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나눠야 한다. 민주정의 핵심은 권력을 독식하지 않고 나누어 행사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의 모든 문제는 권력을 나누지 않는 데서 생기고 있다.“ 정치학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와 선거제를 바꾸지 않는 이상 '심리적 내전' 상태에 준하는 정치적 양극화는 필연적이며, 대한민국 앞날에 엄청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제냐, 감옥이냐.' 루이 보나파르트가 싫어서 민주정을 했는데 지금은 '대권이냐 감옥이냐'가 됐다. 트럼프가 양극화의 산물이면서 원인제공자이면서 수혜자이듯, 한국의 양극주의자들 역시 패배한다 해도 권력만 없다 뿐이지 자기 진영의 지지를 받고, 국회의원으로서 특권을 누리며,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팬덤을 동원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때까지만 해도 연합정치에 대한 이해가 컸고, 권력을 나눠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쪽 할 것 없이 파당적이다. 오직 너 죽고 나 살자는 사법주의 뿐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 연합정치의 마지막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 탄핵연대가 연합정치를 되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박근혜 탄핵 찬성 여론이 80%였고, 국회에서도 찬성 234표로 80% 정도 나왔다. 민심과 의회가 일치한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검찰하고 연정해서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탄핵연대를 스스로 해체해버렸다.
적폐청산이 아니라 적폐극복을 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에 되묻고 싶은 건 적폐청산으로 무엇을 이뤘느냐다. 북핵, 자살, 인구위기, 복지, 기후, 환경 등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제기되는 온갖 이슈에 대해 문재인 정부 전후로 개선된 게 뭐가 있는 지 냉정하게 되돌아 봐야 한다. 탄핵연대를 이어갔으면 적폐극복에도 성공하고, 검찰집권도 없었을 것이다. 연정을 통해 외환위기 극복과 정권재창출에 모두 성공한 김대중 대통령의 연합정치에서 배웠어야 했다.
민주화 이후 8명 대통령의 평균 득표율은 유효 투표 대비 44.65%, 선거인수 대비 고작 34.03%이다. 출발부터 소수파 대통령이다. 그런데 당선되면 100% 대통령처럼 행동한다. 더구나 한국의 대통령은 인사권, 예산권, 감사권 등 너무 권한이 많다. 윤 대통령은 득표율 차이가 극히 적었던 데다, 민주당 검찰총장 출신으로 보수에 뿌리가 없고, 정치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었다. 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불가피한 조건이었는데도, 자기는 해낼 수 있다고,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집권 초 제왕적 대통령들이 나중에 가서는 왜 모두 개헌을 얘기했을까,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대통령제가 안정적이고 내각제가 불안정하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 이기면 내가 하고픈 대로 밀어붙이면 진영정치, 대결정치밖에 남지 않는다. 정권 바뀌면 전 정권 정책은 바로 뒤집힌다. 파당적인 이슈만 화제가 되고 국가적인 이슈는 묻힌다. 그런 식으로 선거 한 번에 국가가 출렁대면 장기적 발전이 지장 받는다. 실제 대통령제 국가와 내각제 국가 비교연구를 보면 1인당 GDP, 복지, 불평등, 지니계수, 민주주의 지수, 성평등 지수, 빈곤율 등 그 어떤 지표로 비교해봐도 내각제 아래 합의정치가 훨씬 우월한 걸로 나온다.
"에이브러햄 링컨, 빌리 브란트, 넬슨 만델라 같은 이들이 지지율이 낮아서, 의석이 부족해서 반대파를 내각에다 끌어들인 게 아니다. 100% 정부란 없다. 극도로 싫어하는 반대파라 해도 국민의 지지를 받는 민심의 지분이 있다면 그만큼 권력을 나눠야 한다. 그래야 타협과 합의가 가능하게 되고, 그 결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국정이 자리 잡는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 그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
"가장 최악은 이대로 가다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다. 좀 더 나은 방법은 윤 대통령이 탈당한 뒤 거국내각을 구성해 양당 모두에게 빚이 있으니 중립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나은 건 민주당과 대연정을 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나은 건 합의를 통한 분권형 개헌이다. 지금 현행유지, 탈당과 중립내각, 대연정, 개헌 네 가지 선택이 있다. 뒤로 갈수록 더 나은 선택이다. 꼭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선택을 하길 권한다.“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 (1342~1398)은 '궁궐이 정치를 하면 인치(人治)가 되고 대간이 정치를 하면 형치(刑治)가 된다, 전자는 나라가 망하고 후자는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따라서 정치는 의정부가 해야 한다'라 했다. 인치와 형치, 그걸 뛰어넘는 정치. 14세기 봉건왕조 시대 정치인이 21세기 최첨단 디지털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보낸, 참으로 무거운 경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