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장발족 단속이 시작 되었지요
경찰서 유치장에서는
즉결 심판을 기다리는 젊은들로 늘 붐볐답니다
경찰관이 단속에 걸린 젊은이 머리를 가위로 싹둑 싹둑 ..
그래도 장발은 더욱 확산되고~
미니스커트 열기도 식을줄 몰랐죠
심지어 기업의 여사원들 정복까지도
미니스커트 열풍이 몰아 첫답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여러가지 밥으로 만든 통조림입니다
군사 훈련을 받고 있는 대학생들입니다.
(교련시간)
예나 지금이나 구세군 자선 남비는 변함이 없지요
장독대 위에 정한수 떠 놓고서 객지로 간 자식이 무탈하라고
우리의 어머님들은 빌고 또 빌었답니다
년말이 다가오면 길거리에는
온통 달력 장사들이 도배를 했었답니다
달력 한장에 당시 몇십원 이였던가
기억이 가물 가물 합니다
그당시에는 워낙 귀해서 돈주고 사야만 했어요..
선물로선 최고 였지요
말로 쌀을 되고 있는 소년입니다
말통이지요 한말에 5되기준이였으며
당시 쌀 한가마니 80k에 6,800원으로
기억 되네요
우체부 아저씨들
당시는 기동력이 없어서
모두가 걸어서 배달하던 시절이였으며
하루 평균 80리를 (32K)걸어서 다녔다고 합니다..
무척 고생많으신 분들이었지요
이야홋 ~
잘아시죠 ?
제기 차기 구멍 뚤린 엽전이나 병뚜겅으로 만들어서
아무 장소나 둘이상만 모이면
누가 많이 차나 시합 하며 최고의 고수를 가리고 했지요
모 방송에 출연중이 보컬 그룹인데 이름을 모르겠네요
당시는 무척 세련된 모습이였답니다
당시 S대학교 주변 막걸리집 벽에 낙서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낙서 문화는 변함이 없지요
대학교 응원전
우측 응원 단장이 지금의 방송인 임성훈씨 같네요
모 여대 학생들 옷차림이 단정하고 청순해 보입니다
겨울인데도 미니스커트는 여전히 ......
길거리 리어커에서 팔고 있는 번데기입니다
아이나 어른들이나 길거리 간식용으로 무척 좋아들 했지요
번데기앞에서 주름잡지 말라는 말이있는데
번데기 주름은 평균 6~8개이며 7개가 가장 많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후 추풍령 휴게소입니다
당시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으며 김밥이나 계란 장사들이
(잡상인)
때돈을 번곳이라고 합니다
추억의 책가방과 검은 교복 (고등학생)
우리 부모님들이 사시던 시골집입니다
초가 지붕에 돌담
거적으로 벽을 만든 엉성한 이곳이 왠지 향수에 젖습니다
출근 전쟁은 지금이나 변함이 별로 없죠?
주유소 아르바이트생
70년초 국내 최초로 아르바이트란게 생겼답니다
음식점에도 아르바이트
당시는 아르바이트 할려면 꼭 유니폼을 착용해야만 했답니다
뱀 장수
당시 외국으로 수출이 되었으며 외화 벌이에 많은 일조를 하였답니다
해수욕장의 쉼터
연인들에게 몇시간씩 대여 해주는 텐트도 있었답니다
지금같으면 불법으로 큰일나지요
양장점에서 옷을 마추려고 사이즈를 재고있네요
당시 남여 누구나 정장 한벌쯤은 마춰입고 싶은게 꿈이었지요
강변의 페스티벌 같네요
악기라고는 통키타가 최고였지요.
통키타 하나쯤 옆구리 차고 다니며
열차안에서 버스안에서 대중이 모인 장소에서
퉁기면 인기 짱이였지요
용산 기지촌으로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