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77
제7장 청풍산의 두령들
제33편 계양령 33-3
그들은 할 수 없이 잔치를 베풀어 작별을 나눈 다음 금은 한 접시를 내어
송강에게 주고호송관들에게는 따로 20냥씩 은자를 쥐어 주었다.
여러 두령들은 송강을 금사탄까지 바래다주었다.
송강은 그들의 두터운 정에 깊이 사례하고 배에 올랐다.
세 사람이 길을 떠난 지 보름 만에 큰 산 하나가 앞을 가로막았다.
호송관이 송강에게 말했다.“이제 다 왔소. 저 게양령(揭陽嶺)을 넘으면 심양강입니다.
강을 건너면 강주가 멀지 않지요.”날씨가 몹시 덥다.
세 사람은 가파른 산길을 부지런히 더듬어 올라갔다.
마침 산마루에 주점이 하나 있었다.
주점 뒤로는 깎아지른 절벽이었고, 집 앞에는 두어 그루 고목이 서 있었다.
그들은 주점으로 들어갔다.“주인장 계시오?”
그때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안에서 나왔다.
둥근 고리 눈에 붉은 수염이 사납게 뻗쳐 있고, 찢어진 두건을 쓰고 허리에 베수건을 두른
남자는 풍도의 최명판관(崔命判官)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양령의 이름난 살인강도였다.
물론 세 사람은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주인은 송강과 두 호송관에게 공손히 인사른 한 다음에 주문을 청했다.
“약주 잡수시겠습니까?”송강이 말한다.
“고개를 올라오느라 기갈이 심한데 고기 좀 있소?”
“익힌 쇠고기에 혼백주(渾白酒)가 있습니다.”
“좋소. 우선 술 한 근에 고기 두 근만 썰어 오시오.”
“죄송하지만 제 집에서는 계산을 먼저 합니다.”
송강이 보따리를 끌러 쇄은자(碎銀子)를 꺼냈다.
주인은 옆에서 보따리가 제법 묵직한 것을 곁눈으로 보고 은근히 기뻐했다.
돈을 받자 주인은 곧 안으로 들어가 술과 고기를 내왔다.
그러나 세 사람은 한 잔씩 술을 마신 후에 모두가 그대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주인이 혼수상태에 빠지는 몽환약을 술에 탄 것이다.주인은 먼저 송강을 번쩍 안아 들고
사람 고기를 만드는 방으로 들어가 도마 위에 눕혀 놓고, 다시 두 호송인들을 차례로
끌어 들었다.주인은 그들의 보따리 속에서 금은보화를 찾아냈다.
“허어, 죄지어 귀양 가는 놈이 이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니는 놈은 처음이다.
오늘은 재수가 터진 날이다.”그는 보따리를 한쪽에 치워놓고 문밖으로 나왔다.
이제 동관이 오면 세 사람을 잡아 고기를 만들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 세 사내가 고개 위로 올라왔다.술집 주인은 그들과 친한 사이였다.
“형님, 어디 가시오?”세 사람 중에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대답한다.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네. 지금쯤 오실 때가 되었는데 웬일인지 모르겠네.
며칠째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안 나타나시는군.”“도대체 누굴 그렇게 기다리십니까?”
“자네도 알걸세. 바로 운성현의 송압사 송강 말이네.”
“송압사? 그렇게 이름 높은 분이 여길 오십니까?”
“아무튼 그분이 강주로 귀양을 가게 되어 제주부를 떠났다네 그려. 제주부에서
강주 노성을 가려면 어디 딴 길이 있나?천하없어도 이 계양령을 넘어야 하지.
그 어른이 이곳을 지나신다는데 알고서야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자넨 요새 벌이가 잘 되는가?”“그간 벌이가 시원찮았는데, 오늘은 세 놈이 한꺼번에
굴러들어와 장사가 꽤 짭짤했습죠.”“세 놈이라니?”
“하나는 죄인이고, 두 사람은 호송관이었소.”그들은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사람들을 벌써 요절을 냈나?”“아직 작방에 두었소.”“그럼 좀 보세.”
주인은 뒷방에서 그들의 보따리를 내왔다.급히 끌러 보니 큰돈과 은전들이 들어 있었다.
이어 보따리 솝에서 문서를 찾아냈다.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오늘 이곳에 올라온 것은 정말 하늘이 시키신 일이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어서 해약(解藥)을 가져 오게.”그들은 송강의 칼을 벗긴 다음 해약을 입 안에 흘려 넣었다.
해약은 몽환약의 해독을 금세 풀어버렸다.
송강은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리다가 겨우 깨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며 두 분은 뉘신가요?”이윽고 사내가 대답했다.
“저는 노주 사람 이준(李俊)입니다. 양자강에서 뱃사공 노릇을 한 적이 있지요.
이 술집 주인은 보시다시피 계양령에 술집을 내고, 몽화약을 타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남들이 모두 최명판관 이립(李立)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 형제는
심양강변 사람으로 소금 장사를 하는 동위(童威), 동맹(童猛)입니다.”
그들이 앞으로 나와 송강에게 절을 한다.송강은 그들이 자기를 살려준 이유를 듣고,
두 호송인에게 해약을 먹여 잠을 깨운 후 계양령 기슭에 있는 이준의 집에서 며칠 동안
보낸 다음 다시 강주를 향해 떠났다.
- 78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