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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 이 시백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생활의 달인'이라는 것이 있다. 요즘 드라마라는 것마다 외제차 몰고 다니며 거들먹거리는 것들끼리 돈 쓰는 것도 지겨워 별 싸움거리도 아닌 것 가지고 툭탁거리거나, 사는 게 심심해 죽을 지경인지라 사돈이건 이복형제건 간에 눈 맞고 배 맞아 바람피우는 이야기뿐인지라 은연중에 들여다보자면 제 자신 사는 것이 구차스럽기도 하고 은근히 불뚱가지도 나서 탁 소리가 나도록 꺼버리게 되었다. 그런 차에 저나 나나 별 다를 게 없는 이들이 등장하여, 좁기는 개미 콧구멍만하며 지저분하기는 쓰레기장 같은 일터에서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죽어라 일하는 이들의 모습이 비치니 우선은 반갑기만 하다. 신경림 선생 말대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지 않던가. 떡을 써는 손이 보이지 않고, 한번 잡으면 정확한 근량을 맞추는 손대중도 신기하고, 굴삭기로 달걀에 도장을 찍는 재주도 별나다. 내 재주도 아니지만 가만히 바라만 봐도 흐뭇하고 국격 높은 이 나라의 백성된 것에 슬며시 가슴 뿌듯해져 나도 모르게 왼편 가슴에 손을 올려놓을 지경이다. 그런데 몇 번을 그걸 들여다보자니, 무언가 석연찮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그 손이 안 보이게 떡을 써는 재주를 익히려면 저이는 도대체 얼마나 저 짓을 해야 했는지, 그 눈물겹고 지루한 노고가 뻐근히 가슴에 와 닿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 재주를 지녔다는 이들의 행색을 살펴볼 것 같으면 하나같이 땀에 절고 고달픈 주름이 깊다. 모처럼 방송에 나온다니 한껏 고무되어 자랑스럽게 '긍지를 갖고 살아간다'며 앵무새 외듯 같은 말을 되뇌지만, 내 귀에는 그 뒤편에서 '연자방아 죽어라 돌리는 나귀'를 마루에 누워 부채질하며 바라보던 어떤 이의 웃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저 죽는 줄은 모르면서 주인이 '잘한다, 잘한다' 추어주니 으쓱거리며 허리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무거운 연자 맷돌을 돌리는 나귀를 보고 그 주인은 속으로 얼마나 비웃을 것인가. 나는 어째서 '생활의 달인'에는 시원한 제집 안방에 자빠져 누워서도 돈이 제 발로 기어들어오는 재주를 지닌 투기꾼들이며, 부자들 세금을 깎아 서민을 살리는 신묘한 재주를 지닌 정치꾼이며, 보를 막아 강을 살리겠다는 별난 삽질의 재주를 지닌 것들은 얼굴을 내어 밀지 않는지 심히 궁금하다. 이런 생각으로 가만히 '생활의 달인'을 들여다보자니, 그것은 마치 일 않고 편히 놀고먹는 여왕개미와 수개미들이 제 몸집보다 더 큰 흙을 물어 나르는 '일개미'들을 바라보며 '잘한다, 잘한다' 추임새를 넣으며 낄낄거리는 웃음이 생각나 편히 바라볼 수 없었다. 일개미들은 그렇게 손이 안 보이도록 평생을 떡을 썰어야 하고, 저들은 그렇게 썰어온 떡이나 주워 먹으며 이따금 추임새만 넣어 주면 되는 것이라면, 그들이야 말로 '생활의 달인'에 등장하여 그 신묘한 재주를 선 보일만하지 않겠는가. 전 재산 29만원으로 골프 치며 할 것 다하며 사는 재주도 선보이고, 단군 이래로 봉급 받는 대로 탈탈 털어 몽땅 저금한다 해도 도저히 모을 수 없는 수백 억의 돈들을 긁어모은 이들의 '재태크' 재주도 선보여 주기 바란다. 그들이야 말로 '생활의 달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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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활의 달인>이란 단어가 제게는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아 거침없이 나아가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네요. '생활(生活)'이란 단어가 간절한 요즈음입니다.
별로 좋은 말이 아니군요....생활의 달인이란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