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옛날 옛날, 아주 가까운 옛날,
시계가 밥 먹던 시절에 추워도 다 같이 춥고 고파도 다 같이 배고팠던 시절,
집에서 태어나서 집에서 저 세상 가던 시절,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뒤통수 벗겨진 색경(色鏡) 보고 이발기로 상고머리 빡빡머리 깎던 시절,
쥐를 잡자, 저축의 달, 불 조심, 방공 방첩 가슴에 표어를 달고 살던 시절,
신문지로 모자 접고 비료 포대로 글로브 만들던 시절,
남자들이 미장 원에 가면 큰일 나고 여자들이 겨털 깎지 않던 시절,
아무 데서 나 엄마들이 저고리 올리고 아기들 젖 먹이던 시절,
신문이 오면 TV방송 편성표, 오늘의 운수 먼저 보고 고우영의 수호지 보려고 일간 스포츠 사던 시절,
밤마다 천정에서 쥐새끼들이 운동회하고,
두툼한 전화번호부를 베고 누워 텔레비전 보던 시절,
외국인은 모두 미국인이고
토요 명화는 미국 영화, 외국 노래는 팝송이던 시절,
급해서 뛰어가다 가도 국기 하강 식에 걸리면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야간 민방위 훈련 때 민방위 대원이 “불 꺼요” 소리 치던 시절,
경인역전마라톤대회 맨발의 아베베 선수가 달리고
외국 대통령이 오면 단체로 나가 국기 흔들던 시절,
수놈은 쫑(john,요한), 암놈은 메리(Mary, 마리아)
동네 덕구(dog)들이 죄다 미국인이고 요한이요, 성모 마리아였던 시절,
구두닦이, 상이군인, 연탄가스, 토큰, 회수 권, 장수 만세, 주택 복권, 말표 신발, 왕자표 신발, 범표 신발,
흰 고무신, 검정 고무신,
커피는 맥스웰 하우스, 프림은 동서 식품, 감기엔 판피린, 소화제는 훼스탈
매 맞아 멍든 데는 안티프라민, 이명래 고약, 송충이 잡기, 칡뿌리 캐기, 요괴 인간, 우수 소년 아톰,
여로, 아씨, 법창 야화, 오제도 검사, 전설의 고향,
대연각 호텔, 대왕 코너, 시민 회관, 쥬시 후레시, 스피아 민트, 껌은 오~오~.. 롯데껌,
김일의 박치기, 당수 왕 천규덕, 시발택시, 크라운 택시, 포니, 한강 다리 전차 길엔 전차가 느리게 달리고,
아이들은 열쇠 키를 만든다며 전차 철 길에 대못을 올려놓고 도망가고,
우리 삼촌은 전차 비 안 내려고 뛰어내리다 다리가 부러져 삼각지 뼈 접골에 다녔던 사절,
양파, 단무지, 도시락, 양동이, 다라, 나무젓가락, 찹쌀떡, 일본말이 너무 많이 우리랑 같이 살던 시절,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 없이는 못 마시던 시절,
시골 영감이 처음 타는 기차놀이에 차 표 파는 아가씨와 실랑이 하면서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어 따지던 시절,
오후 반이면 오전 반 끝날 때까지 공기 하고, 고무줄 하며 기다리고,
소풍 가기 전날, 비가 올까 봐 연신 하늘을 살펴보던 시절,
아래 목에 묻어둔 밥그릇 엎어지면 이불에 묻은 밥풀 떼어먹고,
낮잠 자고 일어나 아침인 줄 알고 가방 메고 다시 학교 가던 시절,
이소룡의 정무문, 성룡의 취권, 왕우의 외팔이 시리즈, 추석, 설날 명절 특집 영화는 중국 영화이던 시절,
운동장을 돌며 맹호 부대, 백마 부대 군가 부르고 옥수수 빵 배급받던 시절,
씹던 껌을 벽에 붙여 놨다가 다시 씹고, 덴찌 후레시로 편 먹고 놀던 시절,
어린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하고, 남자아이는 재기 차기 하며
엄마에게 자기 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 달라고 노래하던 시절,
딱지치기,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달고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생활이던 시절,
당구장에 갔다고 학생 부에 끌려가 뒤지게 맞고, 극장에 갔다가 걸리면 처벌받던 시절,
안소영이 말을 타고 가슴 출렁이며 해변을 달리고 키스신이 나오면 단체로 휘파람 불던 시절,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 혼자서 잠자고 있던 시절,
인천의 성냥 공장, 성냥 공장 아가씨는 아직도 몸성히 성히 성히 잘 있느냐?
옛날 옛날
아주 가까운 옛날.
우리 모두가 이제 막 피어나는 연두색이던 시절....
우리가 살아온 그 시절 하나하나가 이 나이가 되니 주마등처럼 흘러가는구나.
그렇게 살 때는 힘들고 지치고 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라온 세월 같았는데
이 나이가 되니 가슴 적시는 추억이요 그리움이구나.
아 ~~ 그립구나 그 시절이...
<옮긴 글>
첫댓글 감사합니다
종땡이 님!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