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쑥날쑥 여론조사와 ‘하우스 이펙트’
문항, 응답자 성향 따라 널뛰는 조사 결과
‘민심 왜곡’ 저질 조사 유통 막을 방법 찾아야
총선을 약 4개월 앞두고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조사 기관에 따라 정당 지지율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12월 2주 차 여론조사(전화면접)에서 여야 지지율은 국민의힘 35%, 더불어민주당 34%로 오차범위 내에서 비등한 구도를 보였다. 양당의 지지율이 최근 몇 달간 30%대 초중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엇비슷하게 이어진 것이 갤럽의 결과다. 전화면접으로 진행되는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정당 지지율 흐름도 유사하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민주당 지지를 천명해 온 한 유튜버가 만든 여론조사 업체의 12월 2주 차 조사(ARS)에선 민주당 지지율 51.6%, 국민의힘 37.0%로 그 격차가 오차범위 밖인 14.6%포인트로 벌어졌다. 이 업체가 최근 6개월간 실시한 27번의 정례 지지율 조사(ARS)에서 민주당은 21차례나 50%가 넘는 지지율을 얻었다. 같은 기간 국민의힘은 단 한 차례(40.1%)를 제외하곤 줄곧 30%대를 유지했다. 격차가 18.7%포인트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대체 왜 이런 현격한 차이가 나는 걸까.
하우스 이펙트(House Effect)라는 말이 있다. 여론조사를 의뢰·수행하는 기관의 성향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가 편향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질문 문항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고 한다. 이 유튜버가 만든 여론조사 업체가 정당 지지율 조사 때 함께 물어보는 질문 내용을 들여다봤더니 편향적으로 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검찰은 헌정사상 최초로 야당 대표의 3번 연속 검찰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차기 대권 주자를 제거하려는 표적 수사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2월 12, 13일 조사)라고 질문하는 식이다. 질문에 ‘헌정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들어갔다. 여론조사 설문에 ‘이례적’ ‘반드시’ ‘꼭’과 같은 부사를 집어넣으면, 그것은 응답자들이 부정적으로 응답하기를 기대하고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제거’ ‘표적 수사’ 등 가치 판단이 포함된 단어도 응답자의 답변을 한쪽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설문 작성 과정에서 피해야 할 표현들이다.
이런 질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응답자들은 중간에 전화를 끊거나 이 같은 질문을 한 여론조사 기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이런 질문에 우호적인 응답자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당 지도부의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고, 의원총회에서 자료로 배포되기도 한다. 민주당이 자당에 우호적인 여론조사에 의지하거나 정세 판단 근거로 삼고 총선 전략을 짜는 것은 그들 몫이다.
이 업체는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고 자신들이 맞다고 주장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조사가 전체 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론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다수의 의견에 편승하는 ‘밴드왜건 효과’다. 총선에 임박할수록 각종 여론조사가 난무할 것이다. 특정 정당, 또는 특정 후보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문항을 설계한 뒤 편향된 여론조사 결과를 SNS 등을 통해 대거 유포하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려는 시도가 횡행할 가능성이 높다. 여든 야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의 객관성을 단번에 따져볼 수 있는 인공지능(AI)이라도 개발돼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조사 샘플과 설문 문항의 공정성 여부에 대한 엄격한 사전 사후 관리, 조사기관 운영자의 자격 요건 강화가 필요하다.
길진균 논설위원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