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대각사 참 좋은 인연 나눔회 가족 여러분 !
반갑슴니다 , 고 맙슴니다, 사랑 함니다 !
저는 1999년 후반기 부터 지금 2024년 초 까지 어언 24년간 을
대각사 혜명 선생님과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해온 전임 회장 역
지금은 고문자리에 자리한 정인철이라 함니다
여러분들과 똑같은 인연으로 장군 보살(무당) 님을 만나 좋았던
일보다 ,힘들어 방황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세월을 함께 하면서
보살님이란 호칭이 선생님으로 바뀔때까지 의 대각사의 역사를
여러분들보다 좀더 보아 왔기에 저에 생각을 전하려 함니다.
우리에 삶은 인연과보에 따라 살아간다고 ,그 동안 수많은 인연
들이 스쳐 지나감에 따라 그 인연자들의 본향을 찿고 선생님의
수행 과정에 따른 기도와 수행의 발자취는 전국 방방곡곡 안간
곳이 없고 백두산, 중국 을 넘어 유럽4개국 마지막 천계의 도읍
지인 곤륜산까지 설렵 하는동안 신의 제자로서 신의 영역에서
헤여나지 못하시는 삶에 갈등은 물론 제가집 인연 되여 성불을
보았으면서도 주변의 인식과 개인의 이상추구가 달라 돌아서는
인연자들에게 받는 가슴아푼 사연까지도 보살된 자신의 숙명이
라 인정하며 가슴 가득 담아 놓고 서도 누구하나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소중한 인연이라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가피되여
자비의 근본 아미타 부처님 방 미타전 현판앞에 깨달음의 도량
을 건립하시는 부처님의 명훈가피 현상? 을 보게 되였음니다.
여기서 일대사 인연의 선택받은 우리는
우리 모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 대한 민국이란 선택 받
은 축복 받은 땅에 살아갈수있는 특혜를 누리고 살면서도 삶에
진정한 의미(홍익인간 , 이화세계) 를 추구할 겨룰도 없이 억겁
의 시대 탁에 찌들려서 *방황하는 영혼* 의 굴래를 벗어나지 못
하고 종교생활을 통해 우리의 *국조 삼신님*들의 이념에 따른
참다운 나를 찿아 보람된 삶의 길을 찿고자 여기에 모이는 부처
님 일대사 인연을 따르게 된것이라 생각함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종교단체와 보살의 역활을 하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음에도 유독 대각사의 아미타 도량에 인연주심
은 억겁의 세월속에 인연과보의 결과 무지의 세계에 살아가는
우리 중생들 에게 다시 한번 깨우침의 기회를 주신 * 부처님
의 자비*(사무량심) 에 마음이 아닐까 생각함니다.
우리 선생님의 수련 과정을 함께하며 우리 신도회 임원 몇분은
이미 깨달음의 문턱을 넘어 내 마음에 행복을 관리 할줄 아는
힘(가피) 을 느껴보신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함니다 .
불이문 옆에 깨달음의 도량 이란 구호! 처럼 우리 모두 보살님
들은 아니지만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한
시간부터 나만의 행복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하며 나누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 선생님의 보살행의 구도에 신심으로 함께하는 길
을 따르고, 배우고 ,나누는 ,
대각의 모든 가족에 행운을 기원드림니다
여기에 2024년 대각사의 선생님이 신도들과 함께 깨달음에
갈수있는 수행을 목표로 잡아 놓으신 내용을 소개 함니다
일대사 인연 [一大事因緣] 이란
*중생을 제도하기위해 부처가 인연을 맺어 세상에 나타나서
교화 하는일
대각사 혜명 선생님의 보살행 염원
사무량심四無量心 : 불교의 보살이가지는 4가지 의 자비심
모든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과 미혹을 없애주는 자(慈)
·비(悲)·희(喜)·사(捨)의 4 가지 무량심을 의미한다.
자무량심(慈無量心) 모든 중생에게 즐거움을 베풀어 주는 마음
가짐이며, 비무량심(悲無量心)은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
로 고통의 세계로부터 구해내어 깨달음의 해탈락(解脫樂)=깨달
음을 주려는 마음가짐이다.
희무량심(喜無量心)은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을 버리고 낙을 얻어
희열하게 하려는 마음가짐이며, 사무량심(捨無量心)은 탐욕이 없
음을 근본으로 하여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고 미움과 가까움에
대한 구별을 두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처음에는 친한 사람에 대하여 이 마음을 일으키고 점차로 반경을
넓혀서 미운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평등하
게 이 마음을 일으키도록 되어 있다.
4무량심은 대승불교권에 속하는 우리나라 고승들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자비를 상징하는 십일면관음의 조상(彫像)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자무량심은 3면으로 표현된다. 그 까닭은 자무량심이
①고통만 있고 즐거움이 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그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고,
②다행히 복은 있지만 지혜가 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복과 아울러
지혜를 다 갖추도록 하려는 것이며,
③지혜는 있지만 통달하지 못한 중생으로 하여금 지혜와 아울러
신통력까지도 다 갖추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무량심 또한 3면으로 표현된다. 그 까닭은 비무량심이
① 고통스러운 과보에서 떠나려고 하지만 오히려 욕심 때문에
고통을 낳는 행위에 빠져 있는 자를 구하기 위하여,
② 즐거움의 과보를 얻고자 하면서도 즐거움이 있게 하는 착한
원인을 만들 줄 모르는 자를 구하기 위하여,
③ 적정(寂靜)한 이치를 구하려 하지만 오히려 산란한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자를 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희무량심 또한 3면으로 표현된다.
그 까닭은 희무량심이 중생을 제도하고 * 정업(淨業)을 쌓기를
바라는 이가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각각 올바른 행위와 말
과 생각을 하는 것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다.
사무량심은 1면으로 표현된다.착한 이, 악한 이, 선악이
뒤섞여 있는 중생들에게 어떠한 집착도 없이 제도하는 것
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무량심을 철저히 실천하면 부처의 경지
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니, 대승불교에 근본을 둔 대각사 불제
자는 이 마음을 먼저 길러야 함이 목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