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月精寺)
요약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 강원특별자치도 중남부에 있는 60여 개의 절을 관리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감응으로 얻은 석존 사리와 대장경 일부를 가지고 돌아와서 통도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자장이 창건할 당시에는 초암으로 엮어 만든 임시 암자에 불과했지만, 그 뒤 신효·신의·유연이 차례로 이곳에 머물면서 점차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사적기〉에 의하면 1307년(충렬왕 33년)에 큰 불이 일어나 불타버렸으나 이일이 중창했고, 1833년(순조 33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844년(헌종 10년)에 영담·정암 등이 재건했는데, 1·4후퇴 때 군사작전상의 이유로 아군에 의해 칠불보전을 비롯하여 10여 채의 건물이 전소되었다. 이때 양양군 서면 선림원지에서 출토되어 이 절에서 보관하고 있던 통일신라시대의 선림원지 동종(804)도 함께 불타 녹아버렸다. 그 뒤 1964년에 적광전을 중창한 이래로 계속 중건하여, 현재는 대강당·삼성각·심검당·승가학원·용금루·일주문·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8각9층석탑(국보 제48호)과 석조보살좌상(국보 제48-2호), 세조가 친필로 쓴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보물 제140호)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월정사의 보물 및 유물을 모아 놓은 보장각에는 소형 목조탑을 비롯하여 경전·인도불상·불화 등이 소장되어 있다.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고려)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오대산로 176 (진부면) 월정사 성보박물관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국보 제48-2호(2017.01.02 지정). 높이 180cm. 〈월정사사적기〉에 의하면 탑 앞에는 손에 향로를 들고 꿇어앉아 공양하는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 있었다고 한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 강릉일불우(江陵一佛宇)에는 자장의 옛 절에 문수보살이 있어 탑 위로 1,000년 동안 새가 날지 못한다고 하는 고려시대 정추(鄭樞)의 시가 전해지고 있어 이 보살상의 이름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머리에는 길다란 원통형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관 밑으로는 보발(寶髮)이 내려와 양 어깨 위를 덮고 있다. 얼굴은 길고 통통한 편으로 눈·코·입이 조그마하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코와 인중이 짧게 처리되어 있어 이목구비가 얼굴 중심부에 몰려 있으며 턱 밑이 유난히 살쪄 보인다.
신체는 비교적 가늘고 밋밋하게 처리되었으며, 하체에 비해 상반부를 크게 표현하여 전반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비례감을 보여준다. 특히 둥근 연화대좌 위에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듯한 공양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은 연산 개태사(開泰寺)에 있는 석조보살좌상(머리부분 파손)을 비롯하여 강릉의 신복사지3층석탑 앞에 있는 석조보살좌상 등 고려시대의 다른 공양보살상에서도 볼 수 있다.
빈약한 가슴 위로 걸친 번잡한 천의는 목걸이·팔찌와 함께 장식적인 효과를 주며, 옷주름선은 굵고 투박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오른팔 밑에는 동자상이 놓여 있는데 뒤에 보수한 것으로 보이며 세부표현이 분명하지 않다. 이 보살상의 통통하고 부은 듯한 얼굴 표현, 높은 원통과 같은 보관, 굵직한 주름으로 나타난 옷 표현 등은 같은 지역인 강릉에서 출토된 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국립중앙박물관)이나 신복사지석조보살좌상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높은 관은 통일신라시대의 보살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형태로 고려와 정치적으로 가까웠던 중국 요나라의 보살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보살상들은 대체로 강원특별자치도 명주지방을 중심으로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던 조각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국보 제48호(1962.12.20 지정). 높이 15.2m. 6·25전쟁 때 일어난 화재로 이 절의 건물과 함께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현재 일부가 보수되었으며, 특히 상륜부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팔각형의 2층 기단 위에 9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올려진 특이한 형식의 석탑이다. 기단부는 낮은 편으로 지대석 위에 놓여 있는데, 하층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이 2개씩 조각되었으며 그 위를 덮고 있는 갑석 윗면에는 복련의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하층기단과 상층기단 사이에는 상층기단의 중석을 받치는 별석이 끼워져 있다. 상층기단의 각 면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고 그 위로 갑석과 탑신을 받치는 별개의 8각 받침돌이 차례로 얹혀 있다.
탑신부는 옥개석과 옥신석의 크기에 따라 1개 또는 2, 3개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층의 옥신에는 우주를 새겼는데 특히 1층 옥신에는 4면에 장방형의 감실이 표현되어 있다. 옥개석은 전반적으로 수평을 이루고 있고, 밑에는 각형과 반원형의 받침돌이 있는 것이 특이하며 처마 끝에는 풍령이 달려 있다. 상륜부는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노반(露盤)·복발·앙화·보륜은 석재로 만들어진 반면에 보개·수연(水煙)·용차(龍車)·보주 등은 금속제로 되어 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체감비율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2층 탑신부터는 거의 같은 폭으로 되어 안정감을 주며, 기단이나 탑신이 팔각형이고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점 등에서 고려시대에 유행한 다각다층(多角多層) 석탑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해체·보수할 때 1층 옥신석에서는 동경·경문·향목 등의 사리장치가 나왔으며, 5층 옥개석에서는 은도금 불입상 1구가 발견되었다.
월정사(月精寺) 안내도
월정사(月精寺)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