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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유명한 생물학자야. 인간의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법론으로 한 때 많은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어. 인간의 성적(性的) 차이, 공격성, 종교, 동성애, 외국인 혐오 등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다보니, 레이시스트, 호모포비아, 성차별주의자, 계급주의자, 우생학자등으로 매도되기도 했어. 우선 알아둬야 할 것은, 윌슨이 유전자 차원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건 맞지만 진화론과 결정론은 별개라고 확실히 못 박아두고 있다는 점이야.
사회 생물학이 시사하는 바를 넘어선 우려는 대개 유전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유전자가 명령하는 것은 특정 행동이 아니라 어떤 행동으로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며, 더 나아간다면 다양하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특정 행동이 발달하는 성향이다.”
사회 생물학에는 위험한 함정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비판 없이 존재의 당위성을 규정하는 윤리학의 자연주의적 오류다 .그것은 지속적인 경계를 통해서만 피할 수 있다. 인간 본성의 대부분은 구석기 수렵 채집인의 유산이다. 그러나 어떤 유전적 편향의 증거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재하며 미래 사회에도 지속될 관습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즉, 인간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인정하지 않아. 그렇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을 생물학적으로 분석하다 보니 논쟁이 발생하기 쉬워.
나도 저자의 의견에 100퍼센트 동의하지 않아. (남녀의 경향성과 능력 발휘에 대해서는 이 분의 견해에 전혀 동의하지 않을뿐더러 집단 선택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어ㅠㅠ) 절대적 윤리와 채식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었던 거랑,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길래 같이 보고 싶어서 가지고 왔어.
과학과 인문학, 생물학과 문화는 뱀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에 의해 기묘하게 연결된다. 뱀의 이미지는 상징과 마법의 전조로 꾸며져 몽상이나 꿈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쉽게 넘나든다. 예고 없이 나타나고 느닷없이 사라지며, 실제 존재하는 뱀에 대한 특정한 기억을 남기지 않으면서 보다 강력한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남긴다.
냉혈 파충류이며 악마적 환영인 뱀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복합적인 인식과 모든 생물에 내재된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인간의 마음은 가장 치명적이고 불쾌한 생명체들에게조차 신비를 부여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뱀에 대한 공포심을 가진다.
뱀의 원형 너머에는 사람들의 경험 내에 존재하는 단순한 실체가 있다. 인간의 마음은 뱀의 형상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졌다. 독사를 단순한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분적인 모습에도 민감하게 자극받는다.
적어도 몇몇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에게서 나타나는 뱀을 혐오하는 경향은 유전적 배경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연 선택에 따른 진화에 의해 형성된 특성일 수 있다. 다시 말해 혐오 반응을 보이는 개체가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많은 자손을 남기고, 그 결과 뱀에 대한 공포를 나타내는 특성이 집단 내에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또는 그러한 특성이 이미 있는 경우에는 그것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종류의 공포, 예컨대 어둠, 낯선 사람, 불쾌한 소음 같은 것에 대한 공포는 일반적으로 일곱 살 이후부터 감소하기 시작하는 반면에 뱀을 기피하는 경향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강해진다.
어째서 뱀은 영장류의 정신 발달 과정에 그렇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몇몇 뱀들이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병과 죽음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연물이 문화의 상징물로 전이되는 과정이 여기에 있다. 수십만 년, 즉 뇌 안에 특정한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기에 충분할 만큼의 시간 동안, 독사는 인간에게 상처와 죽음의 주요 원인이 되어 왔다.
생물체는 은유와 의식의 자연 원료이다.
2. 절대적인 도덕관념, 윤리란 존재하는 것일까? 일전에 이런 질문을 본 적이 있는데 답이 다 제각각 달랐던 것 같아. 절대적인 윤리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걸까? 그리고 그러한 것은 정말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저자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절대적 윤리의 당위성과, 정의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었어.
궁극적으로 개미나 다른 사회성 곤충들을 존재하게 한 진화적 계통은 지금으로부터 6억만 년 이상 앞선 시기에 인류가 유래한 계통으로부터 분리되었다. 곤충의 사회 체제는 우리의 사회 체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본질적으로 매우 다르다.
인간 외에 어떤 생물종이 고도의 지능과 문화를 이루어 왔다면 틀림없이 그 생물은 인간과는 다른 도덕적 가치를 형성해 왔을 것이다. 예를 들면 문명을 이룩하고 사는 흰개미들은 아프거나 다친 개체들에 대한 살육을 용인하고, 개별적 번식을 금지하며, 상호 교환에 대한 신성한 맹세와 동료들의 배설물을 소비하는 행동을 한다. 요컨대 흰개미의 정신은 사실 오싹할 정도로 인간의 정신과 엄청나게 다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도덕적 사고 구조는 일정한 감정과 다양한 지식을 만들고 지속시키는 학습 법칙이다. 도덕적 사고 구조는 인류의 생존과 생식에 기여했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진화되어 왔다.
어떻게 생명 애착이 진화되어 왔을까? 가장 그럴듯한 대답은 문화가 학습의 유전적 특성의 영향을 받아 정교해지고, 그 특성을 명령하는 유전자가 문화적 맥락에서 자연 선택에 의해 퍼져 온 과정인 생물 문화적 진화라는 것이다.
어떤 특별한 유전자형이 특정한 행동 반응을 더 많이 만들어 내고, 그 반응은 생존과 생식적 적응을 강화시키며, 결과적으로 그 유전자형이 개체군 내에 널리 퍼지게 되어 그 행동 반응은 더 빈번하게 증가한다. 그뿐 아니라 감정을 무수한 꿈과 이야기로 전환시키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 있고, 예술과 종교적 믿음의 역사적 흐름을 적절하게 끊는 데 필요한 조건들도 있다.
유전적 편향은 사라질 수도 있고, 갈망도 다른 방향으로 돌려질 수 있으며, 윤리는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
3. 인간이 다른 종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
지금 진행되고 있는 환경 파괴 가운데 가장 해로운 부분이 생물 다양성의 감소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립 유전자들(상이한 유전적 형태들)로부터 종에 이르기까지 생명체의 다양성은 한 번 없어지면 다시 회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식지 변질 속도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면, 다가오는 30년 안에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서 지구상 생물종의 20퍼센트 또는 그 이상이 사라지거나 초기 멸종에 회부될 것이라는 것은 주관적이지만 매우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다. 선사 시대 이래로 오늘날까지 인류는 이미 생물종의 10퍼센트에서 20퍼센트를 멸종시켜 왔다.
단지 생물종들의 반만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생물 다양성이 유지될 텐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렇게 되묻는 비판적인 반응도 있다. 이에 대한 나를 포함한 자연보호론자들의 대답은 생물 다양성이 제공하는 방대한 물질적 풍요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야생종들은 새로운 제약, 농작물, 섬유, 펄프, 석유 대체품, 토양과 물의 복원을 통한 미개발 자원들이다. 이 주장은 명백한 사실이고 확실히 반보존자유주의자들의 진로와 주장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배타적으로 적용될 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실제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생물종들을 그들의 잠재적인 물질적 가치로만 판단한다면 그들에게 가격이 매겨질 것이고, 그 가격이 적당할 때는 부를 만드는 다른 자원들과 거래되다가 끝내 버려질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인류에게 미칠 특정 종의 궁극적 가치를 판단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그 생물종이 즉각적인 이득을 주든 그렇지 않든 간에, 다음 세기의 연구에서 무슨 이익을 줄 것인지, 어떤 과학적 지식을 제공할 것인지, 또는 인간 정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측정할 수 있는 아무 기준도 없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도덕적 사고의 커다란 철학적 구분은 ‘다른 생물종들은 존재에 대한 본유적인 권리를 가지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 수학 법칙과도 같이 도덕적 가치가 인간 밖에 존재하든 정신이 그러한 것처럼 도덕성 또한 자연 선택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서 진화된 특유의 구조이든 간에 생물의 존재에 대한 본유적 권리에 대한 물음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생물종들은 인류의 친척이다. 이러한 인식은 진화적 시간에서 볼 때 사실이다. 인간은 다른 행성으로부터 온 외계인처럼 풍부한 생물권 안으로 연착륙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미 존재했던 다른 생명체들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이 생명체들의 엄청난 다양성은 새로운 형태의 생명을 창조해 내기 위해 계속되는 실험을 거친 끝에 결국 우연히 인류를 만들어 낸 것이다.
4. 인간의 탐욕스런 식성과 그로 인한 생태계 질서 교란에 대해서.
‘인간’의 무분별한 육식이 생태계에 어떠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을까. 3번과 이어지는 주제인데... 내가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처럼 육식과 자연 개발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기 위해 이 부분을 강조한다고 생각한다면 오해야.....ㅠㅠ (나 잡식임) 우리도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것과, 모든 종들이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잘 일깨워주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발췌한 것일 뿐ㅠㅠ
다윈의 주사위는 지구의 형편을 나쁘게 하는 쪽으로 굴러왔다. 많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듯이, 좀 더 상냥한 동물이 아닌 육식 영장류가 큰 발전을 이룬 것은 생태계에는 엄청난 불운이었다. 우리 종은 파괴적 충동을 부추기는 유전적 형질을 지니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육식에 대한 우리의 선호이다. 이것은 태양 에너지를 낮은 효율로 이용하도록 만든다. 식물 조직에서 광합성에 의해 고정된 태양 에너지의 10퍼센트 가량이 초식 동물들의 조직 안에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다. 다시 그 양의 10퍼센트가 초식 동물을 먹는 육식 동물에게 도달한다. 마찬가지로 그중 10퍼센트만이 포식 동물들에게 전달된다. 녹색 생산 과정에서 고정된 에너지는 습지 식물에서 메뚜기로, 딱새에서 매에 이르는 습지의 먹이 사실을 거치면서 1000분의 1배로 줄어드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한 마리의 매를 지탱하는 데 엄청난 양의 초본이 소모된다. 매처럼 고기를 먹는 인간도 언제나 식물로부터 두서너 단계 위 먹이 사슬의 끝에 위치하는 육식 동물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세계의 많은 부분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다. 우리는 농작물과 목재를 소비하고, 건물과 길을 만들고, 황폐한 지역을 넓히면서 자연 식생에 고정된 태양 에너지의 20~40퍼센트를 착복하고 있다. 더 많은 음식을 찾기 위해 냉혹하게도 호수와 강, 그리고 점점 더 많은 해양에서 동물들의 삶을 축소시키고 있다. 곳곳에서 공기와 물, 심지어 지하수까지 오염시키고 생물종을 멸절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은 환경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잘못된 생물종의 지능이 생물권에 대한 치명적인 조합으로 미리 정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지능은 그 자신을 멸절시킨다는 것이 어쩌면 진화의 법칙일 수도 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의 미래에 대한 견해는 대략 두 학파로 나뉜다. 첫째, 면책특권주의는 인간은 출중한 지성과 영혼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종을 결박하고 있는 생태의 원칙으로부터 예외가 된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심각할지라도, 문명화된 인간은 ‘독창력과 의지력 그리고 어쩌면, 신이 부여한 통제권에 의해 그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인구 성장? 경제를 위해서 좋은 일이지. 몇몇 면책특권주의자들은 어떤 경우라도 인간의 기본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생물들이 멸종한다고? 걱정할 일이 아니지. 그것이 자연의 순리라면 인간은 지질학적 시간에서 멸망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의 긴 줄 맨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하자. 어떤 경우라도 우리 인간종은 구태의연하고 생각할 줄 모르는 자연을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생명의 구별적인 질서를 창조해 왔으니까. 이런 주장의 반대편에는 인간을 자연 세계에 견고하게 예속된 하나의 생물종으로 보자는 환경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은 인간의 지능이 대단하고 정신도 열정적이지만, 그런 특성이 인간 조상이 진화해 온 자연 환경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이 과거의 작은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왔다는 것을 그러한 믿음의 근거로 내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척추동물과 비교하면 무척추동물의 종류는 실로 방대하다.
당신이 열대림이나 다른 육상 서식지를 걷고 있을 때, 또는 산호초 위나 바다를 비롯한 물속 환경에서 잠수복을 입고 헤엄치고 있을 때,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당신의 눈을 끄는 것은 척추동물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무엇보다도 무척추동물들이 지배하는 세계를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 대부분의 지역에서 세상을 움직이고 뒤흔드는 존재는 인간을 제외한 척추동물들이 아니라 무척추동물이다.
사실 우리는 무척추동물을 필요로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다. 인류가 내일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세상은 큰 변화 없이 지속될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에 총체인 가이아는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풍족한 환경이 존재하던 10만 년 전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무척추동물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불과 몇 개월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모든 어류, 양서류, 조류, 포유류가 거의 동시에 멸종될 것이다. 다음에는 현화식물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고, 그와 함께 전 세계 숲과 육상 서식지의 물리적 구조가 파괴될 것이다. 흙은 썩어 갈 것이다. 영양소의 순환 경로가 좁아지고 끊어지면서 죽은 초목들이 쌓인 채 말라버릴 것이다. 이에 따른 다른 복합적인 형태의 식생들이 차례로 죽어 갈 것이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척추동물들도 사라질 것이다. 세계는 수십 년 안에 주로 박테리아와 조류, 그리고 아주 단순한 소수의 다세포 식물들로 구성되어 있던 10억 년 전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
첫댓글 글 좋다!! 책 읽어봐야지☺️☺️
나도 읽어볼래 고마워여시
나두 읽어봐야지! 고마워!!
에드워드 윌슨...왤케 익숙하나 했더니 교양시간에 많이뵌분이네^^ 요즘 환경관련 책 읽고있었는데 올려줘서 고마워~!
와 여시가 추천한책 다 재밌어 보여
읽어봐야겠다 고마워 여시!!
읽어봐야지..!! 고마워 😊
헉 넘 재밌을듯 ㅠㅠㅠㅠ고마워!!!
잘 봤어! 고마워ㅋㅋㅋㅋㅋㅋ
재밌겠다 고마워!!
우와 고마워!
글 완전 흥미돋... 글 써줘서 고마워!!
우와 이런글 써줘서 넘 고마워!!