란 불빛이 눈을 찔렀다. 녹황색조의 희뿌연 시야를 겨냥해 조동나사로 포커스를 대략 맞추었다. 그리고 미동나사를 돌려 초점을 맞추어 갔다. 서서히 떠오른 녹색의 형광반점들이 점점이 영롱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OK! 형광라벨 항체는 이상 없다.
다음은 환자혈청 처리 후, 형광항체와 반응시킨 조직의 검경이다. 이제 나의 가슴은 서서히 두 방망이질 쳤고 현미경의 미동나사를 잡은 손은 가볍게 떨렸다.
그랬다! 현미경 시야는 아무 빛도 없는 캄캄한 암시야 그대로였다. 시험의 결과는 고대한 대로 완벽한 차단이 일어났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순간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찾았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큰 소리로 ‘유레카’ 를 외치며 자정이 가까운 어두운 연구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눌렸다.
알몸으로 “유레카! 유레카!”를 외쳐대며 욕탕 밖을 뛰쳐나간 고대 그리스 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이 아마도 이러했으리라.
마치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들처럼 폐조직 속에서 녹황색 빛을 발하는 수많은 점상의 형광체들! 이것이 정녕 그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렇게 애써 찾아 헤맸던 그것이었단 말인가!
이것이라면 다만 내가 그 실체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 기실 요 몇 주 간에 이미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지 않았던가!
아직은 이 항원의 본체가 세균인지 바이러스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미생물체인지 분명친 않으나, 들쥐의 폐조직에서 유행성출혈열 병원체가 드디어 두터운 너울을 걷고 바야흐로 그 정체를 드러내는 찰라였다.
격한 성취감에 도취되어 잠시 흐트러졌던 마음은 태고 때부터 감춰져 왔던 자연의 신비를 처음으로 훔쳐보고 있다는 경외심으로 하여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리고 자세를 가다듬어 나타난 결과들을 떨리는 손으로 실험노트에 꼼꼼히 기록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