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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로마서 12장 9~13절에 “사랑은 거짓 없노라, 그 악한 것을 혐오하며 그 선(善)한 것에 결합하며. 그 형제애에 서로 안으로 친절하게 좋아하며, 그 존경에 서로 앞서가며. 그 열심에 게으르지 않도록 하며, 그 영(spirit)에 끓고, 주께 종이 되며. 그 소망에 기뻐하며, 그 고난에 참으며, 그 기도에 굳게 머무르며. 그 성별된 자들의 필요에 나누어주며, 그 환대를 추구하는.”이라고 하였습니다.
1. 사랑은 거짓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9절에 “그 사랑은 거짓 없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2장 9~21절은 규범으로서의 ‘사랑과 그 표현들’입니다.1) 로마서 11장까지 진술해 온 위대한 교리를 실천적으로 적용합니다.2)
이 부분의 구절들은 아주 상관없는 구절들을 짜깁기한 것이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관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율법 전체의 요약입니다.3) 그 사랑은 감춤이나 위선 없습니다(without dissimulation).4)
“사랑”(love)은 헬라어로 “아가페”(agape)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때 사용됩니다.5) 성경의 사랑은 남녀의 성적 사랑인 “에로스”(Eros)가 아니라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율법과 결코 배치되어서는 안 됩니다.6) 사랑과 계명은 관계가 있으며 계명을 지켜야만 사랑입니다(요 14:15).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사랑의 증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7) 예수님의 계명을 가지고 지켜야만 그를 사랑하는 자입니다(요 14:21).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함을 받게 됩니다.
“사랑”을 영화에서 말하는 “에로스”(Eros)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 되며 사랑은 남녀의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것입니다(요 14:23). 사랑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파울은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일련의 분사 절로 설명합니다.8)
2. 사랑은 악한 것을 혐오합니다.
로마서 12장 9절 가운데에 “그 악한 것을 혐오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모스 5장 14~15절에 “너희가 살기 위해 선을 요구하고 악이 아니고 그러므로 너희가 말한 것처럼 야훼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겠노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너희는 선을 사랑하고 성문에서 정의를 확립하라, 혹시 야훼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남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요구하면 살고 사람이 살기 위해서 선을 요구하여야 합니다. 악(惡)을 요구하고 우상을 요구하는 자들은 살 수 없습니다.
시편 5편 4절에 “이는 당신은 사악을 즐거워하는 신(神)이 아니심이고 악이 당신에게(with) 머물러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혐오(嫌惡)”라는 한자어는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을 의미하니 그 악한 것을 혐오하고 악한 것에서부터 멀리 떠나야 합니다. 악한 것과 사랑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시편 97편 10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악을 미워하라, 그의 경건한 자들의 영혼을 사악한 자들의 손으로부터 지켜 주시는 자가 그들을 구하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악한 것을 미워하여야만 합니다.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대상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를 사랑하는 자들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여야 합니다(암 5:15).
3. 사랑은 선한 것에 결합합니다.
로마서 12장 9절 끝에 “그 선한 것에 결합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미워하라는 것의 반대는 “선한 것에 결합하라”라는 것입니다.9) “결합하다”라고 번역한 헬라어(콜라오)는 “결합하다”(cleave), “달라붙는다”, “함께 굳게 결합하다”를 의미합니다.
아교는 짐승의 가죽, 힘줄, 뼈를 진하게 고아서 굳힌 끈끈한 것으로서 “갖풀”로 순화되었습니다.
“달라붙는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다바크)를 번역하였습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그의 여자에 달라붙고 그들이 하나의 육체에 되었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10장 20절에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고 그에게 달라붙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그 여자에 달라붙듯이(창 2:24), 이런 방식으로 사람은 하나님께 달라붙어야 합니다(신 10:20).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달라붙고 그 대상에게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에게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랑입니다.
사람이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남기고 그 여자에 결합합니다(마 19:5). 이렇게 사람은 그 선한 것에게 결합하면서 삶을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갖풀로 떨어지지 않게 붙이듯이 그 선한 것에 달라붙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니 그 선한 것에 결합하여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들에는 “선한 것”이 나열됩니다.
1) “선한 것”은 “형제애”입니다.
로마서 12장 10절에 “형제애에 서로 안으로 친절하게 애정 깊고,”라고 하였습니다.
“친절하게 애정 깊은”이라는 헬라어(필로스토르고스)는 “애정이 깊은”이나 “친절하게 애정 깊은(affectionate)”으로 번역됩니다. “친구”라는 헬라어(필로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친척들에 대한 사랑을 묘사하기에 쓰입니다. 우리가 속한 가속의 구성원을 향하여 본능적으로 가진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혈육 간의 본성적 사랑입니다. 우리의 형제 사랑은 혈족 간에 느낀 사랑의 특성을 가져야 합니다.10)
형제 사랑에 서로 안으로(to) 친절하게 애정 깊어지라고 하였는데 크리스천들은 친구들이며, 더 나아가서 또한 친척들입니다. 친한 혈육들끼리 형제애에 서로들 안으로 친절하게 애정 깊어야 합니다.
혈육을 나눈 형제처럼 믿음 안에서 형제들을 사랑하여야만 합니다.11) 신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같은 아버지로 둔 형제들입니다.
신자가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때 새로운 가족 속으로 들어온 것이며 다른 모든 믿는 자는 새롭게 속한 같은 가족 속의 형제들인 것입니다.12)
크리스천들은 같은 가정에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본성이 있고, 이제 새로운 가정에 속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자기 동료 크리스천들에 대해서 형제로 느껴야 합니다.13)
우리는 가족관계로 의식하여 함께 기뻐하고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어떤 때에나 어떤 상황에서 어떤 형제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친척들을 대우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대우합니다.14)
크리스천은 하나님과 맺는 관계로 인하여 서로와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는 모든 크리스천을 좋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천성적인 사랑과 애정을 특징짓는 특성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혈연의 친척들에게보다 동료 크리스천에게 깊은 애정을 가집니까?15)
2) “선한 것”은 “서로를 존경에 앞서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0절 끝에 “존경에 서로들을 앞서가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존경”이라는 말(티메)은 “값”, “가치”, “영예”를 뜻합니다. 서로에 대하여 서로서로 가치 있고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앞서간다고 번역한 헬라어(프로에게오마이)는 이끈다, 길을 인도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앞서감으로써 다른 크리스천을 존경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크리스천을 존경하는 일에 있어서 서로 앞서가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크리스천에게 존경심을 항상 먼저 나타내라는 뜻입니다.16)
우리는 자신을 참되게 평가함으로써만 존경에 앞서갈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그릇된 관점은 거의 모든 악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존경에 앞서가기 위해 자신을 쳐다보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17) 자신을 참되게 평가하여야 다른 크리스천들을 존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선한 것”은 “열심”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 “그 열심에 게으르지 않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루카복음 2장 16절에 “서두른 그들이 왔고 갓난아이를 수색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두르고 노력하여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룩 2:16, 19:5). 그러한 일들에 관하여 열심을 품고 게으르지 않아야만 합니다(롬 12:8). 게으른 자는 개미의 길을 보고 지혜로워야 합니다(잠 6:6).
“게으른”이라는 “sluggard”는 “민달팽이”를 뜻하는 “slug”에서 나왔고 “민달팽이”라는 “slug”는 “느린”을 뜻하는 “slow”에서 나왔습니다.
잠언 6장 6~11절은 ‘게으름’에 관한 내용입니다.18) ‘게으른 자’에 관한 경고입니다.19) ‘게으름의 파국적인 결과’에 관한 ‘지혜의 말씀’입니다.20)
잠언 6장 7~8절에 “개미에게 지휘관과 관리와 통치하는 자가 없으며. 여름 안에 빵을 준비하며 수확 안에 양식을 따 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개미에게는 지휘관과 관리와 통치자가 없습니다(잠 6:7). 오늘날 곤충 학자들은 개미에게서 완벽한 사회적 조직을 발견하여도 명령 체계가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21)
“지휘관”(카친)은 “결정하다”라는 말(카차)에서 나온 말이니, “결정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일부 본문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우두머리를 가리킵니다(수 10:24).22)
“관리”(쇼테르)는 “지역 행정관”이나 “관리”를 가리킵니다. 이집트의 관리들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 일을 시켰습니다(출 5:6).23)
“통치하다”라는 단어(마샬)는 원래 감독하는 자를 가리킵니다.24)
개미는 겨울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부지런함의 모델입니다(잠 6:8).25) 개미는 어려울 때를 위해 양식을 준비합니다.
“여름”은 “수확” 때며, 이때 모든 양식을 수확합니다.26)
지혜 문학은 종종 도덕적 교훈을 위해 자연 세계를 관찰합니다.27) 개미는 질서 있는 노동의 지혜를 소유합니다.28)
잠언 6장 9~11절에 “언제까지 눕고 언제 너의 잠에서 일어날 것이냐? 잠들의 조금 선잠들(slumber)의 조금 눕기에 손의 포갬의 조금. 너의 빈곤이 걷는 자처럼 너의 필요가 방패의 사람처럼 들어오노라”라고 하였습니다.
9절은 ‘게으른 자의 어리석은 나태함에 대한 책망’입니다(잠 6:9).29)
게으른 자의 태도에 대하여 일격을 가하는 말입니다.30)
10~11절은 게으른 자에 대한 ‘엄중한 경고’입니다.31)
10절은 ‘어리석은 상황을 묘사한 함축적 조건절’입니다(잠 6:10).32) 이것은 조금만 잘 수 있게 해달라는 게으른 자의 말일 수 있습니다.33)
11절은 게으른 자에게 임하는 ‘엄중한 결과’를 보여줍니다(잠 6:11).34)
4) “선한 것”은 “그 성령(the Spirit)에 끓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 가운데 “그 영(the Spirit)에 끓고”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영에(in spirit) 뜨거운 열심이고 열렬하여야 합니다.
여기 “그 영(the Spirit)”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가리킵니다.35)
5) “선한 것”은 “주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 끝에 “주께 종이 되며.”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장 12절에 “내가 함께 있겠으며 이것이 너에게 표적이나니 이는 내가 너를 보내었음이고 이집트로부터 그 백성을 나오게 하는 때에 너희가 하나님을 이 산 위에 섬길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를 섬기게 하시기 위해 그들을 거기서 나오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산 위에서 섬길 것입니다(출 3:12).
그것들에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 것이니, 그 이유는 야훼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질투심이 많으신 신(God)이심이니 조상들의 죄악을 셋째 넷째 그를 미워하는 자에 방문하십니다(출 20:5).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를 섬기던 그들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만드셨는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지 조각상을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을 신(神)으로 섬기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십니다. 우리는 주께 종이 되어 주를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6) “선한 것”은 “소망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 “그 소망에 기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소망(expectation)은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시 62:5).
“소망”은 좋은 것에 대한 기대로서의 희망입니다. “소망”은 신뢰, 믿을만한 희망, 하나님 안에서 희망과 연관됩니다. 파울은 히브리적인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 안에 확고한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36)
로마서 5장 2절 뒤에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에 대해 자랑하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평화와 접근과 아울러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의 결과는 자랑입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 안에 자랑합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에 대해 자랑하는 것입니다.37)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보는 날이 오게 될 것인데, 이것이 소망입니다.
로마서 8장 24~25절에 “이유는 우리가 소망에 구원함을 받았음이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떤 사람이 보는 바를 누가 기대하느냐? 보지 아니하는 바를 기대하면, 인내를 통해 기다리나.”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은 ‘열심히 고대하는 것’이며 기다리며 발돋움하는 것입니다.38)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단번에 이루어진 사실을 되돌아보게 됩니다.39) 우리는 소망의 영역 안에 구원을 받았습니다.40)
소망 가운데(in) 우리가 구원되었으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떤 사람이 보는 바를 누가 기대합니까?
이미 성취가 되어 눈에 보이는 것은 실현(實現)이지 소망이 아닙니다. 아직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때에 그것이 소망입니다.
신자들이 이 땅 위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작은 조각에 불과합니다.41) 소망이 실현되어서 현실에 보이게 된다면 그것은 이제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혈과 육으로 기업을 이어받을 것으로 약속받지 않았습니다.42) 우리가 갈망하여야 하는 것은 ‘벗는 것’이 아니라 덧입는 것입니다.43)
파울은 “소망”에 대한 위대한 신학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소망에 기뻐하는 것은 이 세상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진 것입니다. 악한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 소망에 기뻐하게 됩니다.44)
이 세상의 일에 기뻐하고 있지 아니하며 소망에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안에 사는 동안 겪는 일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45) 초대교회 신자들이 순교할 각오가 되어있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46)
우리는 소망 안에 기뻐하며 소망으로 또는 소망 때문에 기뻐합니다. 우리는 아직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바라며 기뻐합니다.
7) “선한 것”은 “고난에 견디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 가운데에 “그 고난에 견디며,”라고 하였습니다.
대적이 우리를 묶고 속박하고 좁게 만들고 적의를 보이면 고난이 되나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 안에 듣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적들을 적으로 대하십니다(출 23:26).
우리를 묶고 속박하고 우리를 좁은 곳에 가두어서 활동 범위를 좁히고 그리하여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대적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대적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창 14:20).
“고난”(들립시스)은 “압박하다”(들리보)에서 나왔으며, “압박”, “억압”, “고통”, “고난”이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너희는 그 폭이 좁은 대문을 통해 들어가라 그 멸망 안으로 데리고 가는 그 대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통하여 들어가는 자들이 많은지라. 그 생명 안으로 데리고 가는 그 대문은 폭이 좁고 그 길이 압박함을 받고 그것을 발견하는 자들이 소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의 길은 생명으로 데리고 가지만 그 대문은 비좁습니다(마 7:14). 그것을 발견하는 자들은 소수입니다.
그 길이 압박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길을 걷는 것을 싫어합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자들에 비해 소수입니다.
넓은 대문과 광대한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쉽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며, 압박되는 길은 회개와 천국 윤리에 대한 은유입니다. 일단 넓은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그 길이 광대하여 걷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처참하게 무너지듯이 그 사람은 지옥에 도달합니다. 자유를 약속하는 광대한 길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반면에 사람이 압박되는 고난의 길로 들어가는 힘든 걸음을 내디딜 때 제자의 길이 힘들어도 그 사람은 최종적으로 영생으로 들어갑니다. 압박되는 길은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하는 것으로 끝납니다.47)
말씀이 돌이 많은 곳 위에 뿌림을 받은 자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나. 말씀 때문에 고난 또는 박해가 생겨난 때 곧 그가 변절합니다(마 13:21).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도 구원받은 것은 아니니, 말씀 때문에 고난이나 박해가 생기면 변절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크리스천의 모양을 갖추었고 크리스천처럼 보일지라도 내면에는 뿌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박해를 견디지 못합니다.
진정한 크리스천들은 현재의 고난을 능히 견뎌낼 수 있으나(롬 8:18), 겉모양만 크리스천인 자들은 고난이 오는 때 즉시 믿음에서 변절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금방 싹이 솟을지라도 모두 크리스천은 아닙니다.
고난이나 박해가 생길 때에 크리스천의 진위가 가려지며,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마 13:20~21).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안에 견뎌야(patient)” 합니다. 고난을 피하려고 광대한 길을 걷기보다 고난을 선택하고 견뎌야 합니다.
견딘다는 말은 사람 또는 생물이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거나 죽지 않고 계속해서 버티는 상태가 되고 잘 참아 낸다는 것을 뜻합니다(마 10:22).
견딘다는 말은 그리스어로 어려운 환경 아래 머무르는 것을 뜻합니다. 히브리어로는 기대한다, 기다린다는 뜻이 있습니다(욥 30:26, 시 25:3).
가족이 분열된 상황에서 제자의 길의 표지는 “인내”입니다(마 10:22). 자신의 참된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들만이 구원함을 받을 것입니다.48)
무엇인가의 아래 잘 머무르는 것이 견디는 것이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끝(end)으로 향해 견디는 이는 구원함을 받게 됩니다(마 10:22, 24:13).
인내하면 하나님의 왕국의 참여자들에게 약속된 복에 들어갑니다.49) 자신의 참된 믿음을 보여주는 자들만이 구원함을 받을 것입니다.50) 순종하며 인내하는 것은 제자의 길의 표지로 불법과 대조됩니다.51)
그때 그들이 제자들을 고난 안으로 넘겨주겠고 제자들을 죽일 것이고, 제자들이 모든 그 민족들에 의해 미워함을 받는 자들이 될 것인데 예수님의 이름 때문입니다(마 24:9).
제자들은 심지어 죽음까지 넘겨줌을 받을 것에 대비해야 합니다.52) 끝까지 견디는(endure) 이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끝을 향하여 견딘 이는 구원될 것입니다(마 24:13, 막 13:13).
8) “선한 것”은 “기도에 굳게 계속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 끝에 보면 “기도에 굳게 계속하며”라고 하였습니다.
12절에 나오는 3개의 권면은 모두 밀접히 관련됩니다. 소망, 인내, 기도는 자연스러운 파트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겠지만 “소망 안에 기뻐”할 때도 곳곳에 고난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파울은 소망으로부터 인내의 필요성으로 빨리 이동합니다. 동시에 고난들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기도”에 있습니다.53) 기도는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과 만나는 소중한 접점입니다.54)
9) “선한 것”은 “성도들의 필요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3절에 “성도들의 필요들에 공유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공유하다”라는 단어(코이노네오)는 “참여하다”를 뜻하는데 “참여자”라는 의미의 명사(코이노노스)에서 나온 동사입니다. “기부하다”, “분배하다”, “공유하다”(share)로 번역됩니다.
성도들과 함께 참여하는 참여자가 되라는 것입니다.55) 신자들은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성별된 자(성도)”들입니다.56) 모든 크리스천은 하나님께 의해 신성하게 구별된 성도들입니다.
“참여하다”에 “함께”(쉰)라는 기본적 의미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믿는 자들이 “공통의(common)” 전체 것을 가졌습니다(행 2:44). 초대교회에서 믿는 모든 자가 경제를 공유한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한마음과 한뜻으로 물건을 공유하였습니다(행 4:32~35). 성도들은 공유하기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아낌없이 내어놓았습니다.57)
10) “선한 것”은 “환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3절 뒷부분에 “그 환대를 추구하는”이라고 하였습니다.
“환대(hospitality)”는 낯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58) “추구(追求)”라는 한자어는 “쫓아서 구함”을 뜻합니다.
크리스천들은 박해로 자신의 지역을 떠나야만 하는 처지였습니다.59) 이런 처지에 당면한 나그네를 환대하기를 추구하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크리스천들을 알아볼 뿐만이 아니라 만나면 기쁩니다.60) 이것은 참된 크리스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시금석이 됩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시험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됩니다.61) 우리는 박해로 떠도는 크리스천을 향하여 환대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크리스트교는 다 팔아 공동 소유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크리스트교는 ‘관리자(manager)’ 정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62)
매니저로 행하는 것이 모든 것을 다 내놓기보다 더 쉬운 일입니다. 공산주의는 법률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종용합니다. 공산주의는 사랑의 법의 정반대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교리에 비추어서 주어지는 호소입니다.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을 평균화할 것을 강제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나, 사랑의 법은 사랑의 정신을 갖고 서로 수준을 맞출 것을 종용합니다. 크리스천들에게 요구되는 바는 동료 크리스천들에 대한 것입니다.63)
당시 크리스천들은 떠돌아다닌 자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64) 환대를 추구하기를 원한다면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여야만 합니다.65) 그 환대를 추구하는 자들은 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4~36절에 “나의 아버지의 복을 받은 너희여, 너희는 이리로 오라 세계의 창설에서 너희에게 준비된 왕국을 상속하라. 내가 굶주렸고 너희가 먹게 주었고 내가 목말랐고 너희가 마시게 주었고 내가 낯선 사람(stranger)이었고 너희가 나를 모았고(invite). 내가 벌거벗고 너희가 나를 입혔고 내가 병들고 너희가 나를 방문하였고 내가 감옥에 있고 너희가 나를 향하여 왔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낯선 사람(stranger)”이라고 번역한 헬라어(크세노스)는 형용사로 “이상한”, “낯선”, 명사로 “낯선 사람”, “외국인”을 의미합니다.
“임금”이라는 말은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오른편에서 있는 양들에게 말씀하십니다(마 25:34).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면 그의 오른편에서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낯선 방문자(stranger)였고, 그들은 그를 초청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계의 창설에서 그들에게 준비된 왕국을 상속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7~39절에 “언제 당신께 우리가 먹을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셨으며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낯선 사람이 되신 것을 보고 모았으며, 벌거벗고 옷을 입혔습니까? 언제 병드신 때나 감옥에 계시고 왔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 “그 가장 작은 자들의 나의 형제들의 이 하나에 너희가 행한 만큼에 대해 나에게 행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그네 된 형제를 초청한 것은 주 예수님을 초청한 것과 같습니다.66)
1) Douglas J.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손주철 옮김 (서울: 솔로몬, 2012), 1034.
2)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442.
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46.
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48.
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50.
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52.
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53.
8) Moo, 『NICNT 로마서』, 1040.
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62.
1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65.
1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66.
1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67.
1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68.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69.
1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70.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72.
1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77.
18) Duane A. Garrett, 『NAC 잠언·전도서·아가』, NAC 성경주석, 황의무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116.
19) Bruce K. Waltke, 『NICOT 잠언 Ⅰ』, NICOT 성경주석, 황의무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 379.
20) 김정우, 『잠언』,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226.
21) Waltke, 『NICOT 잠언 Ⅰ』, 381.
22) Waltke, 『NICOT 잠언 Ⅰ』, 381.
23) Waltke, 『NICOT 잠언 Ⅰ』, 381.
24) Waltke, 『NICOT 잠언 Ⅰ』, 381.
25) Garrett, 『NAC 잠언·전도서·아가』, 116.
26) 김정우, 『잠언』,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233.
27) Garrett, 『NAC 잠언·전도서·아가』, 116.
28) Waltke, 『NICOT 잠언 Ⅰ』, 381.
29) Waltke, 『NICOT 잠언 Ⅰ』, 382.
30) Roland E. Murphy, 『잠언』, WBC 성경주석 23, 박문재 옮김 (서울: 솔로몬, 2001), 88.
31) Waltke, 『NICOT 잠언 Ⅰ』, 382.
32) Waltke, 『NICOT 잠언 Ⅰ』, 383.
33) Murphy, 『잠언』, WBC 성경주석, 88.
34) Waltke, 『NICOT 잠언 Ⅰ』, 383.
3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493.
36) James D. G. Dunn, 『로마서 9-16』, WBC 성경주석 38하, 김철·채천석 옮김 (서울: 솔로몬, 2005), 414.
37)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64.
38)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142.
3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44.
4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45.
4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46.
4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48.
4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50.
4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18.
4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22.
4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24.
47) David L. Turner, 『BECNT 마태복음』, BECNT 성경주석, 배용덕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287.
48) Turner, 『BECNT 마태복음』, 366.
49) Donald A. Hagner, 『마태복음 1-13』, WBC 성경주석 33, 채천석 역 (서울: 솔로몬, 1999), 479.
50) Turner, 『BECNT 마태복음』, 366.
51) Turner, 『BECNT 마태복음』, 741.
52) Hagner, 『마태복음 1-13』, WBC 성경주석, 1069.
53) Moo, 『NICNT 로마서』, 1045.
54) Philip D. Yancey, 『기도』, 최종훈 옮김 (서울: 청림, 2006), 18.
5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50.
5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52.
57) 이종원,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본 공유경제”, 『기독교사회윤리』 제50권 (2021): 15. (9-44)
5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53.
5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56.
6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60.
6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61.
6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62.
6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63.
6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65.
6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67.
6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568.

첫댓글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잠 19:29).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