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란 팽창에 기초하는 시스템이다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는
M-C-M' '(또는 M-M')
이다. 즉 돈->상품->돈‘(더 많은 돈)이 자본주의의 기초 DNA이다.
이것만으로 우리가 아는 현행 자본주의가 구성되지 않는다.
다른 원리들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회사 내에서의 지령 및 통제 시스템(command and control system)이 있다.
회사는 하나의 이윤 추구(M') 기계이다.
이 기계의 주인은 주주들(경영자들)이고, 나머지 노동과 물리적 자본은 다 그 주인의 지령 및 통제 하에 놓인다.
회사는 거대한 기계로서 전적으로 전체주의적 원리 하에 운영되고 가동된다.
전체는 어디나 언제나 주주(경영자)의 이윤을 위해 이용되고 활용되고 강제된다.
노동자는 그가 하나의 전인(whole man , Ganz mann)이 아니고 단지 이윤 창조의 한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그렇게 활용된다.
노동자들은 기계의 부품이고 그것 외에 그 아무 것도 아니다.
노동자에게 좀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은 그것이 회사의 이윤 창조에 도움이 된다고 우두머리들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거대한 기계이고 그 부품은 노동자들과 물리적 자본들이다.
기계부품은 오직 기계의 목적을 위해서만 기능해야 한다.
부분은 언제나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
전체주의가 탄생한다.
시장경제(자본주의의 미사여구?)에서는 “공짜 점심은 없다.”라고 회자된다.
주주(경영자)들은 노동자를 이용하여 돈을 불린다.
그래서 각자에게는 각자가 공헌한 만큼 보수가 주어진다.
만일 주주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command and control”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 그 보수 체계도 달라졌을 것이다.
공정한 보수란 그 체제 내에서 그러한 결정권이 행사되는 방식에 기인한다.
결정권 행사 방식이 달라지면 당연히 보수도 달라진다.
한 시스템에서의 “공짜 점심”은 다른 시스템에서는 “공정한 점심”이 된다.
현행 자본주의 하에서 그 결정권은 기계를 소유하고 돌리는 자들이 향유한다.
기계부품이 기계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망상에 불과하다.
주주(자본가 &경영자)들은 자신들의 “천부 자본권”을 잃지 않으려고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캘리,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 ,http://www.yes24.com/24/Goods/401207?Acode=101 )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빼앗기려고 할 리가 없을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좋은 것으로 찬미되고 찬양 받는다.
마찬가지로 “소유와 노동의 분리”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유와 노동이 분리되지 않으면 , 그것은 우리가 알아온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 그것을 “자본주의”라고 부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현재의 자본주의와는 사뭇 다른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
정약용은 여전론에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즉 농사짓는 사람만이 토지를 소유할 것을 주장하였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7423&mobile&categoryId=1592 )
현대에서 회사는 과거의 밭에 해당되므로 만일 정약용이 현대로 돌아온다면 노자유주(努子有株), 즉 노동하는 사람만이 회사를 소유할 것을 주장하지 않았을까 한다.
다시 처음 공식
M-C-M'(또는 M-M')
으로 돌아가면 , 이 공식이 의미하는 바는
“성장하지 못하면 죽는다 grow or die”
이다.
돈은 성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소비하는 돈은 죽은 돈이면서 무용한 돈에 불과하다.
돈은 성장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더 많이 소비하기를 고대하고 ,
더 많이 소비하도록 유도하고 세뇌시키는 전략과 수단들을 동원한다.
그렇지 못하는 돈은 더 이상 “자본”이 아니다.
그런 돈은 자본과의 경쟁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패배하여 사멸한다.
다른 한편 생물은 자연에서의 제국주의자이다.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은 주변 환경에서 에서 엑서지(exergy , 유용한 에너지)를 뽑아내어 이용하여 나머지를 버려서 주변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주변환경의 엔트로피가 항상 더 증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생물들은 마치 시지프스와 같은 입장에 놓인다.
엑서지는 감소하고 엔트로피는 증가하기 때문에 갈수록 더 엑서지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쉬로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 http://whatislife.stanford.edu/LoCo_files/What-is-Life.pdf )
다른 한편, 생물들은 더 많은 자식들을 퍼트리려 한다.
자식을 덜 낳고 번성시키지 못하는 종은 결국 진화의 패자가 된다.
그래서 생물들은 더욱 더 게걸스럽게 엑서지를 소비하면서 자연계의 엔트로피를 가일층 증가시킨다.
더 적은 엑서지를 소모하는 생물은 번성하지도 더 많은 자식을 낳지도 못하고 , 그 자식들이 번성하여 더 많은 시를 퍼트릴 개연성이 적다.
그러므로 더 많은 엑서지를 소모하려는 욕심은 성공적인 모든 생물종에 내재한 선천작 경향이다.
아마도 이성계도, 왕건도, 세종대왕도 진화상의 승자로서 엑서지 과잉 소모 욕구를 가졌을 것이다.
그의 자손들도 다분히 그런 성향을 물려받았을 것이고, 도 그런 성향을 가진 자가 진화의 승자가 될 개연성이 더 높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다 게걸스런 탐욕스런 엑서지 소비자이다.
이런 면에서 주주(자본가)들의 이해관계와 소비자들의 생물학적 천성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다른 시스템은 불가능 할 것이다.
한 쪽이 부재하면 다른 쪽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으니까.
http://cafe.daum.net/sgi540/H0th/1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