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와 선묘 아가씨

의상대사는 원효대사와 더불어 신라시대에 있어서 일월(日月)과 같은 존재라 하겠으니, 두 분이 모두 화엄종(華嚴宗)의 종주로서 거장이 된 까닭이다. 　대사의 성은 김(金)씨요, 이름은 일지(日芝)였다. 대사는 진평왕 42년에 신라 계림부에서 탄생하였다. 대사는 신라의 왕족으로써 나면서부터 이목이 청수하고 골격이 특이하였는데 재주와 총명이 남보다 뛰어나 어렸을 때에 유전(儒典)을 통달하고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무불통지하였다. 　대사는 일찌기 문무를 겸전하여 화랑도에 들어가서 낭도를 지도하며 귀공자로서 청춘을 멋지게 즐기다가 우연히 인생무상을 느끼고 29세에 서라벌 황룡사에서 출가하여 의상이란 법명을 받고 불경공부를 하였다. 　30세에 원효대사와 지기가 되어서 같이 모험을 하며 백제에 들어가서 완산주(지금의 전주) 고달산 경덕사로 가서 보덕화상에게 열반경과 유마경, 법화경을 공부한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원효대사와 같이 당나라로 유학을 하기 위해 서라벌을 떠나 수원 남양 해안에 이르러서 뜻밖에 비를 만나고 날까지 어두워졌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어떤 움집과 같은 토굴 속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여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곳은 움집이 아니라 옛날 고총으로 해골과 사람의 뼈가 뒹구는 곳이었다. 원효대사는 밤중에 목이 말라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해갈을 하였으나 아침에 해골의 물을 보고 모두 토해 버렸다. 여기서 원효는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법이 사라지면 갖가지 마음이 없어진다는 기신론의 진리를 크게 깨닫고 마음 밖의 법을 따로 구할 것이 없다는 자신의 입당구법(入唐救法)을 갈 필요가 없다고 하여 고향으로 되돌아 갔다. 의상은 내친 걸음에 그대로 전진하여 고구려와 중국의 국경인 요동에까지 이르렀다. 　어느날 밤 무덤 옆에서 혼자 잠을 자는데 뜻밖에 악귀가 나타나 온갖 무서운 꼴을 보인 후 입당을 그만두라고 위협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상은 본듯 만듯 동하지 않고 좌선하고 있었다. 악귀는 화가 나는 듯 발로 걷어차며 발악을 했다. 　「너는 어디서 온 사람인데 여기서 이렇게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냐?」 　「나는 신라의 사문으로서 당나라로 대법을 구하러 가는 사람이다. 너의 간섭할 바가 아니니 물러가거라.」 　「소법도 구하기 어렵거든 하물며 대법을 구하러 간다고? 흥! 두고 보아라. 너는 일진이 나쁜 날에 떠났기 때문에 만사 불성이니 너의 고장으로 돌아가도록 하여라.」 　「가고 아니 가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이니 너는 간섭 말고 물러가거라.」 　「내 말을 순순히 듣고 미리 돌아 가면 네가 고생을 더하지 아니 하지만 끝끝내 버티고 고집을 세우고 가다가는 큰 고생만 하고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므로 너의 고난을 미리 막아 주려고 내가 먼저 맡아서 충고하는 것이어늘 너는 어찌하여 네 고집만 세우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느냐? 내 말이 맞는지 아니 맞는지 두고 보아라.」 　하고 사라졌다. 　의상대사는 이러한 일을 당하고 조금 기분이 언짢았지만 　「옛날부터 이르되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하였으니 이러한 시련도 있지 않겠느냐?」 　하고 전진하였다. 대사는 요동서 국경선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가려 할 때 순라자에게 붙잡혔다. 그래서 그들에게 끌려가서 문초를 받게 되었다. 　「너의 성명이 무엇이냐?」 　「성은 김가요, 이름은 의상이라 하오.」 　「너의 고향은 어느 곳이냐?」 　「신라국 서라벌이오.」 　「신분은 무엇이냐?」 　「사문인 중이요.」 　「중이면 너의 나라에 있지 여기는 어찌하여 왔느냐?」 　「중국으로 들어가서 유학을 하여 대도를 배워 도를 성취하려고 가는 길인데 이 곳을 거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오.」 　「너는 신라와 고구려와 당나라를 드나들면서 군사비밀을 첩보하려는 간첩이 아니냐?」 　「천만의 말이오. 세상을 초개와 같이 여기고 출가하여 도를 구하려고 중이 되었는데 무엇이 답답하여 간첩 노릇을 하겠오.」 　「듣기 싫다. 잔소리 마라.」 　하고 옥에 가두고 말았다. 대사는 옥중에 들어가 보니 과연 생지옥이었다. 안은 움집같이 컴컴한데다가 먼지는 가득하고 한 귀퉁이에 놓인 항아리는 대소변을 보는 곳이었다. 불행하게 끌려 들어 온 사람의 누더기와 자랄 대로 자란 더벅머리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기다 빈대, 벼룩, 이가 득실거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밥은 겨우 죽지 않을 정도로 주니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거기에서 수족가지 묶였으니 더욱 죽을 지경이다. 불교 경전에 삼악도(三惡道)라는 말이 있는데 이 옥중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사는 어떠한 고초라도 이겨 낼 결심으로 좌선을 하며 안정을 도모하였다. 순라자는 간혹 끌어내다가 문초를 하며 간첩한 사실을 순김없이 진술하라고 윽박질렀으나 원래 사실이 없는 것을 협박이 무섭고 매가 무섭고 고통이 어렵다고 없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일은 생각조차 한 일이 없으니 나는 모르오. 수도를 하는 중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있겠소.」 　이런 대답으로 버티다가 약 한 달 만에야 간신히 옥중에서 풀려 나왔다. 나와 보니 경계가 심해 국경을 뚫고 나갈 수가 없고 또한 몸이 그간의 영양실조로 마르고 수척하여 촌보를 디딜 기운조차 없었다. 그래서 어떤 여염집에서 한 달이나 신세를 지고 그만 신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입당구법의 신앙과 미련이 떨어지지 아니하여 다시 배편으로 바다를 건너 들어가기로 결심하였다. 마침내 신라 해안에서 당나라로 들어가는 상선이 있어 선주에게 교섭하여 배를 타고 중국 동주 해안, 지금의 산동반도에 상륙하게 되었다. 그 때의 배라는 것은 지금과 같은 기선이 아니고 겨우 돛을 단 목선이었으므로 만약 모진 바람을 만나든지 하면 엉뚱하게 딴 곳으로 흘러가게 되므로 그 신고가 여간이 아니었다. 　의상대사는 등주 해안에 상륙은 하였으나 만리 이역에 언어도 생소한 데다가 여비까지 없는 처지였으므로 이리저리 걸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거사가 대사의 용모와 기상이 훌륭함을 보고 자기 집으로 안내하여 가 보니 그 거사가 곧 유지인이란 사람이었다. 유지인은 등주의 총관으로 지방을 다스리는 감독관이었다. 대사는 병이 들고 몸이 피곤하여 그 집에서 오래 머물게 되었다. 유거사는 불교의 독신자로서 중을 공경하는 사람이어서 의상대사를 더욱 좋아하며 붙들었다. 　그런데 유거사에게는 선묘(善妙)라는 딸이 하나 있었으니 그녀는 날씬한 몸맵시에 얼굴이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처녀였다. 　그녀는 의상대사를 한 번 보고 흠뻑 반하여 연모하게 되었으므로 갖은 애교와 아양을 부리며 그를 유혹하려 하였다. 　「호사다마요 도고마성」이라더니 대사가 요동을 경유하여 입당하려고 할 때는 무서운 귀신이 덤비고 악독한 순라자에게 잡혀서 옥고를 치르는 역경마(逆境魔)에 걸려 시련을 겪더니 이제는 그와 반대로 예쁜 미인의 순경마(順境魔)가 덤비는 셈이다. 그런데 역경마는 고생은 되어도 견디기가 쉬웠지만 이 순경마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워 마음이 다소 흔들리기도 하였다. 　대사가 몸을 다스릴 수가 없을 정도로 병이 중해 드러누웠을 때 선묘는 자진하여 전후시봉을 다하여 주었다. 약도 다려주고 잔 시중도 해가며 옆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고 온 정성을 다했다. 그러므로 피가 끓는 청춘의 의상으로서는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그의 유혹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선묘가 중국말을 가르쳐 준다고 고운 얼굴에 하얀 이를 내놓고 방긋거리다가 몸을 기대고 의상의 팔을 끌어당기고 같이 누우려고 한다. 의상은 벌떡 일어나면서, 　「아가씨, 이러지 마시오. 나는 중입니다. 속인과는 신분이 다른 사람이오. 제발 이러면 아니 됩니다.」 　「스님은 사람이 아닌가요? 사람이 중이 되었지, 중의 근본이 따로 있나요? 나는 죽도록 스님을 시봉하여 왔는데, 스님은 내가 미워졌습니까?」 　「아가씨가 어찌 밉겠소? 나에게는 둘도 없는 은인인데 내가 미워할 리가 있겠소?」 　「그러면 어찌 그리 무정하십니까?」 　「아가씨를 꽃이라고 합시다. 곱고 향기있는 꽃은 그대로 두고 쳐다보며 감상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가씨는 이 동주에서 미인으로 평판이 높고 유총관의 따님으로 이름이 높은 분인데 이 못난 내가 욕되게 하면 그게 될 말입니까? 그래서 그러는 것입니다.」 　「아무리 스님이 구차한 설명을 하여도 나는 스님의 속을 다알고 있어요. 그런 즉 그런 변명은 그만두시고 좋으면 좋다든지 미우면 밉다든지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요. 이제는 저의 마음도 다 아실 거예요. 제가 얼마나 스님을 사랑하는가를.」 　「아가씨가 정히 그러하시다면 모두 말을 하리다. 아가씨가 열렬하게 나를 좋아하므로 나도 아가씨를 사랑하며 좋아합니다. 아가씨보다 더 애정이 끓어오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중이 되어 계를 받을 때 맹세한 일이 있습니다. 　이몸이 부처가 될 때까지 　계율을 굳게 지켜 범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원컨대 모든 부처님은 굽어 살피소서.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파계는 하지 아니 하리다. 　이러한 중의 몸이거니 어찌 아가씨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내가 장가를 들려면 본국에서 벌써 들었지 무엇 때문에 30세가 넘도록 총각으로 늙어 왔겠소.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오늘부터 말아 주십시오. 나는 이미 목석이요, 화석입니다.」 　「나는 몰라요, 나는 몰라요.」 　선묘는 참으로 실망하였으나 의상의 뜻을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의상을 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돌리고 큰 원을 말하였다. 　「이제 스님의 뜻을 깊이 잘 알았습니다. 좋습니다. 나도 더 이상 스님을 괴롭히지 아니 하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그러나 스님께서 그처럼 불도를 위하여 계를 지키고 도를 구하시겠다고 하시니 어찌 스님의 거룩한 마음을 꺾으오리까? 그러나 저 역시 이 몸을 한 번 스님에게 바치기로 결심한 이상 어찌 다시 변할 수가 있사오리까? 그러므로 그 대신에 스님의 신자가 되어서 세세생생에 스님께 대승법(大乘法)을 배워서 대도를 성취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런 즉 스님께서는 어서 하루 바삐 최상의 도를 깨치시와 박복하고 어리석은 저를 제도하시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부터 저는 스님의 단월(檀越)이 되어서 스님에게 소용되는 일체의 물건을 공급하여 드리겠사오니 이것까지는 막지 마시옵기를 부탁합니다. 아무 사심없는 물건이오니 말입니다.」 　「선묘 아가씨, 고맙소. 아가씨가 그와 같이 발심하여 신심으로 나를 따르겠다고 하니 내가 어찌 그것이야 거절하겠소. 우리 두 사람이 합심하여 세세생생에 불사나 이루어 봅시다.」 　의상은 이렇게 말하고 유총관의 집을 떠났다. 　그리고는 당나라의 장안(長安)에 있는 종남산(終南山)을 향하여 지상사(至相寺)에 있는 지엄 화상을 찾아갔다. 지엄화상은 화엄종의 거장인 두순의 제자로서 그의 명성이 국내외에 떨치는 분이었다. 지엄화상을 친견하고 신라에서 법을 구하러 왔다고 아뢰니, 　「나는 대덕이 오실 줄을 미리 알았소. 간밤 꿈에 큰 나무가 해동에서 나서 그 지엽이 온 땅을 뒤덮고 다시 그 그늘이 중국에까지 뻗쳐오는 것을 보았소. 그래서 꿈을 깨어 어떤 큰 스님이 오시려나 하고 기다렸더니 대덕이 오시었구료.」 　하고 반가이 맞이하여 특별대우를 하였다. 그래서 의상은 오랫동안 종남산 지상사에 있으면서 지엄에게 화엄경에 대한 오의를 깊이 배우고 본국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신라의 승상인 김인문이 당나라로 들어왔다. 그런데, 당나라 고종은 그를 잡아 가두고 신라를 쳐들어가려고 하였다. 인문은 의상을 시켜 먼저 본국에 보내어 이 사실을 신라 왕에게 아뢰게 했다. 그래서 신라에서는 일이 급함을 깨닫고 명랑법사를 청하여 신인비술로써 물리쳐 마침내 화를 막을 수 있었다. 　한편 의상이 본국으로 돌아오려 할 때에 지엄에게서 화엄경에 대한 불가사의 해탈법문을 배워 깨닫고 화엄경의 골자를 간추려 30구 20자로 된 법계도송을 짓고 또 법성게도라는 그림을 그려 지엄화상에게 바치니 지엄이 보고 극구 찬탄하고 　「의상의 화엄학은 내가 따를 수가 없다.」 　고 감탄하였다. 그 법성게라는 것은 지금도 각 사찰 내에서는 법도의식이 있을 때마다 독송하는 것이다. 　의상이 중국에 있을 때에 또 하나의 일화가 있으니 그것은 계율종의 도선율사를 무색케 한 일이다. 도선율사는 입버릇처럼 사분율이나 십송률 같은 율문이 부처님의 친설이요, 율종이 불교의 정통이지 화엄경같은 것은 후세에 마명용수가 부처님을 빙자하고 지어낸 가설이요, 불설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것은 논장 가운데서 소승종도들이 말하기를 대승경전은 모두가 불설이 아니요, 아함경 만이 불설이라는 주장에서 나온 고집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승불교를 비방하고 멸시하였다. 그러는 일면 그는 율행을 잘 지키고 율문을 잘 독송하는 공덕으로 인간의 공양을 받지 않고 천공 즉 천녀가 끼니마다 맛있는 공양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올리는 공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끼니가 되어도 음식을 만드느라고 연기를 내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의상에게 자랑하고 신라에도 율종을 전해 보려는 기회를 얻으려 하였다. 　어느 날 도선이 의상에게, 　「스님, 내일의 사시공양은 제가 있는 운제사로 오셔서 같이 합시다.」 　하고 권유했다. 　「고맙소이다. 스님이 계시는 절을 구경도 할 겸 가 보겠습니다.」 　의상은 이렇게 승락하고 그 이튿날 사시 전에 운제사로 찾아갔다. 도선이 의상을 외국스님이라고 하여 특별히 친절하게 영접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때가 이미 사시가 되었다. 도선이 가끔 문밖을 내다본다. 그런데 사시가 훨씬 지나서 오시 미시가 되어도 천공이 들어오지를 아니하였다. 의상은 밥 주기를 기다리다 못하여, 　「공양 때가 지났으니 물러 가겠소이다.」 　하고 일어섰다. 도선은 오후불식을 실행하는 율사라 만류할 수도 없어서 어름어름하고 의상을 떠나게 하였다. 　그런데 의상이 막 나가고 보이지 않게 되니까 천녀가 천공을 많이 가지고 들어온다. 도선이 화가 나서, 　「진작 가지고 오지 않고 때가 지나고 나서 이제 가지고 오면 어찌하잔 말인가?」 　하였더니 천녀가, 　「법사님, 말씀하십시오. 가지고 오기야 사시 전에 가지고 왔습니다만 화엄종의 놀라운 큰스님이 계셔서 화엄신장이 몇 겹으로 둘러싸고, 길을 터 주어야 들어 오지요. 그래 길이 막혀서 제 때에 갖고 오지를 못하였사오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한다. 도선율사는 이 말을 듣고 대승불교를 소승율으로서는 도저히 좇아갈 수 없는 것이로구나 하고 속으로 대승경전을 존경하고 의상대사에게 참배하였다고 한다. 　의상대사는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등주 유총관이 있는 집에 들려서 인사를 하고 선묘에게도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랫만에 유지인의 집을 찾았더니 유거사가 반가이 맞아들이며, 　「스님, 그간 지상사에 가실 목적은 다 이루셨습니까?」 하고 묻는다. 　「네, 거사님. 덕택에 목적을 다 이루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 　유거사는 거듭 치하를 올리고 선묘는 반가와하여, 　「스님, 스님께서 그처럼 무사히 공부를 마치시고 돌아가신다니 감축합니다.」한다. 　「모두 아가씨의 덕분인가 하오. 내가 그때 아가씨의 간호를 받지 못하여 객사를 하였으면 이런 영광을 보지 못하였을 터인데 이제 목적을 이루고 가게 되니 모두 아가씨의 공덕이 아니겠소.」 　「천만의 말씀입니다. 모두 스님의 굳은 신심으로 그리 되신 거지요. 어느 날 배를 타시겠읍니까?」 　「내일 정오에 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촉박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며칠을 묵어 가실 줄 알았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였는데 뱃 시간이 그렇게 되어서 어찌 할 수 없습니다.」 　하고 그는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다음 날 의상은 시간이 되어 배를 타고 떠나게 되었다. 선묘는 그간에 의상을 위하여 미리 법복과 행장을 준비하여 두었다가 의상이 떠날 때에 상자에 곱게 넣어 가지고 해변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녀가 늦게 나온 탓으로 배는 벌써 돛에 바람을 잔뜩 받고 저 멀리 둥둥 떠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묘는 너무나 안타까와 가슴이 터질 듯 하였다. 그래서 그는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부처님께 빌었다. 　「삼보님께 귀의하옵니다. 소녀는 아무 사심없이 신심으로 의상법사님께 공양하려고 이것을 가지고 급히 달려왔는데 벌써 배가 떠났습니다. 원컨대 이 상자가 바람에 날려 저 배까지 닿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그는 상자를 들어서 바다에 던졌다. 그랬더니 문득 질풍이 일어나서 상자를 가랑잎 같이 날려 가더니 신기하게도 그 배 안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이것을 본 선묘는 크게 반가워 하면서 다시 꿇어 엎드려 합장하였다. 　「진시방 편법계 제불보살님이시여, 소녀는 이 몸이 한 번 죽는다 하올지라도 오직 의상법사를 따르겠사오니 원컨대 이 몸이 당장 용이 되어서 창파를 헤치고 저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신라국에 이르러 정법을 홍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묘는 이렇게 빌기를 마치자 두 손을 번쩍 추켜들고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을 향하여 몸을 솟구쳐서 뛰어 들어갔다. 선묘의 정성은 하늘에까지 사무쳐서 만경창파를 누비는 용으로 변하여 의상이 탄 배를 호위하고 모든 풍파와 난관을 제거하고 마침내 무사하게 신라국에 이르게 하였다. 의상대사는 본국에 돌아와서 산천을 두루 편답하고 살피다가 순홍군(지금의 영주군) 부석면 북지리에 있는 태백산에 이른 즉 산천이 아름다와 법륜을 전할 만한 곳이라 생각하고 그 곳에 절을 지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 곳은 벌써부터 권종이부의 무리가 떼를 지어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의상의 불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5백여명이나 몰려들어서 이곳은 우리들의 본거지니 어서 물러가라고 했다. 만약 듣지 아니하면 폭력으로 의상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였다. 의상은 중과부적으로 그들을 당해낼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으로 빌되, 　「화엄회상의 제불보살과 천룡팔부의 모든 신장과 신기중이시어, 대신 벌을 내리사 이 좋은 터를 차지하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니 용으로 변한 선묘가 그림자와 같이 의상대사를 호위하고 따라다니다가 이 광경을 보고 큰 신변을 나타내어 크기가 사방 십리나 되는 바위가 되어 허공에 둥둥 떠서 방금 떨어질 듯 그들 머리 위에 매달려 있었다. 이것을 본 그들은 깜짝 놀라고 겁에 질려서 그만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의상대사는 이 자리에 절터를 잡고 화엄경을 강설하니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많은 대중이 모여 들매 큰 절을 세웠으니 이것이 지금의 부석사로 문무왕 16년 (675년)때였다. 이 절을 부석사라 이름짓게 된 것은 선묘가 용에서 다시 바위로 변하여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는 데서 온 것이다. 　의상대사는 울진군 불영산에 자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때는 그곳이 못이 되어 있었다. 가운데는 독룡이 지키고 있어 그것을 쫓아내지 아니하면 절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선묘가 대사의 뜻을 알고 그 못의 독룡을 쫓아 버려 대사는 그곳에 절을 지었으니 그것이 불영사다. 또 문무왕 20년에 동래군 금정산에 범어사를 세웠으니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왜적이 가끔 동해안을 침범하여 이것이 골치 꺼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이 꿈을 꾸니까 신인이 현몽하여 아뢰기를, 　「금정산에 절을 짓고 매일 같이 화엄법회를 열면 왜적이 들어 오지 못할 것이니 상감은 과히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그런데 그 절을 지을 때는 의상법사를 초청하여 감독을 맡김이 좋을 것입니다.」 　한다. 왕이, 　「그대는 누군가?」 　하였더니, 　「소인은 의상대사를 호위하고 따라다니는 선묘라고 합니다.」 하였다. 　그래서 태백산에 의상을 청하여 범어사를 짓고 화엄법회를 열어서 왜적을 방지하였다. 　또 양양군에 있는 낙산사는 옛날부터 관음도량이라고 일러왔다.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하기 위하여 30일간 기도를 올리되, 만약 관음보살을 친견하지 못하면 바다에 빠져 죽기를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의상대사는 20일간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였으나 관음보살의 진신은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나의 신심 이렇게도 박약하고 업장이 이렇게도 두꺼운가?」 　하고 한탄하며 몸을 솟구쳐 바다로 떨어지는 순간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그를 번쩍 들어 해안에 올려 놓아 죽음을 면하였으니 그때 진신을 똑똑히 친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해안에는 굴법당이라는 홍련암을 창건하여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그 넘어 낙가산에는 낙산사를 창건하고 정취보살을 모셨으니 정취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낙산사는 금산 보리암과 강화에 있는 보문사와 더불어 국내 유명한 관음도량이 되어 있는데 그 중에도 낙산사 홍련암이 가장 유명하다. 　의상대사는 부석사를 중심으로 화엄종을 크게 선양하였으며 그의 제자는 삼천 명이 넘었고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은 오진. 지통. 표훈. 진정. 진장. 도융. 양원. 상원. 능인. 의매 등의 십대제자라고 한다. 대사가 법설을 행한 곳은 부석사를 비롯하여 합천 해인사와 경주 불국사 동래 범어사 구례군 지리산에 있는 화엄사 등 10여 사찰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는 성덕왕 원년(703)에 78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