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 인근의 한 수제 버거집에 금발의 사나이가 들어왔다. 선글라스에 포마드를 발라 멋을 낸 그는 스노보드 황제 숀 화이트(32·미국)였다. 그를 알아보고 놀란 직원들이 황급히 자리를 비우자 그는 식당 주인 윤중천 씨(46)를 찾았다.
화이트의 갑작스러운 동네 식당 방문에는 사연이 있었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화이트는 공식 훈련을 하는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너를 위한 버거를 파는 데가 있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 이날도 한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옆 테이블 손님들에게 비슷한 사연을 전달받았다.
호기심이 강한 화이트는 가만있지 않았다. 이미 식사를 마친 뒤였지만 그는 자신만을 위한 버거를 찾아 나섰다.
이 버거집 주인 윤 씨는 수준급 하프파이프 실력을 갖춘 스노보드 고수로 화이트의 열렬한 팬이다. 자신의 가게에서 차로 5분 거리에서 화이트가 경기에 나선다는 사실에 특제 버거를 메뉴판에 추가했다. 새 버거에는 혹시라도 자신의 식당을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화이트의 별명인 ‘플라잉 토마토’라는 이름을 붙였다. 메뉴 밑 설명에는 ‘가장 특별한 메뉴. 오로지 숀 화이트만을 위해, 당신의 금메달을 바라며(The best special thing. This is only for Shaun White, My wish for your gold medal)’라고 적혀 있다.
가격은 100만 원으로 정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팔 생각도 없었다. 그저 4년 전 소치 올림픽에서 메달을 놓친 자신의 우상이 평창에서는 꼭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았다.
화이트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버거를 주문해 점심 식사를 두 번이나 했다. 그 바람에 배가 좀처럼 꺼지지 않아 그날 저녁은 간단히 수프와 샐러드로 때웠다.
그럼 버거 값은 어떻게 됐을까. 윤 씨는 “설마 진짜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눈물이 날 정도였다. 100만 원을 주든가 아니면 맛있게 먹고 가시라고 했다. 이미 식사를 하시고 왔다는데도 정말 많이 드셨다. 나한테는 정말 영웅인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였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