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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 45 그들이 묻되 - 요 7: 53 집으로 돌아가고
7. 믿지 않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 7: 45-53 )
45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요 7: 45 그들이 묻되 -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부터서 왔고, 자기를 믿는 자는 목마름을 해소할 것이며,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했다.
유대의 역사 속에 그렇게 말한 자는 없었다. 인류의 역사에도 없었다. 물론 거짓되고 부도덕한 이단이나 사이비 종파의 교주들은 그런 말을 했을지 모르지만, 양심적인 인격자들 중에는 그런 말을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불교의 석가모니는 인생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 욕심이며 그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가르쳤다.
이슬람교의 모하멧은 여섯 명의 선지자들 중 한 사람으로 추앙될 뿐이다.
유교의 공자는 자기 자신과 가정을 다스리며 국가와 세계를 사랑과 정의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쳤을 뿐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조로아스터는 단지 자신을 예언자라고 주장했다.
1]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여기 나타난 그들의 질문을 보아서, 그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해하려는 마음으로 불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기득권자들의 횡포는 뭐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합법적인 절차와 방법에 의한 체포가 아니라 자기들의 권익에 반하면 이러한 불법을 자행할 것이다.
요 7: 46 말하는 것처럼 -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이 세상의 유일한 구주라고 주장하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한 사람은 역사상 아무도 없었다.
1]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아랫사람들(성전 경비원들)의 느낌에도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었다.
따라서 그 말씀은 권세 있는 자의 말씀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 마 7: 29 -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그러므로 저 아랫사람들도 압도되어 그를 잡지 못하였다.
요 7: 47 미혹 -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
‘미혹되었다’는 말은‘속임을 당하였다’는 뜻인데, 예수님이 무리를 속이는 자이셨는가?
그들이 예수님을 반대한 이유는 타당성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 될 수 없다. 또 그들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을 정죄하는 것이 성경적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께서는 성경으로 자신을 증언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언들과 예표들을 제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 눅 24: 27 -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1]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예수님을 잡으려던 아랫사람들은, 그래도 그의 말씀 앞에 압도를 당하였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미혹된 자들이라고 한다. 그 만큼 바리새인들은 더욱 강퍅하였던 사실이 드러난다.
* 시 95: 10 -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 사 9: 16 -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 도다.
이 세상은 앞으로 많은 미혹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 요이 1: 7 -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특히 종교계에 나타나는 현상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 마 24: 4-5, 11, 15, 24-25 –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 계 13: 14 -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요 7: 48 믿는 자 -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
유대 사회의 지도층이나 바리새인 중에는 하층계급의 천민인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 자는 없다고 하였다.
1]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이 점에 있어서 어거스틴(Augustine)은 해석하기를, "그 때에 율법을 모르는 무리는 도리어 율법의 제정자이신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율법을 가르치노라고 하는 자들은 그를 정죄하였다.
그것은, 그가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시리라는 말씀(9: 39)의 성취이다"라고 하였다(Catena Aura IV,P.279).
바리새인이 믿는다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그들의 정교한 종교체계 및 전통을 훼손하고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예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회의 하층계급을 대표하는 자로 간주하였기에 높은 학식을 가진 자신들이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로 생각하였다.
요 7: 49 저주 받은 자 -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불신앙이 진리의 표준인 듯이 여기서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그들의 시기로 인하여 발표된 역설(逆說)이다. 그들 자신이 그들 자신의 죄악에 미혹되었다.
1]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가리켜 율법을 모르는 자라고 망단(妄斷)한다.
오늘날의 세태도 이와 같다. 법을 다스리는 자들이 더욱 불법을 자행한다.
요 7: 50 전에 예수께 왔던 -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
유대 지도자들이 성경대로 판단하기를 원한다면, 그를 판단하기 전에 그의 말에 어떤 거짓이나 잘못이 있는지, 또 그의 행한 바들에 어떤 도덕적 악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성경적 판결을 하는 자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들이나 행동들에는 정죄 받을 악이 없었다. 단지 그들에게는 갈릴리 지방에 대해 멸시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정당하지 않았다. 요나는 갈릴리 출신이었고(왕하 14: 25. 수 19: 13) 나훔도 그러한 것 같다.
확실히,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무지했든지, 의도적으로 성경을 왜곡하였다.
1] 그 중의 한 사람,
그들의 이 말은 그 자리에서 모순된 것으로 탄로된다. 곧, 그들의 이 말 끝에, 그들 중 하나인 니고데모가 그리스도 신앙의 방향으로 돌아온 표를 나타내었다(50-51).
여기에 따라서 그들의 호언장담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2]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니고데모의 이 말은, 바리새인들의 호언장담한 내용, 곧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예수 믿는 자가 없다는 주장(48절)을 수포화가 되도록 시켰다.
그 이유는 니고데모는 관원이요 바리새인(3: 1)이면서도 이 때에 예수님을 변호할 정도의 신앙이 있었던 것으로 이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니고데모는 같은 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지냈다.
* 요 19: 39-40 –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 마 27: 57-60 –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 막 15: 43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 눅 23: 50-53 –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그 뿐 아니라, 바리새인들의 또 한 가지 호언장담, 곧, 자기들 딴에는 율법을 안다고 하면서 율법을 모르는 무리를 저주한 것도, 니고데모의 이 말 한마디로 인하여 헛된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이 남들을 율법 모르는 자들인 사실이, 니고데모의 이 말로 확증되었다. 그들은, 남들을 정죄하려다가 도리어 자기들 자신을 정죄한 셈이다.
* 신 1: 16 -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 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할 것이라.
* 출 23: 1-3 - 1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요 7: 51 사람의 말을 듣고 -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
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법은 모든 집행에 대하여 절차와 방법이 규정되어있다. 그러나 불법을 행하는 자는 법을 역이용하여 자기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서슴치 않고 자행함을 알아야 한다.
요 7: 52 찾아보라 -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
1]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그들이 니고데모를 업신여기는 태도로 이 말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모순된 말이니, 율법과 성경에 대한 그들의 무식을 자증한 것뿐이다.
2]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찾아보라"는 것은 율법책(혹은 성경)을 상고하여 보란 말이다.
그들은 이렇게 도전적으로 자기들 딴에는 율법이나 성경의 권위자인 듯이 자처하며 남들을 무시한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그들 자신의 무식이 여기 이 말로 나타났다.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못하느니라."고 한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 사 9: 1 -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요 7: 53 집으로 돌아가고 -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
1]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여러 가지 쟁론 끝에 무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님은 8: 1에 감람산에 가시는 것으로 긑난다.
8장 초두에 취급된 사본 문제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오라 (요한복음 7: 37-53)
예수님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많은 무리들을 향하여 서서 외치셨다.
명절 끝날 이란 일곱째 날로 절기가 끝나고 여드레 되는 날은 대회 혹은 성회라 불려지는 날이므로 명절 마지막 7일째 되는 날을 의미한다.
주님이 외치신 메시지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것이다.
(1) 누가 목마른 자인가?
예수님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이 명절에는 매일 실로암 물을 길어오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초막절 행사 중에 하신 것으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어떤 암시적인 흥미를 줄 수 있었습니다. “목마른 자는 오라”고 하신 목마른 자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① 영혼의 기갈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재물이 많았던 부자 청년도 이 영혼의 기갈로 인하여 주님 앞에 찾아 나와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고 물었다.
삭개오도 이 기갈로 예수님을 뵈려고 뽕나무에 올라갔다가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 이 물을 마신 것이다.
② 인생의 죄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죄 값은 사망이다. 누구든 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자기의 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목마른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께로 나와야 한다.
③ 마음에 평안이 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평안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지옥에서 살아가는 듯한 고통을 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평안이 없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자기가 목마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께로 나와서 평안을 주시는 물을 마셔야 한다.
(2) 내게로 와서 마셔라.
주님은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목마른 자의 해결자로서 그들을 초청하시는 분이다. 이 세상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이 같은 초청자이시다.
예수님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 죽은 자에게 부활을 주신다.
이 물을 마시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목마른 자의 갈증을 해결하는 주님의 물은 요한복음 6: 53 이하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하셨다.
(3) 생수와 성령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설명하기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목마른 자에게 마시라고 하신 그 물은 곧 예수 자신이시며 마신다는 말은 그를 믿는 일임을 알 수 있다.
① 성령은 진리로 인도하신다.
* 요 16: 13 -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②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언하신다.
* 요 15: 26 -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③ 성령은 회개하도록 하신다.
회개는 성도의 최고의 복이다.
④ 성령은 끝날까지 착한 일을 이루신다.
* 빌 1: 6 -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수군거렸다. 어떤 사람은 이가 참으로 그 선구자라 했다. 이 선지자는 모세가 증언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은 이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가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그를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하시는 이적과 그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성경의 증거를 댔다.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아랫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를 잡아오지 못한 일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의 책망을 들을 때에 그들은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고백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음을 말한다.
바리새인들이 공회에서 예수님에 대한 쟁론을 벌렸다. 그들은 대노하여 아랫사람들에게 “너희도 미혹되었느냐”고 책망하면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들은 저주를 받은 자”라고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무리들을 정죄했다.
이때 니고데모가 그들을 공박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고 말한 것이다. 율법에서 재판은 공정해야 한다고 명하고 있다.
* 출 23: 1-3 – 1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시는 말씀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는 이 물을 목마른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사명이 있는 성도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유대 땅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자라셨지만, 실상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자이시며 그의 근본은 영원 전부터이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곧 하나님이시다. 그는 참된 신성을 가지신 자이시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곧 신성(神性)을 가지신 자이심을 아는 것을 말한다.
둘째, 구원은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심과 같다.
예수께서는 목마른 자마다 그에게 나아와 생명수를 마셔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구원을 받으라고 초청하셨다. 이것이 구원이다.
주께서 말씀하신 목마름이란 인간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죄와 고통과 불행과 허무, 그리고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의 문제들로 고민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생의 영적 목마름을 단번에 해소하시는 구주이시며, 또 그는 그를 믿는 자가 성령을 받음으로 영원한 위로와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자이시다.
구원은 죄인들의 마음에 있는 갈증을 참으로 해소시키는 것이며 참된 평안과 기쁨을 주는 일이다.
셋째, 인류 역사상 예수님처럼 말한 자는 아무도 없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모든 죄와 불행과 죽음의 문제의 해결자라고 말한 자는 역사상 아무도 없었다.
거짓되고 부도덕한 이단이나 사이비 종파의 교주들은 그런 말을 했을지 모르나, 양심적인 인격자들 중에는 그런 말을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석가모니도 모하멧도 공자도 조로아스터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이 주장하신 바로 그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참된 신성(神性)을 가진 자이시며 인류를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실 유일한 구주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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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음으로 해서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군요,
누구를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랍니다.
어머니에 조건 없는 사랑, 우리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조건 없이 누구를 사랑하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