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대를 저글링하다 / 정성화
‘KBS 전국노래자랑’은 남편과 내가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이다. 출연자의 노래가 시작되면 화면 아래에는 그 사람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직업이 간력히 소개된다. 남편은 자기 또래의 사내가 나오면 무슨 놀라운 걸 발견했다는 듯이 나에게 묻곤 한다.
“나도 저 사람만큼 늙어 보이나?”
그의 목소리는 돌을 매달아 놓은 듯 무겁다. 나는 얼른, 정도는 아니라며 얼버무린다. 그의 눈가에 잡힌 오단 장식 주름과 입가에 패인 팔자주름, 그리고 이마를 박차고 올라가는 M자형 탈모를 보면서도 대답은 그렇게 한다.
얼굴에 마음이 쓰이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어느 새 증명사진을 찍는 게 부담스럽다. 사진으로 보는 내 얼굴이 아무리 봐도 낯설다. 내가 아닌 것 같다고, 사진이 잘못 나왔다고 투덜대면, 사진은 나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당신을 증명해 줄 사진은 없다’녀 냉정하게 말한다. 사진를 봐도 기가 죽고, 거울 앞에서도 한풀 꺽이는 나이, 그것이 중년이다.
우리 부부의 나이를 합하여 백 살을 넘긴 지도 한참 지났다. 서서히 ‘발광 다이오드형’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전류를 흘리면 빛은 내지만 쉽게 뜨거워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불을 끄고누워서 생각하는 게, ‘아이들 결혼시키고 늙어서 먹고 살려면 얼마쯤 있어야 할까, 그런데 앞으로 얼마를 더 벌 수 있을까’ 이니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렇게 된 데는 남편 친구들의 영향이 크다. 그의 중학교 동창 모임 여덟 사람 중 네 사람이 일이 년 사이에 현직에서 물러났고, 한 친구는 몇 달째 ‘빨대부장’으로 버티고 있다. 물이 턱까지 차올라도 헐떡거리며 버티고, 물이 코에까지 차오르면 빨대를 물고 버티는 부장, 즉 아무런 보직 없이 버티는 부장을 말한다. 평생 뼈 빠지게 일해 처자식 먹여 살리고, 거우 집 한 채 장만해 놓고 돌아서니 어느 새 퇴직할 때가 되었더라는 빨대부장의 말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부쩍 늘어난 흰머리와 눈 밑에 생긴 다크써클, 그리고 푹 들어간 양쪽 볼이 그를 십년쯤 더 늙어보이게 했다. 몸만 성하면 다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말로 한 친구가 그를 위로했고, 다들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남편 친구들은 이십 년 가까이 회비를 모아왔다. 오십대가 되면 그 돈으로 해외여행도 가고, 고향에 촌집을 한 채 사서 더 자주 모이자고 했다. 그런데 그 꿈도 이젠 접을 수밖에 없다. 당장 애들 학비와 생활비가 부족한 집들을 위해, 그동안 모은 회비를 나눠 갖기로 하고 그날 모인 것이다. “자라면서도 배불리 먹지 못했는데 오십대가 되어 다시 밥걱정을 하다니…”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남편도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탁자 위에 모인 빈 소주병을 한 줄로 세웠다가 다시 두 줄로 세우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서였다.
전(前) 코카콜라 회장 더글러스 테프트는, 인생은 다섯 개의 공을 공중으로 던져 올려야 하는 저글링(juggling)과 같다고 했다. 그 다섯 개의 공이란 일, 건강, 가족, 친구, 자신의 영혼이며, 그중 ‘일’이라는 공만 고무로 되어 있을 뿐 나머지 공들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다고 했다. 일은 고무공이라 땅에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 오르지만, 나머지 공들은 떨어뜨리는 순간, 깨어지기 때문에 일보다 더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다. 삶에 있어서 오십대는 그동안 일에만 쏠려있던 관심을 자신의 건강이나 가족, 친구 그리고 자신의 영혼에게 골고루 나누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남편 친구들에게도 이번의 아픔이 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요즘 들어 엉성해진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머리숱이 줄더니 머리 밑이 엉성, 종합진단을 받아보니 뼈도 엉성, 이젠 기억력마저 엉성해졌다. 남편과의 사이마저 그리 될까 봐 두렵다. 무더운 여름밤 어둠 속에서 ‘앵’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즉시 나와 함게 모기를 잡을 사람, 묵은 김장 김치를 같이 쭉쭉 찢어먹을 사람, 그리고 내가 아프면 나를 들쳐 업고 병원까지 뛰어갈 사람이 아닌가. 나는 오십대에 남편을 재발견한 것이다.
오십대에 들어 달라진 점이라면, 사람을 만나는 게 확실히 편안해 졌다는 것이다. 내 몸에 쓸데없이 들어가 있는 힘을 뺐기 때문일까. 세상에는 정말 이해 못할 일도 없고, 용서 못할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람은 사람과 어울리면서 더욱 사람다워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십대를 두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세대’라고 하는 이유도 그런 데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축 처져있는 이 사회를 바짝 들어 올리는 바지랑대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 일은 오십대가 맡아야 한다고.
사십대와 어떻게 달라야 할지를 나는 고민하고 있다. 사십대까지 내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살펴보면서 살아야할 것 같다. 그동안 내 상처만 들여다보며 사느라고 남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같이 아파한 기억이 별로 없다. 공자는 나이 오십을 가리켜 ‘지천명’이라고 했다. 오십대인 나로서는 그 말이 ‘지천으로 할 일이 깔려있다’는 말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