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중국광주를 가는 길에 처음 청도를 들렀다.
청도를 지나치는 차 안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잠시 숙연해졌다.
2002년 8월
청도맥주축제 때 무대공연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
필경 무슨 행위예술은 아닐진대
뒤 쪽에서 공안들이 바닥에 내 처진 한 여학생의 머리채를 질질 끌어 가고 있다.
생경스러운 광경에 이방인은 잔득 주눅이 들었다.
그날 저녁 자신이 머물고 있는 사방구 숙소에는
유별나게도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왜 이리도 험난한 곳을 왔는지 후회 막급이었다.
최대한 자신을 낮추며 살 것이라는 다짐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무일 없이 이 밤이 지나기를 빌었다.
사실 이때까지 한 점 의심 없이 그 소리를 총소리로 알고 있었다.
그 것도 따발총 소리로 말이다.
며칠 후 한 상점의 개업축포를 목격하기까지…
그 목격도 사실은 뒤에서 나는 소리에 황망히 도망가다
주위사람들의 태연함에 멋쩍게시리 자신을 수습하고 말았다.
이 후 폭죽소리만 들리면 나는 현장으로 달려간다.
화끈한 그 소리가 좋았다.
2004년 싸스로 중국이 발칵 뒤집혔을 때
대부분 한국으로의 귀국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자신은 역으로 중국을 들어오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액을 물리치는데 폭죽이 최고라며
중국친구를 꼬드겨 그의 상가 앞에서 폭죽을 원 없이 터트렸다.
품질이나 성능에서 중국폭죽이 세계 제일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2005년 정월 보름
어둠이 깔리는 시점
사방구의 중앙경계선이 있는 도로 한가운데 자가용이 멈춰 선다.
뒤 따르던 차가 급제동을 걸어 간신히 차선을 바꾸며 충돌을 피한다.
창문을 열며 욕을 딥다하고는 갈길이 바쁜지 차는 황망히 그 자리를 떠난다.
멈춰선 차는 별 시덥쟎은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떠나는 상대를 배웅하고는
이내 차 트렁크를 열고 큰 박스 3개를 꺼낸다.
끊어진 중앙분리대 사이에 나란히 박스를 배열하고
삐져나온 심지에 불을 붙인 후 신속히 차량을 한쪽으로 옮긴 그는
바로 내 앞으로 다가 오더니 씨익하니 썩은 미소를 보내며 담배를 한대 권한다.
도로 한 가운데서 로켓폭죽이 밤하늘을 수 놓는다.
만족한 듯 불꽃놀이를 한 것 즐기다 폭죽이 다 터지자
그는 주저 없이 손을 털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런 화끈한 면이 중국적이라면은 밉지는 않다.
오랜만에 생겨난 중국인에 대한 호감이었다.
여운을 뒤로하고 얼마를 걷다 보니
리어카에 폭죽을 가득 싫고 야트마한 언덕을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그는 주위를 들러보고는 리어카를 세운다.
얼핏 보기에 그는 폭죽을 판매하는 상인으로 보인다.
장대를 이용해 폭죽을 나무에 걸고
한 쪽으로는 불꽃놀이용 폭죽을 길게 배열하고
가지각색의 폭죽을 주위에 늘어 놓는다
주위에는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폭죽은 파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소비용이었다.
그 많은 폭죽을 그는 단계별로 터트렸다.
세상에나!
믿기지 않은 액수의 금액을 그렇게 날리다니
주위의 환성과 박수소리에 한 것 고무된 그는 행복해 보였다.
나 역시 덩달아 그 틈바구니에서 신바람이 났다.
그는 행복을 주는 싼타였다.
폭죽에 대한 추억은 어릴 때의 기억과 맞물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한가 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꼭 그렇지만은 않다.
2006년 재신을 모시는 날(음력 7월 22일)
이 행사는 산동성 특히 청도의 고유행사이다.
상점이라는 상점은 모두 이날 폭죽을 터뜨린다.
하루 왼 종일 전화를 받지 못할 지경이다.
그 날 중국파트너와의 상담이 뒤틀어지고 배배 꼬이는 찰나
폭죽소리는 중간중간 대화의 맥을 끊어버린다.
점점 폭죽소리가 짜증이 난다.
아무런 일도 없을 것 같던 어느 날 저녁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TV를 보다 자연스레 눈꺼풀이 내려가려는 순간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주위가 훤해 지더니 연이어 날카로운 굉음이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동반한다.
화들짝 놀라 용수철처럼 튀어나 밖을 내다보니
앞동의 아파트로 폭죽이 창문을 강타한 것이다.
오발인지 의도적인지 알 수는 없으나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폭죽에 정나미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다.
2007년 정월 초하루가 막 시작되는 시점
청도대학에서 맥주성을 지나는 길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 속의 자신은 걸프전과 이라크 전장의 한 선상에 내 던져진 듯
포탄 속을 뚫고 적의 동태를 살피며
차는 점점 적진 깊숙이 달리고 있었다.
간단히 마신 한잔의 술은 그래도 음주운전이다.
기필코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신년 재수를 헤아리며 무사히 집에 도작했다.
그날 밤은 잠을 못 이루었다.
징글 맞은 폭죽소리에 정신이 혼미해 졌다.
연발탄 폭죽이 문제다.
폭발력이나 소리가 가히 파괴적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
중국에 심장병환자가 많은 이유중의 한 이유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어릴 때 이 소리에 하도 놀래서 말이다.
자동차의 도난경보기 소리까지 합세하는 이 연발탄 폭죽 사용은
폭발력이나 소리의 정도를 제한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폭죽얘기가 화제가 되던 날
한달 월급이 2000원인 한 직원은
춘절에 터트릴 폭죽 1000원어치 구입계획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있다.
폭죽소리가 멀리서 서서히 들려오는 듯 하다.
어느덧 구정을 쇠러 한국에 가야 할 때이다.
슬슬 채비를 해야겠다.
폭죽이나 한 박스 사서 갈까 보다.
아마 공항에 잡혀 오도가도 못하겠지!
첫댓글 잼나게 잘 읽고갑니다.
혹시 작이신가요? 문장력이 탁월하십니다. 물흐르듯 흘러가는 문장은 지루함을 뺏어갑니다.
폭죽 한박스를 사서 공항에 감변 아마 바행기에 태워주지도 않을 겁니다. 술술 풀어지는 이야기를 잘 읽고 갑니다.
언능폭죽 피해서 서울로 구정쇠러 오세요~~잼나게 읽고 갑니다
저도 젬 나게 읽고 갑니다.^^ 어! 러셀크러우님 서울에 계셨어요? 늦게나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헌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폭죽은 그렇다치고 어젯밤에 내린 저 눈에 빙판길이나 되지 않았을까 모르겠네..(딴소리..ㅋㅋ)
이제는 폭죽소리가 자장가로 들리는 듯...우리는 조용한 설날이나,중국은 시끄러운 설날이지요.재미있는 에피소드 잘 읽었습니다.
2000원의 월급 1000원어치 폭죽... 그럴 수 있는 베짱이 부럽습니다요 ^*^
이곳에 온지 얼마안된 저로서도 처음엔 폭죽을 시도때도 없이 터트려 놀라기도 어려번 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이곳사람들의 삶이 숙제가 아닌 축제의 삶을 사는 듯하여 한편 부럽기도 했습니다.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그사람들 참... 맺힌게 많고 남에게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험험... 잘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