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세’ 싣는 신문, ‘괴담’의 멀티버스 / 홍원식
이제 ‘가짜뉴스’는 한물간 모양이다. 다른 유행어가 그렇듯이 ‘가짜뉴스’라는 단어는 불현 듯 ”시들해지고 이제는 그 자리에 괴담이라는 단어가 엇비슷하게 자리를 잡은 듯하다. 며칠 전 여당의 한 토론회에서는 일부 언론이 ‘오염수 괴담’을 퍼트리고 있다는 불평이 있었다. 여기서 ‘괴담 스피커’로 지목된 곳은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같은 공영방송 그리고 <한겨레> 등이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 그렇게 괴담으로 매도당할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의 보고서가 곧 과학적 검증의 완성이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괴담 딱지는 오염수 방류뿐만 아니라 광우병과 사드를 거슬러 올라가더니 이제는 양평 고속도로와 명품 쇼핑 등의 의혹에까지 확장하며 온갖 도로의 현수막과 보수 언론의 사설을 장식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보수 언론에서 일제히 괴담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총선에서 ‘괴담 정치인’을 심판해야 한다는 어쩌면 너무 솔직해서 깜짝 놀랄 만한 목소리까지 거침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실제 괴담이 문제인 것인지 이를 괴담이라 칭하며 전쟁을 선포하는 괴담 딱지가 문제인 것인지 혼돈스럽기만 하다. 가히 우리는 과거의 광우병 파동에서 현재의 양평 고속도로까지 시공간을 넘어 무한확장되는 괴담과 반괴담의 멀티버스 세계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만 것 같다.
그리고, 이 멀티버스를 더욱 혼돈스럽게 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을 그토록 혐오하는 듯이 보이는 반괴담의 투사들이 이제는 풍수지리의 권위를 믿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실의 관저 이전을 살펴보는 자리에 천공이 있었다는 것은 괴담이지만 다른 풍수지리 전문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반괴담이 되어버리는 이 모순의 세계는 문과생인 내게 고양이가 살아있으며 죽어있다는 무슨 과학 이야기만큼이나 이해 불가한 영역이다. 어쩌면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적 세계가 우리 언론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과학을 목 놓아 부르짖는 우리 언론이 여전히 띠별로 보는 ‘오늘의 운세’를 통해서 대략 어느 쪽으로 가야 귀인을 만날지 그리고 오늘은 금전 운이 있을지 애정 운이 있을지 등을 매일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과학과 괴담이라는 세계의 경계는 그저 줄긋는 사람 마음대로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확인과 정확성이 생명인 언론사에서 그냥 재미있으니까 보라고 들이미는 것은 염치없는 것이지만, 여전히 ‘오늘의 운세’가 버젓이 신문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독자라도 붙잡아주는 나름의 효자 상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언론의 ‘오늘의 운세’야 재미로 보는 것으로 넘어간다지만, 국가적 결정에 나타난 풍수지리학은 어찌 이해해야 하는지 그야말로 난해한 교과과정 밖의 출제 문제인 듯싶다. 여기서 함정은 출제자의 의도는 애초에 괴담과 반괴담의 경계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의도대로라면, 결국 우리는 정치권과 언론이 보여주는 괴담과 괴담딱지의 멀티버스에 갇혀서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는 탈출이 어려울 것이다. 괴담의 멀티버스 속에 갇힌 우리에게 앞으로 각종 사회, 문화, 경제 그리고 외교, 국방의 문제들은 별로 좋아질 기미가 없어 보이고 암담할 테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오늘의 운세’인걸.
홍원식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수정 2023-07-2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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