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마지막 검증>
다음 날 아침, 일찍 실험실에 들러 조교 부임 때부터 엊저녁 일까지 한편의 드라마 같은 지난 기억의 편린들을 새삼 떠올렸던 나는 잠시 펼쳤던 회상의 두루마리를 서둘러 접었다. 그리고 아침 미팅에서 어제의 실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어제 밤 기록해 두었던 실험 성적을 다시 점검하였다.
형광항체 실험이 본 괘도에 오르고 부터 매일 아침 미팅을 통해 교수님께서는 연구의 진전 상황을 잘 알고 계셨지만, 어제의 확정시험 결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시는 듯했다. 정확한 분석에 의한 신중한 판단을 최고의 덕목으로 하는 과학자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날 이후 교수님께서는 내 실험실로 종종 내려오셔서 추가적인 검증시험 결과들을 직접 현미경을 통해 육안으로 확인하시면서 이번의 발견 사실을 믿으시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다. 국군통합병원 회의에서 돌아오신 교수님께서 출혈열 환자 샘플이라며 혈청 vial 여러 개를 건네주시면서 항체검사를 해 보라는 것이었다. 소위 blind test (맹검)였다.
나는 밤늦도록 실험에 몰두했다.
검사결과 그 중 몇개는 양성이었고 몇개는 음성이었다. 다음 날, Vial에 적힌 번호대로 성적을 기록해 갖다드렸더니 챠트를 꺼내 맞춰보시며 양성은 출혈열 환자들의 것이고 음성은 모두 정상인들로 다 맞는데, 그 중 환자 한 사람이 음성으로 나왔다 하시며 실망의 빛이 역력하셨다.
순간 머릿 속이 새하얘졌다. 혹시 검사가 잘못 됐나 해서 재검을 반복해 봐도 결과는 분명히 음성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애써 발견한 항원이 출혈열 항체와 교차반응을 일으키는 다른 종류의 그 무엇이란 말인가! 그 동안 그렇게 열심히 확정에 확정시험을 거쳤건만 정녕 유사한 그 무엇에 불과했던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그러면 이제 이 힘든 장애물 경기를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가!
온갖 잡념과 허탈감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다음 날 늦은 오후였다.
교수님께서 다급히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이선생! 혈청검사 음성으로 나왔던 그 환자는 출혈열 환자로 오진 된 것이 밝혀져 일반 병실로 이송했다고 연락이 왔다네!” 하시며
“이 선생의 검사 결과가 모두 맞았네.” 하시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교수님께서 그렇게 흥분하신 것은 본적이 없었다.
그 말씀에 나는 튕기듯 벌떡 일어섰다. 그 동안 나를 괴롭혔던 모든 잡념들이 한꺼번에 말끔히 사라지면서 마음 속을 짓누르던 거대한 돌덩이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했다.
교수님은 환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이선생이 맞았네. 이제 모둔 게 분명해졌어."
나 역시 힘주어 말했다.
“이젠 모든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이번 발견의 중요성과 의의에 비추어 발견자는 높은 칭송을 받을 것이며 또한 과학사에 큰 업적을 이루는 것이 될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올해는 선생님의 해가 될 것 입니다!”
이번 발견의 성과는 우리 ‘디스커버리호(號)’의 선장으로서 막중한 연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오신 교수님께 당연히 돌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감격에 찬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 간 수고가 많았네. 이 선생이 이번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
이번 발견에서 나 자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지만, 나는 다만 맡겨진 업무를 사명감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었고, 그 열매로서 귀중한 체험과 최상의 기쁨을 누렸으니 그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할 일이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는 내 어깨를 두드리시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이 이후부터의 모든 찬신와 업적은 이 선생과 더불어 같이 할 걸세!”
학문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뿌듯한 자부심과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연구인생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개(氣槪)가 충천하는 벅찬 감동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